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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를 읽고(글/김만석)

2017.08.01 11:07

관리자 조회 수:227

[피로사회]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었다. 7월 글쓰기신문에 실을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이 책을 시립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나는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아연실색했다. 어려운 철학 책이라는 것을 직감하면서, 물러 설 것인가, 그대로 부딪쳐볼 것인가를 놓고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책의 분량이 120여 쪽에 지나지 않는 문고본이라서 하루에 다 읽을 수는 있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어려운 책인데다 나의 남독하는 습관 때문이었을 게다.


저자 한병철은, 21세기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패러다임이 변화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성과사회의 문제점으로 성과주체들이 자기착취를 하는 가운데,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역설했다.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철학적인 것을 쉽게 표현할 방법은 없을까를 궁리해보았다. 그러다가 50대 중반의 김 부장이라는 인물을 가공하기로 했다. 그는 어느 중소기업의 영업부장인데 그의 가족으로는 어여쁜 아내와 고등학교 3학년인 딸 영희,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영수가 있다.


영수는 아침 등굣길에 나서기 전, 엄마로부터 항상 주의를 받는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장난치지 마라’ ‘길 가다가 한눈팔면 안 된다’ ‘군것질 하지마라’ ‘손은 깨끗이 씻어야 한다.’ 등등. 이처럼 금지와 명령으로 부정성을 토대로 조직되어 있는 사회 환경 속에서 영수는 살고 있다. 영수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규율 사회다. 규율 사회에서는 금지, 명령, 법령 등의 규율로 인하여 사람들은 억압을 받게 된다. 그런데 영희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잘 하고 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고 방과 후에는 학원에 간다. 그리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밤늦게 집에 돌아온다. 영희는 s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잠은 적게 자고 공부는 더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고 좋은 남자 만나 시집 잘 가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영희는 생가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고달파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영희는 21세기 성과사회의 성과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규율사회가 타자 착취 시대라면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 시대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성과를 올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는 사회인 것이다. 김 부장은 요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한 것이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김 부장은 영업부 차원에서 자기계발서, 프로젝트 등 영업 계획을 잘 짜놓고 열심히 활동했다. 그런데 영업실적은 목표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경쟁업체에서 신제품을 내놓는 바람에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도저히 만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김 부장은 식욕이 떨어지고, 열등과 절망에 사로잡혔다. 자살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자신감의 결여, 장래에 대한 불안, 사회적 지위에 대한 절망감, 이유 없는 죄책감, 망상 등도 나타난다. 전문 의사로부터 우울증이 심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런 현상은 영업팀 전반에 번지고 있다. 박 과장은 만사 짜증만 내고 무기력해졌다. 과거에는 일을 완수하고 나면 쾌감을 느꼈었는데 지금은 삶 자체가 무의미하게 다가왔다. 잠도 설쳤다. 박 과장에게는 소진증후군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스트레스성 뇌의 피로로 대두되는 소진증후군에서 벗어나려면 명상이나 사색 등 개인 시간을 보내며 감성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무한 경쟁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감성 에너지를 충전할 겨를이 없다. 머뭇거리다간 낙오되기 십상이다. 강 대리도 정황은 비슷하다. 아침에 출근하면 윗사람 눈치 보기에 바쁘다. 영업 실적이 부진한 것이 자기만의 책임인 것은 아니지만 항상 죄 지은 기분이다. 주의력 집중이 안 되고 안정을 못 찾는다. 무언가 부산한 행동을 할 뿐이지 실지로 일이 손에 잡히는 건 없다. 강 대리에게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런 것들은 성과사회에서 성과주체들이 겪게 되는 정신 질환들이다. 탈진과 우울상태에 빠진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의해 소모되어버리는 셈이다. 하나라도 더 이루어야 한다는 초조감, 자기 자신으로 인해,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탈진해버린다. 성과주체는 점점 더 빨리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마모된다. 이것이 ‘피로사회’다.


저자 한병철은 21세기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패러다임이 변화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성과사회의 문제점으로 성과주체들이 자기착취를 하는 가운데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깊은 심심함’ 즉, 사색적인 삶을 권유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깊은 심심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적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이와 동시에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는 니체의 아포리즘을 인용했다. 사색적인 삶, 이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삶이긴 하다. 그런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성과주체들이 사색적인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거리감이 있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23p, 21세기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24p,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다. 이러한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금지의 부정성이다. ~해서는 안 된다가 여기서는 지배적인 조동사가 된다. ~해야 한다.에도 어떤 부정적 강제의 부정성이 깃들어 있다. 성과사회는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점증하는 탈규제의 경향이 부정성을 폐기하고 있다. 무한정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자리를 대신한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환자와 낙오자를 낳는다.


26p, 알랭 에랭베르는 우울증을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규정한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권위적 강제와 금지를 통해 인간에게 사회 계급과 성별에 따른 역할을 부여하는 행위 조종의 모델이 만인에게 자기 주도적으로 될 것, 자기 자신이 될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규범으로 대체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울증을 초래하는 요인 가운데는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도 있다.


28p, 알랭 에랭베르에 따르면 우울증은 규율사회의 명령과 금지가 자기 책임과 주도로 대체될 때 확장되기 시작한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32p,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47p, 니체는 <황혼의 우상>에서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배우는 목표는 ‘고상한 문화’라 했다.”


65P, 활동사회라고 할 수 있는 성과사회는 서서히 도핑사회로 발전 한다. 도핑은 성능 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도핑의 부정적 표현은 신경 향상으로 대체된다. 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 된다.


67P, 피로는 폭력이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감,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92P, 자유와 탈규제의 이념을 내세우는 오늘의 성과사회는 규율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제한과 금지를 대대적으로 철폐한다.


94P, 탈진과 우울상태에 빠진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에 의해 소모되어버리는 셈이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자기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탈진해버린다. 우울증은 주도권을 쥐려고 노력하는 주체나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좌초됨으로써 얻게 되는 병이다.


97P,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자주성에 지쳐버린 사람 즉, 자기 자신의 주체가 될 힘을 상실한 사람이다.


101P, 성과주체가 자기 자신과 경쟁 하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


103P,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 사회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프로젝트는 성과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날리는 탄환이다.


104P, 21세기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 질환은 모두 자학적 특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