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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글/박다인)

2017.06.05 09:32

관리자 조회 수:1375

삼십칠 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 긴 세월동안 참 많이 망설였다. 혹시 그 녀석들을 만날까 싶어서다. 그때의 그 일이 오랜 시간 내 삶의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이젠 풀려나고 싶었다.


여름 방학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학교생활은 한결 느슨해졌고 바람 한 점 없는 교실은 찜통이었다. 텅 빈 운동장은 이글거리는 땡볕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모든 생물들이 작열하는 태양에 눌려 숨을 죽였다. 오전 수업을 끝낸 우리는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모두 단내 나는 숨을 헐떡이며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 비칠거렸다. 구미호가 파헤쳐 놓은 듯 움푹 파인 공동묘지를 지날 땐 섬뜩해 서늘해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조금 있으면 닿게 될 시냇물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개울물은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오아시스였다. 무릎을 꿇고 타는 갈증을 달랬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의기가 통한 우리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소()에 몸을 담갔다. 시원한 물에서 푸닥거리며 놀기를 얼마쯤 지났을까. 몰래 염탐하는 듯한 인기척에 놀라 허둥거리며 젖은 몸에 옷을 꿰었다. 우리 반 사 인조 악동들이었다. 하이에나가 먹잇감을 찾아 헤매듯 늘 재밋거리를 찾아다니는 녀석들에게 딱 걸려든 것이다.


찰나였다. 한줌 밖에 안 되는 하늘색 치마가 무법자 손에 의해 들려진 건. 나의 애잔한 자존심이 난폭하게 유린당했다. 다리를 뻗쳐대며 대성통곡을 했던가. 자기 연민에,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분노로 인해 나를 형편없는 애늙은이로 만들어 버렸다. 대항도 못하고 무방비로 대처한 나 자신을 탓하면서 점점 조용한 아이가 되어갔다.

엄마와 석이 엄마는 가깝게 지냈다. 엄마는 초파일이나 특별한 날이면 높은 산 중턱에 자리한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 어린 나를 앞세우며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몇 개의 능선을 오르내렸다. 절에서 밤을 지새우고 집으로 오는 길에 종종 석이네를 들렸다.


석이는 일 학년 때부터 나와 같은 반이다. 하긴 학년에 한 반밖에 없으니 함께 육년 동안을 보내야 한다. 반에서 가장 먼 동네에 사는 석이와 나, 우리 집에서 작은 산 몇 개를 넘어야 그 애 집이다. 엄마들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나는 석이와 그 애 동생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서로가 모르는 척 말을 아꼈다.

내 은밀함이 유린당한 날, 그곳에 석이가 있었다. 낄낄거리며 웃어대는 네 녀석들 뒤로 희멀건 얼굴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보다 말리지 않은 그 아이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비겁쟁이로 생각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석이네 집에 가지 않았다. 엄마가 어서 볼 일이 끝나기를 마을 어귀에서 기다렸다.


사 학년 때였던가. 장래 희망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우리 반 반장이었던 석이가 우리를 휘둥그렇게 했다. 그 애는 일등 자리를 거의 놓치지 않았고 특히 산수를 잘해 과학의 날이면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갔다. 그런 그 애가 우리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트린 것이다. 아무도 발표하지 않은 농부가 되겠다.‘고 했다. 공부도 제일 못하고 출석 부를 때면 '!’, '?' 라고 대답해 골칫거리였던 칠삭둥이 철이도 훌륭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는데.


나는 부반장이었다. 하도 새침해서 거친 남자아이들도 말을 걸지 않았다. 누구나 하는 말싸움도 안했다. 그런데 내 입 밖으로 튀어 나온 말은 나 자신조차도 뜻밖이었다. 여자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생님도 간호사도 아니고 미스코리아는 더더욱 아니었다. 아이들도 놀란 듯 했다. 또박또박 농부의 아내가 되겠습니다.’고 했다. 교실 안은 이내 웃음바다가 되었고 혹시 둘이 결혼 약속했냐며 한동안 짓궂은 놀림거리가 되어버렸다. 내가 진짜로 되고 싶었던 건 일 학년 때 담임선생님처럼 예쁘고 상냥한 여선생님이 되는 거였는데도...


그날 이후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몸도 아파왔고 마음은 더 통증이 심했다. 그러다 오학년 겨울방학 때 우리 집은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왔다. 한반에 팔십 명도 넘는 교실에서 적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촌티를 얼른 벗어버리고 싶었다. 고향친구들이 종종 그리웠지만 그것도 잠시 녹록지 않은 서울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냈다.


중학교 일 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엄마를 따라 고향에 다니러 갔다. 석이네로 향하는 발걸음이 싱숭생숭거렸다. 한여름 햇살이 석이네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내 하늘색 원피스 위로 쏟아졌다. 해 그늘이 멀어질 때까지 끝내 그 애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날로 고향과의 인연도 끝이었다.


동창들은 사십 년이 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석이를 궁금해 했다. 혹자는 대학교수가 되었을 거라고 했고, 또는 대기업 간부가 되었다고도 했다. 틀림없이 동창들 중에 가장 성공했을 거라며 친구들 간에 소문만 무성했다.

동창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석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면서. 연락이 닿은 후에도 시골집 툇마루에서 석이를 하염없이 기다렸던 지루한 시간만큼이나 길었다. 그는 기대와는 다르게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다만 어렸을 때의 서늘한 눈빛만은 그대로 간직한 채. 나에게는 오랜 애도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상처 받은 소녀로부터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이젠 지금까지 지켜 온 석이의 눈빛에서 고향의 땡볕까지도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