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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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작품을 교과서에 실어야 하는가? 아니면 싣지 말아야 하는가. 작품에 친일의 독소가 들어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겠지만 객관적인 검증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한 근거가 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모를까 해석이라는 것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 친일작가의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봉인해버리는 것이 오히려 쉬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들의 전 작품을 그렇게 사장시켜 버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어떤 경우든 한 사람의 모든 것, 전체를 내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게 해버린다면 이 유구한 역사에 살아남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것은 또한 선과 악이 서로 싸우며 만들어온 우리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유수한 지성인들이 가끔 범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도덕함이나 죄의식 없이 범죄에 연루되거나 앞장서게 되는 일련의 사고 과정에 대해 정말 궁금해질 때가 많았으나 그저 마음 한편에 먼지 앉는 숙제처럼 두고 있던 터였다. 지성은 대체 어떻게 작용하는가? 아마 보통 그들의 지성은 사회를 온전히 통찰하고 그 사회에서 선한 역할을 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고 갖고 싶은 것, 즉 개인의 욕망을 취하는 도구로 전락하여 이미 지성이라고 이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가 되어버렸을 것이라 생각하고만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이 남긴 것들에 대한 감흥이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단편적이나마 내가 주워 알게 된 바대로 그는 분명 반유대주의자이자 나치즘 부역자였다.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하이데거가 그렇지 않다는 새로운 무엇인가 등장한 건가 하는 엉뚱한 기대를 하며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를 읽었다.



지젝이 말하는 요지는 이렇다. 하이데거가 나치에 가담한 것은 맞다. 하지만 전적으로 하이데거의 철학을 부정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단순히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는 우발적인 생활세계에 돌이킬 수 없이 근거해 있다는 점에서,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 그러면 그에 대해 우리가 놓쳤던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옹호론이다. 멈추지 말고 그의 철학이 나아가는 곳까지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그곳이 아주 극단적인 현실(유대인 학살이라는)에 닿아 있다 해도 말이다. 그의 학문적 성과와 나치즘에 대한 부역이라는 불일치를, 지젝은 미시적 실천의 맥락화를 한 이론체계의 진실에 접근한 것으로 격상시켜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이데거가 현실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간 것은 징후적으로이론체계의 어떤 자체적 결함 때문이라고 인정한다. 또한 하이데거는 현대 유럽의 소외의식이 그 사회를 장악한 유대인들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했으며 나치즘이 그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나치즘을 중국의 문화혁명쯤으로 생각했을 거라고 하니 그가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 정황을 짐작해볼 만도 하다.



이론과 실천이 늘 일치되기는 어렵다. 또 어쩌면 이론이 자체적인 생명 현상으로 현실로부터 너무 멀리 나아가버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철학이 논리를 다루는 영역이라면 이 불일치야말로 비논리가 아닌가? 우리가 왜 그 비논리에 대해 특별히 관대해야 하는가? 그것이 결과적으로 하이데거의 철학적 성과를 놓치지 말자는 의도라 해도 그의 반유대주의와 나치즘이 끼친 영향과 그 책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이런 학식이 높은 사람들한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이 왜 위험하다는 것이지? 지젝의 강력한 어투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그 의문이 풀리기에는 너무 짧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하이데거의 연인이었던 유대인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의 개념을 바로 그에게도 적용하여 이해할 수 있을까. 하이데거 자신의 스승인 후설과 친구 야스퍼스 등과 함께 한 때 내쳐졌으며 이용당하기까지 했다는 그녀는 무엇으로 평생 그를 따랐을까, 그녀는 지젝의 주장대로 하이데거의 오점도 아주 한정적으로, 사회에 미칠 영향이 어떨지 생각할 수 없는, 그저 일상에 충실하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행하는 무지한 죄악행위와 같은 정도로 이해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완강한 그 무엇이 좀체 해소되지 않는다. 악의 근원이 멀리 있지 않다면, 그럴수록 우리는 그것을 더욱 경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종의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와 함께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된다는 지젝의 말은 현재진행형으로 당하고 있는 입장에 놓인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여유는 아닐 것이다. 우리들을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만드는 것은 요즘 우리 사회의 학식 있고 능력 있는 높으신 어른들이 벌이는 기이한 일들 때문이다, 평범하지만 분별력 있는 거대한 무리들이 가로막고 서서야 겨우 멈추는 그 사람들을 바로 지금 보고 있어서이다. 그야말로 위험한 것은 정치인이든 작가든 가짜 지성인들을 용인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행히 일제하 작가들의 친일 행적은 어느 정도 밝혀지고 인명사전까지 나와 있다. 우리는 이제 수많은 김동인들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것은 그의 공으로서, 저것은 오점으로서? 작품은 현실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전체를 보는 통찰이 필요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