오늘의 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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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안도현 시인이 경향신문에 쓴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1990년대 초반, 전주의 작은 화랑에서 유 휴열 화백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을 때였다. 그림을 보러 갔다가 나는 한 점의 유화 앞에서 그만 시선이 얼어붙고 말았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 그림을 자꾸 외면했으나 발길을 뗄 수 없었다. 억지로 발걸음을 옮겨 다른 그림을 둘러보다가도 나는 다시 그 그림 앞에 돌아와 서 있었다. 고심 끝에 유 휴열 선생께 짜고짜로 고백했다. 저 그림을 갖고 싶은데 가진 돈이 별로 없다고. 그런데 선생은 말도 안 되는 내 당돌한 제안을 스스럼없이 받아주셨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꼭 갚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렇게 그림을 탈취한경력이 있는 나를 참 뻔뻔한 사람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안 시인은 자신을 뻔뻔한 사람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고 하나, 나는 당돌하고 겁 없는 젊은이라라해도 할 말이 없는 내용이다. 안도현 시인은 1990년도 의 빚이지만, 나는 그보다 더 훨씬 오래된 1950년 도에 발생한 오래된 묵은 빚이다.

 


고저역(庫底驛, 강원도 通川郡에 있음)

고저(庫底)에 있는 通川高級中學校 3학년 졸업을 한 달 앞둔 때 이였다. 19506월 인민군으로 입대하던 날, 고저역의 모습이다. 양편 철로를 따라 가운데 플랫폼이 길게 있고, 중간에 전신주가 몇 개 연달아 서 있었다. 그 전신주에는 역명이 씌어 진 팻말이 붙어있었고, 둥근 삿갓 전등이 달려 있었다. 당에서 나온 책임자가 명단을 보고 인원을 파악했다. 여기저기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나오셨다. 플랫폼에는 송별하는 가족들 선생님과 학생으로 가득했다.

안스런 마음과 자랑스러운 마음이 교차하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

내가 졸업장은 가지고 있을 테니 조국통일하고 와서 찾아 가라.” 고 하셨다.

이룰 수 없는 꿈의 이야기였지만 가슴에 지니고 힘이 되었다. 제자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보내는 교정선생님의 마음, 한 달만 기다리면 졸업장을 줄 텐데, ‘당의 명령이라이 말씀은 없었지만.

2004년 고향방문 했을 때 북쪽 당국에 교장선생님이 조국통일하고 와서 찾아가라 하신 졸업장을 받아가고 싶다고 서면으로 간곡히 요구했으나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 때 상항이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친구가 있다. 이름도 잊었지만 몸이 외소한데다 시력도 나쁘고 해서 군복무에는 부 적격이어서 빠진 친구인데 공부를 잘 하고 특이 수학은 특별히 잘 했다.

너희들하고 같이 못 가서 미안하다

고 울먹이며 손을 잡아주던 친구.

우리는 전선에서 몸으로 충성을 하지만 너는 머리로 하면 되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이것이 마지막 나눈 석별의 인사였다.

세월은 흘러도 이런 가슴 훈훈했던 일들은 생각 할 수 록 미소 짓게 되고 가슴이 따뜻해온다.

남쪽 장전 쪽에서 기차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시커먼 기차가 검은 석탄연기를 온 하늘에 뿜어 올리며 역 구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치익 칙- 포오옥 폭-’ 가쁜 숨을 내쉬며 멈추어 서자, 화통은 -’하는 소리를 내며 뿌연 증기를 뿜어냈다.

이때 교복을 단정히 입은 두 여학생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가슴이 뛰었다. ‘미처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는 구나생각했었던 여학생들이었다. 몸성히 잘 다녀오라며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손을 내밀어 두 여학생의 손을 잡고 잘 있으라며 인사를 했다. 너무나 기약할 수 없는 작별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란 거미집의 거미줄만큼이나 약하고 가느다란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영원히.


 

기차 창 밖에서 자식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말하며 손을 흔드는 어머니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창문과 출입 계단에서 손을 흔드는 아들들, 눈물을 옷고름에 닦으며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가족들, 선생님들, 친구들……. 이들을 남겨두고 기차는 석탄연기를 날리며 기적소리와 함께 북쪽을 향해 미끄러져 갔다. 우리들은 기차가 들판을 지나고 동산의 모퉁이를 돌아 고저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가에 기대어 그 쪽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우리는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빈자리를 찾아 좌석에 앉았다. 나도 한 군데 비어있는 좌석에 앉았다. 모두들 얼굴이 벌겋게 충혈 되었고,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이별의 순간을 머릿속에 새겨 넣고 있는 눈빛들이었다. 모두가 하나하나 마지막이었다.

이 철도로 다시 되돌아갈 친구는 얼마나 될까?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친구는 얼마나 될까?

 


헤어질 때 해맑은 웃음으로 손을 잡아주던 두 여학생의 따뜻한 체온이 아직 손바닥에 남아있는 듯했다. 그 반짝이고 빛나는 눈빛, 고운 음성이 남긴 여운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앞에 있던 친구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지나가는 열차 판매원을 세웠다. 담배, 소주, 안주를 받아서 한 잔씩 나눠들고 건배를 했다.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 장군과 당을 위해 충성을 바치자.

비록 검을 교복을 입은 학생에 불과하지만 , 마음과 말은 이미 인민군이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계속적으로 군사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내일 군복으로 가라 입으면 그대로 인민군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소주잔 축배를 계속했다. 그리고 백두산시를 고래고래 소리쳐 불렀다.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 하련다!

백호의 소리 없는 웃음에도

격파 솟아 구름을 삼킨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로

이 땅을 파 몰아치던 살풍에

마르고 탄 한가슴을 추기고

천년 이끼 오른 바위를 벼루 돌삼아

곰팡이 어렸던 이 붓끝을 육박의 창끝인 듯 고르며

이 땅의 이름 없는 시인도

해방의 오늘 말 하련다!

첩첩 층암이 창공을 치 뚫으고

절벽에 눈 뿌리 아득해지는 이 곳

선녀들이 무지개 타고 내린다는 천지

안개도 오르기 주저하는 이 절정!

세월의 유수에

추억의 배 거슬러 올리라-

어느 해 어느 때에

이 나라 빨치산들이 이곳에 올라

천심을 떠받으며

의분에 불 질러

해방 전의 마지막 봉화 일으켰느냐?

.........

백두산조기천 지음- 의 머리말.

 

 

나는 이 시를 좋아했다. 술기운에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겉으로 태연한 척 축배를 들고 있는 사이 기차는 원산 역에 도착했다. 계속해서 시를 읊어대고 있었는데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파출소의 한쪽 귀퉁이 나무의자 이였다.

갈증이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

동무, 물 좀 주시오 동무!

이제 술 좀 깨냐?

어디선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이 덜 깬 탓인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술기운이 낳은 것 같잖은 용기로 나도 지지 않고 맞받아 소리쳤다.

아니 동무들, 위대한 김일성 장군의 빨치산을 계승한 인민군을 이렇게 대우하는 거요? 동무들!

너는 아직 인민군이 아니야. 학생이야. 정신 차려!

아까 비아냥거리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호통을 쳤다.

인민군에 가는 것을 내세워 그 불편한 심정의 화풀이를 죄 없는 괜한 내무서원에게 하는 것이었다. 동에서 뺨 맞고 서쪽에서 화풀이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을 모아놓고 지원이라는 명목을 씌워 끌려가는 것에 대한 변형된 반향인 것이다. 학교졸업도 못하고.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 하련다!

누가 말하지 말라더냐. 말로 하지 않고 왜 사람을 치는 거냐? 저 유리창은 왜 박살을 내고?

상황을 알고 보니 만취한 내가 물을 달라고 소리를 질러 물주전자를 주었더니, 물을 꿀떡꿀떡 마시고는 물주전자를 창으로 던져 유리창이 깨졌다는 것이다. 열차에서 술을 마신 것이 모든 사고의 원인이었다. 열차가 원산 역에 도착하자 우리는 모두 내려서 인원을 점검하고 新豊里 덕성국민학교로 가던 길에 그만 교통 정리하는 내무서원하고 시비가 붙었던 것이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공무집행 방해, 상해, 파출소 기물 파손……. 나는 파출소 소장 앞에 불려갔다. 나이가 지긋한 파출소장은 음성이 점잖았고 마음씨도 좋아 보였다. 그러나 옆자리에 마땅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젊은 사람은 미동도 않고 꼿꼿이 앉아 나를 노려보았다. 그는 시종 칼끝 같은 눈으로 찌르듯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고, 그 옆의 또 한 사람의 부릅뜬 눈에서는 살기까지 느껴졌다. 파출소장이 내게 질문했다.

학생,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나?

. 알고 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됐어. 그런 실수는 안 돼, 술을 마신게 탈이지……. 인민군에 가는 것 같은데 집결하는 장소는 아는가?

.

일그러진 얼굴에 관자놀이까지 파르르 떨릴 정도로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한 사람이

소장동무, 깨진 유리창 값은 물려야지요.

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내무서 파견소장은 그에 대해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다. 열분 미소 뛴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내가 대답했다.

, 유리창 값은 당연히 물어야지요. 그런데 지금은 가진 것이 없으니 조국통일하고 와서 돈 벌어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라나 6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때 갚겠다고 한 유리창 값은 비운의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