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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락의 뜰(글/김만석)

2017.05.12 08:15

관리자 조회 수:1696

아파트 담장 너머로 호수가 보이고. 그 주변이 공원이다. 나는 석양녘에 호수변을 거닐 때가 많다. 이런 때에는 내가 즐겨 찾는 벤치가 따로 있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감상하기 좋은 위치의 벤치를 내 자리로 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 자리를 먼저 차지한 사림이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은 중년 여인으로 보였다.

나는 그 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 여인은 사람이 다가가는 줄도 모으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럿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이긴 하지만, 여자 혼자 앉아있는 의자에 같이 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앞을 그냥 지나가려 했는데,

"어머! 박 선생님 아니세요?" 한다. 알고 보니 그 여인은 김 여사였다.

"아이구, 내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김 여사였군요."

하면서 나는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김 여사는 60대 중반의 여자이지만, 아직도 50대 여인 못지않은 미모를 유지하고 있다. 전직 교사인데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독신주의자가 아닌가 했었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김 여사는, 여 선생이 일등 신붓감으로 꼽히던 시절에 증권회사 직원과 결혼을 했었다. 남편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객의 돈으로 잦은 매매를 하다가 큰 손실을 입고,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그 빚 때문에 재산이 압류되고 남편은 직장도 잃었다. 이로 인해 가정은 불화가 계속되어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하기 힘들게 되자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김 여사는 이런 인생의 쓰라림을 겪은 후 독신주의자처럼 살아왔다. 김 여사는 정년퇴직 후엔 바쁘게 살려고 노력했다. 어디서 무슨 강좌가 있다고 하면 열심히 찾아다녔고, 산악회 산행에도 열성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활도 오래 되풀이 하게 되니까 차츰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김 여사는 다른 보람 있는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다. 김 여사는 65세가 되면서 노인회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나와는 이 때 처음 알게 되었다.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내가 먼저 김 여사에게 물었다. 김 여사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선생님, 우선 앉으세요.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의론할 상대가 필요 했는데, 잘 만났네요."

이렇게 말하는 김 여사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김 여사와 나란히 앉아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박 선생님은 고독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세요?"

"A동에서 일어난 김 노파의 죽음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있어서는 안 될 서글픈 일이였죠. 김 노파는 노인정에도 안 나오고 다른 사람들과 왕래가 없었습니다." 하고 내가 말 하자 "우리 주변에는 김 노파와 같은 고립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노인정에 나오면 '고 스톱' 화투놀이 밖에 할 일이 없는데 여기에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은 노인정에 나올 수 없을거예요."

죽은 김 노파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외처에 나가 있었다. 아들은 휴일 때 이따금 어머니한테 다녀가곤 했는데 김 노파의 죽음을 알게 된 것도 아들이 휴일 때 집에 왔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김 노파는 죽은 지 7일 만에 발견 되었었다. 김 노파는 자식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서의 혜택을 받지 못 했다. 그렇다고 자식한테 의지할 형편도 못 되었다.

"박 선생님은 노인회 일을 오래 보셨죠?"

"노인회 총무도 수 년 했고, 회장도 수 년 했으니까 오래 한 셈이죠. 보다 활동력 있는 연하들에게 일을 넘겨주고 지금은 노인회 일에서 손 뗀지 한참 되었습니다."

"제가 한 가지 일을 시작해볼까 하는데 박 선생님이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글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에게도 기쁜 일이 되겠지요."

"박 선생님이라면 쉽게 할 수 있을 거에요. 도움이 필요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외로운 노인 너덧 명만 찾아주세요."

"노력해 보겠습니다만 그것은 왜죠?" 하고 나는 그 이유를 물었다. 이 때였다.

"하하하, 아주 깨소금이 쏟아지는 것 같네. 두 분이 언제부터 이렇게 다정해졌나? 질투심이 생기는 걸."

김 여사의 여고 적 단짝이었던 노 여사였다. 노 여사는 시청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활달한 여인이다.

", 잘 만났어, 여기 앉아봐, 같이 의논할 일이 있으니까." 김 여사는 반색을 하며 자리를 권했다.

"다른 사람 열애중인데 내가 중간에 끼어서 어떡하라구?"

"농담할 문제가 아니야, 일단 앉아서 생각해보자구." 노 여사는 나와 김 여사의 중간에 앉으면서 멋 적어 했다.

"무슨 일이기에 이처럼 심각해?" 노 여사에게서도 농담기가 사라졋다.

"지금 노치원 같은 것을 생각하는 중이었어."

"유치원이라면 몰라도 노치원을 해? 노인들을 모아 놓고 어쩔려고?" 노 여사는 정색을 하고 반문했다. 김 여사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차근 차근 설명했다.

"우리 주변에서 고독사 같은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봐. 외로운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어 한식구로 지낸다면 이런 일은 예방되지 않겠어?"

"취지는 좋지만 이상과 현실이 맞아줄까?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할려고?"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노인들이 경로연금 20여만 원 씩 받는 게 있잖아, 그 중에서 약간의 용돈을 빼고, 식생활비로 내놓으면 먹는 문제는 해결될 것같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나머지 경비가 만만치 않을텐데."

그것은 내 사비로 충당할 각오가 되어 있어."

김 여사의 설명은 막힘이 없었다.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도 김 여사의 의견에 동감을 표시했다.

"보릿고개를 겪어본 세대이기 때문에 좀 가난하게 살아도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런데 공동체에 함께 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으면 문제가 될 것 같군요. 그리고 여자들만 대상으로 해야겠죠?"

내가 이렇게 덧붙이자 김 여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한식구로 의지하며 살려는 건데 남자 여자 구분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렇다면 나도 해당됩니까? 혼밥 먹는 사람인데."

"그렇구말구요. 원하신다면 대환영이지요. 아니 원하지 않으셔도 적극 모시려는 참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김 여사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나는 다음 날 함께할 식구들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참여 희망자가 넘쳤다. 그 중에는 자산가로 알려진 최 신실 노파도 있었다. 최 노파는 사업 수단이 뛰어난 사람으로, 젊었을 때 부동산 투자로 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이다. 지금도 아파트 몇 채씩 보유하고 있으면서 세를 놓고 있다. 이런 분은 우리 공동체의 식구로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의 요구를 받아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는 공동체에서 식구로 받아준다면 자기 재산을 공동체에 희사하겠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있은 며칠 후였다. 검찰청에서, 김 여사와 나에게 소환장이 날아왔다. 노치원을 미끼로 노인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는 혐의였다. 나는 공동체 일을 추진하면서 아무한테서건 후원금 한 푼 받은 사실이 없었다. 김 여사와 나는 검찰청으로 불려갔다. 이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자 노인들이 검찰청으로 몰려와서는 '좋은 일 하는 것도 죄가 돼냐!'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렸다. 나와 김 여사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최 신실 노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최 노파가 재산을 생활공동체에 희사할려는 눈치가 보이자 그의 아들이 검찰청에 밀고했던 것이다.

 

나와 김 여사가 검찰청에 다녀 온 다음 날이었다. 정오경에 아파트 주차장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다. 그 차에서 내린 사람은 차림새로 보아 돈 푼이나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가 우리를 찾아와서는 최 신실씨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밀고한 사건은 자기의 오해 때문이었다고 사과하면서 나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었다. 그 봉투 속에는 각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최 신실 씨의 재산을 생활공동체에 희사하는 것에 대해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돈을 제일로 아는 요즘 세상에, 선생님들처럼 훌륭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저의 어머니 뜻을 받아주십시오. 어머니는 이제부터라도 좋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공손히 인사하고, 그는 돌아갔다. 잠시 후에 최 노파가 찾아와서는 자식이 오해를 하는 바람에 선생님들께 결례를 했다면서 안절부절을 못했다.

 

이 날 저녁에는 국수 잔치를 벌였다. 잔치는 최 노파가 앞장서서 주선했다. 장소는 넓은 노인정에서 했다. 슈퍼마켓 사장이 닭 열 마리를 보내왔고, '싱싱과일상회'에서는 귤 한 상자를 보내주었다. 이 잔치에는 이웃마을 노인들도 초청했다. 50여 명이 모인 큰 잔치가 되었다. 김 여사는 참가한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자신의 포부도 밝혔다.

"우리 공동체는 이제 시작입니다. 우선 식구 5-6명으로 시작하지만, 식구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다 함께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려면 그만큼 큰 집이 있어야하지 안 나요?" 한 노인이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그렇지요. 그래서 생각해둔 게 있어요. 외진 시골에는 초등학교 분교가 있는데 학생이 없어서 문을 닫는 곳이 자꾸 나와요. 그것을 사든가 빌려서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꾸미면 많은 식구가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말이 떨어지자 박수갈채가 터졌고 모두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김 여사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 공동체는 자기 재산은 각자가 관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생활공동체에는 식생활비로 각자 월 15만 원만 내면 됩니다. 그러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좀 더 보태어내겠다고 하는 것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더 들어온 돈은 우리들의 생활을 보다 더 윤택하게 하는데 보탬이 될 태니까요."

"선생님, 건의할 게 있습니다." 노인 한 분이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말씀하세요."

"식구란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을 말 합니다. 지금 잠 잘 공간이 없어서 함께 살 수는 없지만 밥만이라도 같이 먹는 방법은 없을까요?"

"좋은 의견이긴 하네요. 연구해보겠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어렵겠습니다." 김 여사는 이렁게 말 하고 난 다음 나를 향해

"박 선생님께서 우리 공동체의 명칭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했다. 나는 긴 설명을 하지 않았다.

"우리 공동체의 명칭은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곳이라는 뜻으로 '애락의 뜰'이라고 정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했더니 사람들은 "좋씁니다!" 하고 외침과 동시에 박수갈채로 또 한 번 장내를 흔들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