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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矗石樓의 추억(글/김창석)

2018.01.10 10:47

관리자 조회 수:407

작년 [2016] 가을 어느 날, 동해 행 열차를 타고 가을 풍경에 끌려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 하고 있는데 어느 역에 기차가 정착해서 내다보니 역 이름이 禮美.

禮美! 순간 美禮 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돌아서도 예쁘고 모로서도 예쁜 이름이다. 그녀는 이름도 예쁘지만 눈망울이 반짝이는 여학생이었다. 경상남도 진주여고. 내 추억의 배는 진주로 거슬러 올라갔다, 고물에 앉아 노를 잡았다. 그리고 눈을 지긋 이 감았다.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하고 있었다.

진주가 아름다운 것은 남강. 의암. 촉석루가 있어서가 안이라 그 속에 내 추억이 스며있어서 인 것 같다.

사천 공군 비행단 헌병대 진주 파견대에서 복무할 당시의 이야기다.

 

美禮

그녀의 집은 우리 파견대 건물 옆에 가까이 있었다. 우리 파견대 옥상에 있는 탁구대에서 자주와 탁구를 치면서 정이 들었다. 그 때는 다방에도 여학생은 못 들어가고 갈만 한 곳이 없었다. 아름다운 남강에 앉아서 유유히 흐르는 남강 물이 내려다 보였다. 여름 저녁 강바람이 시원했다. 그녀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

한 점의 티끌도 허용치 않는 쪽빛 하늘 아래 서늘하고 보송보송한 공기가 살며시 얼굴을 어루만지고, 꽃은 말할 수 없이 고혹적인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주성은 거의 무너져 옛 성벽의 흔적만 조금 남아 있었고, 성안에는 촉석루矗石樓와 오래된 소나무와 도토리나무가 반겨주었다. 석양을 품은 남강은 발그스름한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강 건너 남쪽에는 우리 헌병대에 자주 들리는 만물박사 이야기꾼 강세준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강남옥 기와지붕이 보였다. 그의 아버지가 포수砲手여서 강남옥이라기보다는 강포수집으로 더 잘 알려진 집이었다. 내가 다니는 해인대학도 보이고, 씨 없는 수박의 개발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우리 입에 맞는 배추와 무, 잘 자라는 강원도 감자, 추위에 강한 제주도 감귤 개발 등 우량종자 개발과 보급에 기여한 유전 육종학자, 농업과학 초대 연구소장] 실험 연구실인 진주 농과대학과 진주역이 한 눈에 들어왔다. 초록빛 딸기밭이 펼쳐진 강가의 모래사장 왼쪽으로는 두 동강 난 남강다리가 보였다.

 

남강변 딸기밭에서 늦은 봄 지천으로 널려있는 향긋한 딸기를 보면서 넓은 딸기밭을 거닐었다. 딸기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딸기밭은 주말이면 사천 비행단에서 외출 나온 젊은 연인들의 낙원이었다. 딸기 맛도 맛이지만 초록빛 잎사귀 사이로 빨간 얼굴을 내밀고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앙증스러워 걷다가 앉아서 빨간 딸기를 만지며 美禮는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발랄하고 귀엽던 모습.

그녀의 부드러운 윤이 나는 검은 머리

희고 깨끗한 목

나란히 손잡고 거닐던 따뜻한 손.

공원 오솔길, 남강 변의 딸기밭.

짜장면을 맛있게 먹으며 기뻐하던 그녀

아무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속삭임.

소중하고 기뻤던 시간들.

낙엽 지던 상수리나무 밑.

맨발로 거닐던 모래사장.

옥상 탁구대에서 미군 레이션 박스에서 나온 커피를

미시며 좋아하던 일.

푸른 대나무 숲을 스치고 지나가던 시원한 바람소리.

우장춘 박사의 씨 없는 수박재배 농장.

 

진주를 떠나다

나는 서울로 전속 명령을 받았다. 일주일 후엔 정든 진주를 떠나야 했다. 선영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진주를 떠나기 너무 싫었다. 내 청춘을 불태운 정든 진주. 선영이와 함께 한 이곳을 정말 떠나기 싫었다.

우리가 만나는 날이면 늘 남강 변 큰 도토리나무 밑에 앉았다. 바람은 나뭇잎을 산들산들 흔들고 이따금 그녀의 머리 위에 가랑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내렸다. 어디선가 비둘기가 구구 울었다. 두견새도 간간히 구슬프게 울었다. 멧새 우는 소리, 참새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내게 바싹 다가앉아 내 팔을 껴안고 다정한 목소리로 무슨 걱정 있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흐르는 물길을 따라 나의 시선도 흘렀다. 며칠 안에 진주를 떠나야 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놀란 토끼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바르르 떨다가 내 무릎에 이마를 묻고 흐느껴 울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고개 숙인 그녀의 빛나는 까만 머리카락과 드러난 가녀린 목덜미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불그스레한 장밋빛 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녀가 선물해 준 보라색 바탕에 체크무늬가 있는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말했다.

사랑했다.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살아라.”

내가 영원한 이별을 말한 것은 우리사이가 좋은 것을 알아차린 그녀의 집에서는

반대 한 것이다. 내가 이북에서 혼자 나온 외톨이 라는 것이다. 당연한 반대이다.

공군 조종간부에서 도 이북에서 가족 없이 홀로 나와서 비행기타고 38선을 넘을 지도 모른다고 비행기도 못타고 쫓겨나온 경험이 있어 감수해야하는 나의 운명이다. 가정의 소중함을 가슴깊이 새겼다.

 

그녀는 내 무릎 위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나도 그녀의 등에 겹쳐 엎드려 울었다.

얼마 후 산책로를 따라 촉석루 앞길을 지나서 우리가 늘 다니던 길을 따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美禮는 내 팔에 꼭 매달려 떨어지지 않고 걸었다. 지난날의 가슴 훈훈한 추억들이 다가와서 우리의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그녀와 자주 갔던 장소, 즐겨 먹었던 음식, 함께 들었던 음악, 주고받은 편지…….

그녀의 집 앞 골목길을 지나 대문 앞에 서자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구나! 싶어 두 팔로 선영의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뜨거운 입술로 석별의 정을 나눴다.

그녀는 대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반쯤 열고 고개를 내밀고 내가 자리를 뜰 때 까지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휘파람으로 美禮를 불러내던 정든 이 골목길.

그러다가 어르신이 대문을 열면 혼쭐이 날까봐서 줄행랑치던 기억들…….

진주가 아름다운 것은 남강. 의암. 촉석루가 있어서가 안이라 그 속에 내 추억이 스며있어서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