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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글/황재민)

2016.10.28 10:16

관리자 조회 수: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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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황재민

  

  

지난 928, 시민청에서 남영신 선생 주재로 자기 삶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 각자의 글을 토대로 토론도 하고 의견 교환도 있었다. 퍽 유익한 시간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우리 모두 시청 옆 무교동에 있는 설렁탕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설렁탕은 소의 머리, 내장, , 무릎 도가니 뼈다귀 등을 푹 삶아서 그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전통 음식이다.


설렁탕의 어원은 선농단에서 나왔다고 한다. 조선시대 동대문 밖에는 선농단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신농씨(神農氏)에게 농사가 잘 되라고 제사도 지내고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에는 배가 오도록 기우제도 지냈다. 성종왕 때에는 임금이 친히 밭을 가는 친경의례를 행하기도 하였다.


이런 의례가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가마솥에 밥을 하고 소고기국을 끓여서 나눠 먹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이 음식을 선농탕이라 하였고 설롱탕 등의 여러 가지 음운 변화를 거쳐 지금의 설렁탕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특별하게 맛있었던 설렁탕을 먹은 적이 있다. 때는 1956년이었다. 나는 이미 청년이었고, 동생은 아직 미성년이었다. 우리 형제는 육이오 전쟁으로 부모도 잃고 재산도 모두 없어졌다. 그야말로 처참한 전쟁 고아였다. 동생은 육이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갑자기 닥친 처절한 재난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출가한 누님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 때 누님의 집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형편이 어려워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사돈들 주선으로 서울의 원효로 입구 청파동의 설렁탕집에 그릇 등을 나르는 심부름꾼으로 취직을 했다.



나도 육이오 후에 전라도 신안군의 어느 낙도에 있는 큰아버지 집에 의탁하게 되었고, 누님의 시댁의 인편으로 1954년에서야 동생이 서울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염부로 일을 하다가 그 일을 그만두고 1956년에 서울에 왔다. 그해 5월 목표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6시 야간 완행열차를 탔다. 서울에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아침 시간에 도착했다.

지금도 한강 철교를 건널 때 덜커덩거리던 기차 소리 그리고 차장 밖으로 바라보이던 바라처럼 넓고 먼 한강의 잔잔한 모습이 눈에 어린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이는 마음으로 용산역에 내려 물어 물어 원효로 입구 청파동의 설렁탕집을 찾아갔다. 나를 보자 울먹이는 동생을 보고 선해 보이는 여주인은 금방 알아차리고 나를 이층방으로 안내하라고 일렀다.

아침 시간이라 손님들이 있어서 동생은 손님들에게 설렁탕을 나르느라 바빴다. 얼마 후 손님이 뜸했는지 동생이 이층으로 올라와 내 옆에 앉아서 훌쩍훌쩍 울었다. 조금 있으니 아래층에서 손님이 왔다고 빨리 내려오라는 주인의 부름에 허겁지겁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내려갔다.



세상살이 다 그렇듯이 어쩌다 동생이 조금은 섭섭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일이 떠오르면 금방 잊혀진다. 조금 후 주인의 호의로 생전 처음 설렁탕을 먹어봤다. 나는 본래 육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먹는 방법도 잘 몰라 특별하게 맛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나는 지인을 만나 그와 함께 아현동 산 위에 염전에서 월급으로 모은 돈을 사글세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다음 날 부터 매일 나가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날품팔이를 했다. 일이 없어 공치는 때도 있었다. 가끔 끼리를 거를 때도 있었다. 때로는 군용 건빵 한 봉지로 둘이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한번도 동생이 있는 설렁탕집에 가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침 식량이 떨어졌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해 음력 단오날이었다. 물론 우산도 없어 밖에 나갈 수가 없어 굶으며 방에만 있었다. 다음 날도 가는 비가 내렸다. 꼬박 이틀을 굶고 사흘째 되는 날 비가 그쳐 무작정 집을 나섰다. 배가 너무 고프니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거나 그저 배불리 먹고만 싶었다. 그래서 숫기도 없는 내가 염치 불구하고 동생이 있는 설렁탕집으로 찾아갔다. 초라한 행색으로 가니 바로 알아차리고 그 여주인은 같이 간 지인 것과 함께 설렁탕 두 그릇을 가져오게 했다. 고맙다는 인사는 건성으로 하고 허겁지겁 금방 먹어 치웠다.


그 이후 지금도 가끔 설렁탕을 먹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처럼 맛있는 설렁탕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이번 키움 모음에서 설렁탕을 먹으면서 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때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