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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나의 선생님(글/박진효)

2016.09.05 10:48

관리자 조회 수:1788

가는 세월 누가 막을건가. 언제나 청춘 같던 아버지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팔십 여덟 해를 맞이하고 계신다. 박력 넘치는 기개는 온데간데없고 백발에 잔주름만 가득해 짠한 생각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14살에 반 고아가 되셨으니. 그 어려운 시절 모진 세파를 이기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지혜가 나에게는 삶의 교훈이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 교육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인간관계를 통해 터득한 체험이기에 더 접근성이 강한 것 같다. 크게 3가지로 요약해 정리해 본다.

 

첫째, 술의 철학이랄까. 술은 누구나가 먹을 수 있는 기호 식품이지만 양의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에 좋은 면보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더 크게 보이는 게 현실이다. 어느 순간까지는 마시면 마실수록 더 기분이 동하고 맛있기 때문에 절제력이 쉽지 않다. 말은 적당히라고 하지만 막상 앉아서 마시다보면 그게 마음대로 되는가. 대단한 인내심과 자기 절제력이 아니고는 지키기가 어렵지만 아버지는 그걸 어렵지 않게 지켜내신다. 항상 마음속에 갖고 있는 생각이 술은 취해야 하고 그래야 맛이 난다는 일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목마를 때 마시는 것이라 믿는다. 텃밭에 심은 배추가 가뭄에 갈증을 해소해주는 고마운 단비쯤으로 여긴다. 그러니 술이 취할 수가 없고 그만큼 자기 절제력이 강하다는 의미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만큼 벽은 높지만 행동으로 보여주시니 어느 정도 흉내라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멍에처럼 따라 다닌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술을 많이 먹는다 해도 집에 가는 게 문제가 된다거나 다음날 일을 망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가끔씩은 어리석은 이야기만 누가 술을 더 잘 먹느냐고 내기를 하자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저녁에 먹는 것만 갖고 계산하지 말고 내일 정상적인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는 것까지 계산해서 하자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다들 설레설레한다. 일반적인 계산방식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계산하면 뭐 술맛이 나겠느냐고 푸념하기 일쑤다. 생각이 맑아야 더 확실한 책임을 질 수 있는 것 같다. 나름 술 관리가 양호하다는 생각을 할 때면 아버지에게 고마울 뿐이다.

 

두 번째는 처세술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학문의 높고 낮음보다 돈의 많고 적음보다 인간관계를 어떻게 잘 하느냐가 큰 자산이라 본다. 세상사가 어쩌면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학연 혈연 지연도 하나의 끈 아니던가. 그 끈을 관리하는 건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가장 지혜로운 것 같다. 내가 먼저 호의를 베풀었을 때 상대방도 호의를 베푸는 거지 남이 먼저 하기를 기다리면 원만한 관계를 가질 수가 없다. 처세술의 기본이 인사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안부를 전해도 좋고 누구를 만나든지 먼저 인사를 했을 때 상대방은 좋은 마음으로 받아준다. 허나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먼저 인사한다는 게 잘못된 생각에서 일어나는 게 많다. 혹시 내가 더 못난 놈은 아닌지. 알량한 자존심이 짓누르는 경우가 많다. 순간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지나놓고 나면 가볍고 편하게 느껴진다면 올바른 선택의 결과라 생각한다. 구체적인 설명은 안하시지만 어느 누구나 먼저 인사하는 모습과 누굴 만나든지 통성명이라 해 인사를 나눔으로서 어색함에서 자유로운 지혜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매끄러운 끈이 아닌가 싶다. 군에 있을 때 일이다. 휴가를 나오면 용돈이 제일 궁하다. 나는 61녀 중 장남이고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용돈을 받을 곳이 없었다. 이모 집 고모 집 외가가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배고픈 시절이고 내 새끼 뒷바라지도 어려운 시절이라. 조카고 생질이고 이질일지라도 먹고 자는 건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었겠지만 용돈을 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좁은 소견에는 거기라도 가야 용돈을 타겠다는 생각게 어디를 가겠다고 하면 일언지하에 노다. 내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면 남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래 할 수 없이 집에서 경운기 알바를 해 용돈의 배고픔을 채웠다. 그때는 그렇게 서운 할 수가 없었는데 세상을 더 살고 내가 아버지의 위치에서 생각해보니 그게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지혜가 담겨 있었다는걸 다시금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건강관리다. 백세장수 세대라고 하지만 몸 관리를 잘 못해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건강은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가훈의 첫 번째가 조침조기다. 잠은 가장 어두울 때 자는 게 맞는데 그게 해 떨어지고 1시간 이후란다. 칠흑 같은 어둠은 그때를 말한다. 일어나는 시간은 새벽3시에서 5시 사이라고 하니 그것만 제대로 지켜도 건강의 반은 지킬 수 있는 것 같다. 음식도 항상 열에 일곱만 채우면 충분하다는 게 지론이다. 세상의 이치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음을 말해준다. 넘치면 부족함만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운동의 기본은 소화촉진을 돕는 일이다. 겉도 튼튼해야 하지만 속이 단단해야 하는데 소화촉진을 돕는 건 과음 과식을 안 하며 소화 기능을 강화하는 적당한 운동인 것 같다. 항상 말씀하시는 게 3쾌라 해서 먹는 것, 자는 것, 배설하는 것에 문제가 없으면 1차는 합격이요 그 다음은 1일 만보행이라 해 많이 걷는 게 최고라 하셨다. 세상이 좋아지다 보니 걷는 게 갈수록 적어져서 넘쳐나면서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에 서울대 약대 교수이신 홍문화 박사의 강의가 떠오른다. 제목이 빨리 죽는 법이다. 우리 인간의 정명은 120~125세라고 한다. 그런데 제 명을 다 살지 못하는 건 깎아 먹는 게 많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과음, 과식, 스트레스, 운동 부족 모든 게 요인이다. 고로 이런 부분을 잘 관리하면 정명을 누릴 수 있다는 지론이다. 정명하고 가까워지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던 분이다. 아버지는 실천함으로써 스스로 배우고 느끼고 깨닫게 해주신 것 같다. 영원한 나의 멘다.

 

그처럼 매사에 철두철미 하신분이 몇 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많이 약해지셨다. 언제나 청춘으로 우리 곁에 있다 가실 줄 알았는데 연약한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더 무겁다. 세상살이가 다 자기 식대로 사는 거지만 아버지의 삶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교과서적인 삶을 사셨기에 더 연민의 정을 느끼며 쓸쓸함과 아쉬움을 안겨준다. 생로병사가 순리라고는 하지만 지는 해가 너무나 처연하기에. 마음이 무겁고 이 또한 언젠가는 내 스스로가 가야할 길이라 생각하니 늦었지만 정신 차려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나름 거친 세상을 해쳐 나가는 지혜를 스스로 깨우쳐 주신 아버지를 한 없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