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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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16세기 중반, 18세 된 라 보에시라고 하는 프랑스의 한 젊은이가 쓴 글을, 그가 죽은 11년 후 모나르코 마크라 불리던 절대왕정의 저항 세력이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것을 목수정 심영길 두 사람이 공동으로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서문은 목수정이, 후기는 심영길이 썼다. 목수정은 서문에서 원작자인 라 보에시에 대해 그의 출생, 생애 그 당시의 시대상황 그의 천재적 두뇌 그리고 <자발적 복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서술했다.

 

"라 보에시는 1930년 프랑스의 '사를라'라는 소 도시에서 대대로 법관이 배출 된 가문에서 태어났다. 라 보에시가 대학에 입학 할 무렵, 프랑스 귀옌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전제군주는 폭력적 참상을 보였다. 라 보에시는 이 광경을 보면서 전제군주가 행하는 절대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바로 이 사건이 라 보에시가 <자발적 복종>을 쓰게된 직접적 동기가 된다. 르네상스 지식인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역사에 매혹되어 있었는데, 라 보에시 역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저서들을 프랑스어로 옮겨 출판할 만큼 열정적인 고대 그리스 문화의 찬미자였다. 라 보에시의 글은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쓰여진 산물이기도 하다.


<자발적 복종>이 책으로 나오자마자 이 책은 순식간에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후 한동안 잊혀졌던 <자발적 복종>이 세상에 다시 등장한 시기는 프랑스 혁명 즈음해서다. 혁명의 한 주역으로 활략했던 장 폴 마라는 자신의 저서 <노예의 사슬>에서 <자발적 복종>을 언급했고, 같은 시기 혁명가로 대활략했던 피에르 베르니오 역시 라 보에시의 사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한 '독재자가 커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의 무릎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어선다면 그는 더 이상 우리 위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역사적 문장의 연설로 혁명 완수를 갈구하던 민중의 의지에 불을 지폈다. 20세기에 와서도 여러 학자들이 정치철학의 핵심적인 수수께끼인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대중의 문제를 줄기차게 다루어 왔으며 이 후, 후세의 학자들에게도 라 보에시는 그 첫 영감을 제공했다."라고 역자는 서문에서 서술한다.



역자는 <자발적 복종>을 번역 출판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제 한국 사회가 껴안게 된 고통스러운 현실을 타게하기 위해 이 책을 말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어 번역하게 되었다"고 피력했다. 역자는 서문에서 수직적 질서가 우리 삶에 고착된 원인을 지난 역사에서 찾고 있다. "쿠테타로 권력을 탈취한 이 성계가 나라를 지배할 사상적 무기로 유교 사상을 택한 후 무려 5백여 년간 충과 효를 결합하고 사농공상 삼강오륜이 뒤범벅이 되어 빚어낸 결과"라고 수직적 질서에 대해 역설했다. "군부 독재시절 우리는 공포에 장악 되었다. 군부 독재는 자유, 평등, 정의 따위는 '개발''반공'의 불도저로 밀어버렸고,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의문의 죽음을 맞거나 먼 곳으로 유배당한다." "군부 독재는 피와 땀을 거리에 뿌린 시민의 힘으로 극복 되었으나 이번에는 자본의 독재가 우리를 삼켜버렸다. 영원한 ''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자본가들의 갑질을 성토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익명의 네티즌으로서의 성토일 뿐 막상 현실에서는 ''이라도 되는 상황을 감지덕지 끌어안는다."라고 토로하면서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역자는 대한항공 '땅콩 회항'을 들어, 오너 일가의 만행을 보면서도, 대한항공 동료들이 침묵을 지키기만 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그들의 오늘의 위상을 만든 것은 바로 복종해 온 그들 자신이었다."라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자발적 복종>이 말하는 사상은 기존 권력에 대항해 투쟁할 때, 그리고 국가의 인권탄압에 대해 맞서 싸울 때 참고로 할 사상이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 때 빛을 봤다. 이 책이 지금 한국어로 번역된 것도 현재의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해있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염원에서 이루워진 것 같다.

 



복종, 인간의 놀라운 악습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독재자에게 복종하고, 그 자발적 복종의 첫 번째 이유는 습관이다. 그 습관은 교육과 양육방식에 의해 길들려진다. 말에게 재갈을 채우면 처음에는 재갈을 물어뜯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재갈을 갖고장난질을 한다."

"스파르타의 입헌군주 리쿠르고스는 개 두 마리를 키웠다. 한배에서 난 개 두 마리는 같은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다가 이유기를 지나면서 한 마리는 부엌에서, 다른 한 마리는 사냥터에서 자라게 했다. 어느 날 리쿠르고스는 개 두 마리를 시장 한가운데 데려다 놓고, 산토끼 한 마리와 먹이 한 그릇을 그들 앞에 내려놓았다. 교육 방식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훈육 방식에 따라 사람이 어떠한 변화를 겪는지를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부엌에서 자란 개는 즉시 먹이가 담긴 그릇을 향해 달려갔고 사냥터에서 자란 개는 산토끼를 쫓았다.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지만 그가 처해있는 환경 교육과 훈육 방법에 따라 판이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자발적 복종>의 주요 내용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것이고, 그 자발적 복종의 첫 째 이유로 습관을 들었다. 나는 이 주장에 의견을 달리한다. 습관은 앞에서 얘기했듯이 교육과 훈육 방식에 따라서 판이하게 달라지는데 자발적 복종의 이유가 습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습관이 길들려진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길들려지는 것이 반드시 복종하도록 길들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자유,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재산 목록

"민중은 흔히 자발적으로 굴종을 택하고 스스로 목을 자른다. 노예가 될지 자유인이 될지를 선택하는 것은 민중 자신이다."

"천부의 권한인 자유를 되찾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그것은 짐승에서 다시 인간이 되는 것이라할 수 있다."

"자유는 가장 중요하고,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을 선사하는 재산이다. 그런데 우리는 욕망의 대상에서 오직 자유라는 재산만은 소홀히 다룬다."

 

민중이 자발적으로 굴종을 택하고 자유라는 천부의 권한을 소홀히 다룬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 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세상의 틀이 짜여져 있고, 민중은 그 틀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현대에는 독재군주의 자리를 돈이라는 괴물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사회환경 속에서는 천부의 인권인 자유와 평등은 가난한 자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돈의 위력은 크다. 그래서 누구나 돈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 그러다가 돈이라는 괴물의 노예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돈이라는 괴물이 그러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스스로 굴종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발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의 틀이 굴종할 수밖에 없게크롬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유형

"독재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1, 민중의 선출로 권력을 부여받은 자.

2, 무력으로 나라를 차지해 통치하는 자.

3, 권력을 상속받아 군림하는 자.

이 세 유형은 통치력에 도달하는 방법은 달라도 통치하는 방식은 거의 동일하다. 선거로 선출되어 권력을 쥔 독재자는 민중을 마치 황소를 길들이듯이 할려고 하고, 정복자들은 백성을 노획물로 여기며, 권력을 세습한 자들은 백성을 그들의 당연한 노예로 간주한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선거로 선출된 독재자이다.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전횡을 일삼는다면, 우리는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국민에겐 탄핵이라는 무기가 있지 않은가. 이것이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다. 전제국가에서라면 혁명이 그 수단이 되겠다.

 


백성을 잠들게 하라

"독재자들은 어리석은 백성을 더 좋아한다. 마음대로 조종하기 쉬우니까 그럴 것이다. 백성을 바보로 만드는 책략을 쓴 전제 군주로는 페르시아 제국의 건국자 키루스 대왕이 유명하다. 키루스 대왕은 리디아 왕국의 수도 사르디스를 정복하고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을 체포해 포로로 만든다. 사르디스의 주민들이 이에 저항했다. 카루스는 병력으로 소요를 진압하는 대신 다른 묘책을 쓰기로 했다. 아름다운 도시를 불태워 파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묘책이란 사르디스에 사창가와 술집, 공중도박장 등을 허가하는 것이었다. 이 방침을 왕령으로 발표하고 국민들도 이 사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모든 국민이 이 정책을 환영했다. 그러자 더 이상 국민을 다스리는데 무기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가련하게도 국민들은 점점 더 많은 놀이에 빠져들어갔다."

"어떤 독재자도 자신이 지배하는 백성들을 유약하게 만들 계략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전제 군주들이 물밑에서 백성들을 어리석고 나약하게 만들기 위한 술수를 모색했고 다양한 방법들을 실행에 옮겼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지배자에게 순진하게 속고 만다. 백성들은 조금만 부추기면 미끼에 넘어간다. 연극 구경, 광대, 검투사, 훈장 기타 또 다른 마약같은 것들이 고대 사람들에게 복종의 미끼요 자유를 파는 값이었다. 고대의 독재자들은 백성을 예속 상태에 붙들어두기 위해, 이들을 잠재우는 유혹의 수단과 방법으로 이 독재의 도구를 사용했다. 그렇게 길든 사람들은 바보가 되어 마약과 같은 놀이와 구경거리에 중독되어 버리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까만, 요즘 스마트폰 주독에 대해 자주 논란이 되고 있다. 설마 이것이 국민을 길들이려고 하는 술책은 아니겠지? 그럼 문화계에 불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구분해 놓고 국민들의 정신을 자기 입맛대로 조종해보겠다는 착상은 어떤가? 글쎄! 이것은 후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 이 술책이 먹혀들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우리 국민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 아닐까?

 


지배의 공식

"이제 전제군주의 지배 원동력이자 그 비밀을 살펴보자. 도끼나 창, 경비병, 헌병대가 독재자를 지킨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경비병들은 궁중 안에서 거사를 치룰 수 있는 완전무장한 사람들을 막지는 못한다. 로마 황제 중 경비병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황제의 수보다 경비병의 화살에 맞아 죽은 황제의 수가 더 많다. 독재자를 보호하는 것은 언제나 대여섯 명이 독제자의 권력을 떠받들고 그것을 유지한 바로 대여섯 명의 신하가 온 국민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다. 이들은 언제나 왕의 귀 노릇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 왕에게 접근하거나 왕의 부름을 받고 왕의 잔악한 짓을 공모하기 위해 모인자들이다. 이들은 왕의 쾌락을 위한 동반자이고 왕의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국민들의 살림을 약탈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공범들이다. 이 대여섯 명의 수하가 조력자 6백 명을 거느리고 있고, 6백 명은 그들 수하에 6천 명의 부하를 거느린다. 6백 명의 부하 6천 명을 지방 총독이나 관리가 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킨다. 자신들의 엄청난 물욕과 잔악한 행각으로 나라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너무 많은 죄를 저지르는 까닭에 상전의 그늘에서나 보신 할 수 있으며, 상관의 덕으로 법의 심판과 징벌로부터 놓여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민주주의가 발달된 오늘날에도 흔히 목격된다. 권력의 비호 아래 전횡을 일삼다가 비참한 꼴을 당하는 세력들 말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집권자는 그 권력을 영원토록 행사하기 위해서 피라미트 조직을 만든다. 그렇게 되면 상층부의 말 한 마디로 하부조직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 권력자들 곁에 있는 00사모,ㅇㅇ연맹, ㅇㅇ부대 같은 조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조직만 잘 운영하면 선거의 여왕도 될 수 있고 선거의 제왕도 될 수 있다. 때로는 집회에 동원해 민심을 왜곡하는 데 이용한다. 이런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권력을 쥐고 있는 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경유착이란 게 있지 않은가. 재벌이 스스로 돈을 바치기도 하지만, 권력을 등에 업은 자가 손을 내밀면 재벌은 마지못해서라도 안 주고는 못 배긴다. 이렇게 모은 돈을 추종자 몇 명에게 하사하면, 그 추종자들은 그 밑의 부하들에게 나눠주고, 그것을 받은 부하들은 하부 조직원에게 먹고 남은 콩고물 조금씩만 뿌려주면 감지덕지 한다. 이들은 옳고 그름에는 관심이 없다. 하라는 대로만 움직이면 콩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



 

군주와 신하들, 그 인간 이하의 삶

"독재자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행위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헌상하는 대가로 의식주에는 궁핍함이 없지만, 자유가 전혀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첨꾼은 독재자가 말하는 대로만 해서는 부족하다. 그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려서 군주를 만족시키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다가아니라 환심을 사야한다. 군주의 말과 목소리, 그의 눈짓과 사소한 표정의 변화에 유의해야 한다. 이것이 독재자의 측근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렇게 사는 인생이 행복할까? 그들이 복종하는 까닭은 재화를 얻기 위해서다.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수하에서 권력자의 야비함을 이용하거나 그들의 단순함을 간교하게 이용해가며 부를 축적했고, 결국에 가서는 하나같이 그들이 차지한 부는 물론 목숨까지도 잃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비교적 쉽게 출세가도에 오르지만, 내내 언제 처단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지배자가 쓴소리 하는 충신을 멀리하고 아첨꾼만 주변에 두는 경우, 국민까지 불행으로 몰아넣는 비극이 시작된다. 권력자에게 아부하여 쉽게 재물을 모으고 쉽게 출세한 사람들의 말로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모습은 여름날 저녁 불빛을 보고 덤벼들었다가 그 불에 타 죽는 하루살이를 연상시킨다. 이들은 쉽게 출세했고 재물도 모았지만, 감옥에 가야하는 신세가 된다면 그 삶이 행복한 삶은 이닐 것이다.

 



역자 후기

"천년 이상 지속된 유럽의 중세기는 동방 유대 민족의 종교 아래 존재했다. 야훼의 은총으로 통치권을 위임 받은 군주는 야훼의 지상 대리인으로서 보호라는 미명 하에 백성을 지배하고 구속했다. 유대인들이 야훼를 유일신으로 섬김으로써 독제군주의 통치제도가 당위성을 얻는 절대적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선택의 여부를 따질 수 없는 유일신을 향한 획일적인 신앙에서 인간과 신의 관계는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애초에 신은 단수가 아니고 복수였다."

"르네상스의 미풍이 이탈리아에서 번지기 시작하여 유럽은 구태에서 탈피하기 시작한다. 신의 통치에서 인간의 통치 질서로 방향을 틀게하는 인문주의자들은 구습의 벽을 허물고, 그리스 라틴어로 기록된 고전의 책장을 열어 그 내용을 밝게 비췄다. 플라톤의 <공화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16세기 정치제도에 쐐기를 박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수도원의 금서 감옥에 갇혀 있던 휴머니스트들의 정신을 탈출시켰다. 새로운 질서의 여명에 기성교단(카톨릭)은 독재자의 질서를 방어했지만 마침내 루터와 칼뱅이 종교개혁에 나서면서 16세기는 정치철학의 세기가 된다. 종교와 군주가 민중의 삶을 전제하는 독재자로 군림하는 시대에 반동하는 선지자가 나타난 것이다. <자발적 복종>의 저자 라 보에시는 근대정신의 한 특징인 정치철학이 태동하는 16세기에 태어났다. 라 보에시는 33세에 전염성 복통으로 요절한다. 임종 직전에 유언서를 작성해 자신이 쓴 모든 원고와 서적을 절친인 몽테뉴에게 상속한다. 라 보에시는 독재의 가장 패악적인 범죄는 민중을 우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정의에 무지하고 무감각하게 민중을 길들이면서, 선량한 국민으로 교화하는 것이라고 감언이설로 둘러대는 것이다."

"유럽에서 나치의 악행이 자행되는 수년 간, 마땅히 규탄했어야 하는 일인데도 로마교황청은 침묵을지켰다."

 

중세 시대에는 종교와 절대독재자가 한통속이었던 것 같다. 통치 질서가 신의 통치에서 인간의 통치 질서로 바뀌어가자, 기성교단(카톨릭)은 독재자의 질서를 방어했다. 역자는 후기에서, 선택의 여부를 따질 수 없는 유일신을 향한 획일적인 신앙에서 독재의 뿌리를 찾고 있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현대에는 중동의 이스람권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종교가 정치를 좌지우지 하지는 않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 세력을 지지하면서 몰표를 주어 영향력을 행사한다든가, 특정 세력이 종교의 표를 이용하려는 경향은 있지 않을까 생각 된다. 종교의 행사에 정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것은 그런 의도가 깔려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