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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한다는 것은(글/서옥경)

2017.07.27 13:30

관리자 조회 수:369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 아들 내외 가까운 동네로 이사 가려고 마음먹었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긴 한다. 그저 편하게 주저앉고 싶은 생각과 맹렬히 씨름을 한동안 했다. 우선 살면서 축적된 물건들을 정리한다는 것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아무리 포장 이사를 한다고 해도 결국은 본인 물건은 스스로 챙겨야만 한다. 그동안 시내 한복판에서 편리한 교통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출퇴근했다. 북한산 자락으로 옮기면 길 위에서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선다. 아파트 평수도 많이 줄여서 가기 때문에 살림살이도 파격적으로 줄여야만 한다. 이래저래 생각하고 미리 계획만 세워도 머리가 지긋지긋할 정도다.

 


나름 부지런히 집안 살림을 잘 정리하며 산다고 자부했는데 이삿짐 챙기면서 구석구석을 뒤져보니 눈 가리고 아웅 한 격이다. 엄청난 물건더미 속에 오랫동안 갇혀 살았다. 집이 사람을 위한 장소인지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곳인지 구별을 못 할 정도다. 수납장 곳곳에 보물처럼 모셔둔 것들이 셀 수 없을 정도다. 수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교자상부터 수십 자루의 색연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옷과 가방 그리고 장신구를 펼쳐 놓으니 연예인이 따로 없다. 날씬해지면 입겠다고 미루어 두었던 옷, 좀 더 용기가 생기면 치장하려고 사둔 대담한 액세서리, 그리고 특별행사 때 신을 높은 하이힐까지. 언젠가는 각자의 가치를 뽐낼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수년째 방치된 상태다. 잊어버리고 입지 않았던 옷이 그토록 많은 줄 몰랐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거리며 항상 눈에 익숙한 옷만 꺼내 입는다. 1년 동안 입지 않는 옷은 과감히 버리라고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버릴까 말까 몇 번 망설이다가 결국 제자리에 다시 걸어 두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뾰족한 도리가 없다. 쌓아둔 물건을 버리지 않으면 나를 버리고 물건만 옮겨야 할 판이다. 큰 평수가 아닌 10여 평 이상 작은 평수로 옮겨가니 눈 질끈 감고 버릴 수 있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방 하나가 없어지니 그만큼의 공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 친한 이웃을 불러 필요한 것을 고르게 하기도 하고 쓸만한 것들은 모아서 오가는 사람들이 손쉽게 가지고 갈 수 있게 분리수거함 앞에 가지런히 진열도 했다. 아파트 청소 아주머니와 경비 아저씨께도 버릴 물건들을 선보였다. 난간에 있던 벤자민 나무는 아래층 선생님께 보내고 아들이 쓰던 배낭 가방은 어느새 경비아저씨 출퇴근 가방으로 사용한다. 어떻게든 허망하게 없어지는 것보다 누군가가 가지고 가서 사용하면 죄의식에서 조금은 탈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도 가지고 가지 않는 물건들은 미련 없이 폐기 처분한다. 정들었던 그릇들이 폐기물 봉투에 실려 나가자마자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니 왠지 미안하고 염치가 없다.

 


조금씩 빈틈이 생기면서 앞 난간이 훤해졌다. 난간에서 살짝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유난히 시원한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17년 동안 한 번도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걸상에 앉아서 바깥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지 못한 것 같다. 우리 아파트 건물은 디귿 모양의 구조라 건너편에서 아니면 옆 복도 쪽에서 쉽게 우리 집 내부를 엿볼 수 있다. 아무도 관심두고 쳐다보는 사람 없건만 난간 창문에는 항상 블라인드를 내려놓는다. 작은 탁자와 의자는 장식용으로 심심한 듯 거실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이삿짐 포장을 기다리면서 걸림돌이 되기 십상인 나는 조그마한 나무의자를 가지고 텅 빈 난간으로 피신하여 책을 읽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빈 곳이 주는 상쾌함에 가슴속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트인 공간이 주는 여유를 진작 누려 보지 못한 어리석음을 탓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사 온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차츰 정리되어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큰 옷에서 적당히 맞는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한 번 더 작은 집으로 옮기면 확실히 몸에 딱 맞는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부터는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서도 어떤 지인처럼 정기적으로 주변 물건을 정리하는 버릇을 길러야겠다. 살면서 필요한 것들은 정작 손 곱을 정도인데 한곳에 오래 정착해서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쌓이는 건 물건뿐인 것 같다. 소유한다는 것은 결국 덧없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리라. 비우면 비운만큼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는 단순한 진리도 망각한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멀게만 느껴진 출퇴근길도 이제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다 살게 마련인가 보다. 그동안 사용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지하철 실버카드로 어르신의 혜택을 오랜만에 누리고 있다. 역무원이 신분증을 보자고 부르는 불편함만 없으면 공짜가 주는 행복감도 쏠쏠하다. 주중에는 차를 사무실에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가능한 혼잡한 출퇴근 시간을 피한다. 운이 좋으면 타자마자 자리를 차지하고 여유롭게 책도 읽을 수 있다. 아직은 경로석에 앉을 배짱이 없다. 설령 용기 내 앉는다 해도 누가 와서 신분증 보자고 다짜고짜 따질까 봐 지레 겁이 난다. 좌석확보는 그날의 운에 맡기고 다리에 힘을 키우는 편이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출퇴근길에 지하철역까지 아침저녁 둘레 길을 걸으며 오랜만에 마음의 풍요로움을 맛본다. 감사의 단어가 입에서 절로 흘러나온다. 푸르른 자연이 주는 풍경이 어느덧 장거리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옛집은 창덕궁이 인접해 있어 우리 집 앞마당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북한산을 지척에 두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 집 앞마당은 북한산이라고 고쳐 불러야겠다. 젊은이의 데이트 장소로 알려진 대학로에서 그동안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바쁘게 살았다면 한적한 이곳은 땅과 나무와 친하게 지낼 것 같다. 어차피 자연과 하나 될 인생이라면 미리 가까이 다가가는 연습도 필요할 듯하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실로 내게는 엄청난 일이다. 삶의 터전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모든 물리적인 시간에서 이별하는 것이다. 집안 곳곳에 묻어난 내 삶의 흔적과도 헤어져야 한다. 이별의 대상이 무엇이 되었던 헤어짐이란 슬프고 가슴 아프다. 하지만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에 견딜 수 있으리라. 오랫동안 한 울타리 안에서 기쁘고 힘들었던 모든 순간이 나를 조금씩 성장시켜준 자양분이 되었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곳에서 현재와 미래를 위한 기대와 설렘을 가질 수 있어 지금 행복하다. 새로운 꿈도 꾸어보자. 내가 사는 자리가 꽃자리가 되도록. 설령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으리라. 구상 시인의 꽃자리시가 떠오른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 꽃자리니라.

 

2017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