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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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글쓰기 신문에 게재된 독서 감상문을 쓸 대상으로 추천된 도서 12권 중에서 내게 제일 관심을 끈 책은 근대사회의 변화와 기독교였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책 제목을 통해 이 책이 어떤 책일 거라고 짐작한 것이 있었고, 책 내용으로 짐작한 내용이 나의 관심 분야이기 때문이다. 나의 책 제목만 보고 든 짐작은 근대사회의 변화와 근대사회에 기독교가 미친 영향을 다룬 책으로 짐작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존 로크, 애덤 스미스, 알렉시스 토크빌, 세 명의 공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책을 막상 구해서 읽어 보니 책 내용도 내가 짐작한 것과 달랐고, 저자도 뜻밖에, 열거된 세 명의 공저가 아닌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는 박명수 교수가 쓴 책이었다. 적이 당황스러웠다. 내 짐작과 달랐던 것은 알고 보니 내용이 이랬다.

 

 

저자가 근대사회와 복음주의의 관계를 연구하는 가운데, 전통신학에 익숙한 기독교 신학자들보다 위에 열거한 세 명의 근대사상가가 오히려 변화하는 사회를 잘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어떤 혁신을 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뜻밖의 장소에서 스승을 만난 기분으로 이 세 명 사상가의 사상과 주장을 인용하면서 이 책을 쓴 것이었다. 그리도 세 명의 사상가의 공저처럼 표기된 것은 단순한 실수로 이해하였다.

 

책은 다음과 같이 크게 3장으로 나누고, 각 장에서는 존 로크, 애덤 스미스, 알렉시스 토크빌, 3명의 이론과 주장을 설명한 뒤에, 그들의 이론과 주장을 바탕으로 근대사상가들이 어떻게 종교를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이 근대 사회의 종교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더 하여 기술하고 있다.


 

1장 존 로크(1632~1704)의 관용론과 자유교회의 등장

2장 애덤 스미스(1723~1790)의 자본주의와 근대 기독교

3장 알렉시스 토크빌(1805~1859)과 민주주의의 도덕

 

 

1장에서 저자는 존 로크를 근대 사회의 핵심인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를 확립한 위대한 사상가로 규정한다. 이전의 서구사회는 기독교의 단일성에 근거한 사회였는데, 근대 사회에서 이 단일성은 사회에 평화보다 분열을 가져온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존 로크는 다양한 종교를 관용하는 것이 사회에 안정을 가져오는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런 사상은 국가의 임무에서 종교 보호를 삭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는 근대 사회에 복음주의 신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독교를 가져왔다. 복음주의 신앙은 과거 기독교의 전통이나 제도, 교리보다 성경에 쓰인 대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고 믿는 신앙이다. 복음주의 신앙은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인 관계에 기초해야 한다고 믿는다.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서 하나님을 믿어야 참된 신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존 로크의 주장 중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좀 이해가 안 되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사회에서 종교가 존재하려면 종교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힘, , 기적에 의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종교가 참된 종교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입증하기 위해 기적을 나타내 보인 적이 있지만, 기적의 유무를 참 종교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존 로크의 신앙을 의심하게 하고, 나아가서 그 이론이 타당한 것처럼 언급한 저자의 신앙도 의심하게 했다.

기적과 더불어서 존 로크가 강조한 것은 도덕인데, 정교가 분리된 상황에서 종교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사회의 도덕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종교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 대목도 나온다. 이것도 좀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종교가 비도덕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종교가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으로 종교의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 것은, 종교의 본질을 흐리고 세속의 필요에 맞추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종교, 특히 기독교 성경의 가르침은 도덕과 비교하여 한 차원 높은,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류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자본주의 사상의 기초를 놓은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부가 사회의 부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빈자와 부자의 상생을 의미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건전한 도덕이고, 이것을 가르칠 의무가 종교와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빈자가 부자의 부의 정당성을 인정할 때, 부자의 부는 안전한 부가 되고, 부자는 자신의 부를 빈자를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부자는 자신의 부를 빈자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명제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으로 들렸다. 이런 주장보다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강자와 약자 간의 공정거래경제 민주화가 더 현실성 있는 명제가 아닌가 싶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 본질 중의 하나인 경쟁을 언급하면서, 이 경쟁이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됨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이 경쟁은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근대는 종교 경쟁사회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 종교 경쟁사회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경제 사회에서 공급자가 수요자의 만족을 시킬 수 있어야 경쟁에서 이기는 것처럼, 종교의 사활도 대중들의 종교심을 만족하게 해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수록 교과서에서 배운 근대 대 철학자요 사상가들의 논리가 맞는지를 의심하게 되었고, 혹 저자가 인용의 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유발되기도 했다.

 

 

3장은 알렉시스 토크빌의 이야기인데, 알레시스 토크빌은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역사가로 미국의 민주주의구체제와 프랑스 혁명이라는 책을 남겼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토크빌이 미국 여행 후 집필한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라는 책에 있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서구 계몽사상가들은 신의 존재, 최후의 심판,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도덕이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건전한 종교의 교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근대 사회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미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주장의 타당성을 보게 되었다. 유럽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미국 사회는 방종으로 흐르고, 앞으로는 혼돈에 빠질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러나 토크빌이 미국에 와서 직접 보니 달랐다. 미국은 유럽보다 더 도적적이고 사회 질서는 잘 유지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종교, 즉 미국 기독교의 자발적인 힘이라는 걸 확인한 것이다. 국가 권력에 기반을 둔 유럽의 기독교보다 자유에 기반을 둔 미국의 기독교가 더욱 튼튼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토크빌은 미국 기독교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조화시키도록 만든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여기에서 그는 합리적으로 이해된 개인의 이익이라는 중요한 용어를 만들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 종교의 역할이 있다고 보았고,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했던 역할을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과연 할 수 있는가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과제라는 말로 책은 마무리를 짓고 있다.

 

 

이상과 같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부분적으로 공감이 잘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 의견도 피력하였다. 나는 저자가 쓴 책을 어떤 동기로든 내가 선택하여 읽는 독자의 입장을 넘지 않으려고 저자의 노력과 수고를 겸손한 마음으로 받드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저자와 나는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편에 선 것이 아니고 같이 그리스도를 좇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입장에서 공감하기보다 중요도에 있어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우선 현대 기독교의 문제점 해결 방안을 아무리 탁월한 사상가들이라 하더라도 17세기, 18세기의 근대 사상가들의 논리에서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지나간 역사에서 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이나 교훈을 얻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시간의 차이라는 건 해결책을 찾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회는 변하기 마련이고, 그에 따른 문제점의 성향도 2~3세기 정도의 격차를 있게 되면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책을 쓴 시기인 2013년 무렵의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의 선정이 잘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가 왜 중요한가 하면 근대의 탁월한 사상가의 힘을 빌려 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과 교훈을 얻을 목적으로 책을 썼다면, 그 문제점의 선정에 많은 사람의 공감할 수 있는 어젠다라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믿는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나를 포함하여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회 지도자라 할 교계의 지도자급 목회자들의 탐심과 비양심에서 비롯된 행위들이 사회법의 심판을 받아 유죄임이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확정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는데도 회개가 없다는 것이다. 성추행, 성폭력, 횡령, 배임 등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신앙양심이 마비된 양상으로 나타나며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덮고 가리는 일로 인해 개신교는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교회가 점점 비어가고, 교회가 유흥업소로 바뀌는 정말 가슴 아픈 일을 우리는 듣고 보고 경험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이의 개선을 위해 책을 쓰거나 설교를 하면서 결코 이를 덮거나 외면한다는 것은 상처가 나 있는 곳은 그냥 두고 엉뚱한 곳을 치료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