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 home
  • 게시판
  • 오늘의 국어 이야기

만약 당신에게 특이한 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비현실적인 엉뚱한 질문에 우리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 것 같다. 그 특이한 능력이 두꺼운 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이라면 더 흥미로워진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문학동네) 단편소설은 특이한 능력이 주어진 평범한 중년 남성이 펼치는 이야기다. 프랑스 문학의 희귀한 보석으로 불리고 짧은 이야기의 거장이기도 한 마르셀 에메가 194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작가는 절제된 풍자와 아이러니, 거기에 현실을 새로운 각도로 보게 하는 환상적인 공간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파리 몽마르트르에 사는 뒤티유윌은 등기청 하급직원으로 중년인 나이에 자기에게 벽을 뚫고 나가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꺼림칙하게 여긴 그는 의사를 찾아가 처방을 받는다. 의사는 그에게 일을 많이 하여 체력을 과도하게 소모하라고 권하면서 일 년에 두 알씩 약을 먹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처음 한 알을 먹고 나서 나머지 약은 서랍에 넣어둔 채 까맣게 잊어버린다. 일도 많이 하지 않아 체력도 그대로 유지한다. 그는 모험에 별로 관심이 없고 상상력의 충동에도 잘 이끌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새로 부임한 상관과 갈등만 없었어도 그는 자기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이 습관에 따라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신임과장은 부임 첫날부터 뒤티유윌을 마뜩잖게 본다. 성가시고 추저분한 퇴물로 취급한다. 서간문 양식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충돌한다. 결국, 그는 어둠침침한 골방으로 쫓겨난다.

혼자 남은 그는 상관으로부터 많은 모욕을 당한다. 겸손하지만 자긍심이 강한 뒤티유윌은 문득 어떤 영감에 사로잡힌다. 자기 방과 과장의 방을 가르는 벽 속으로 들어간다. 벽에 머리만 내밀고 과장에게 욕을 하며 골탕을 먹인다. 하루에도 수십차례 벽에 출몰하여 욕지거리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악마 같은 웃음소리나 유령의 음산한 목소리로 과장을 섬뜩하게 만든다. 견디다 못한 과장은 이상한 행동에 이어 급기야 구급차에 실려 정신병원에 가게 된다. 뒤티유윌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이 풀리자 그의 내부에서 벽돌을 지나가고 싶은 욕구와 자기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은행을 털고 가루가루”(늑대인간)라는 가명을 남겨놓으므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매일 밤 은행이나 보석가게 또는 부잣집을 상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재물을 터는 놀라운 솜씨로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간다. 등기청 직원으로 여전히 충실하게 근무도 한다. 주위 동료들이 자기를 좋게 평하는 소리를 엿듣고 우쭐한 마음에 자신이 바로 가루가루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오히려 조롱거리만 된다. 믿지 않는 동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야간순찰대에게 붙잡히는 행동을 하고 체포되어 신문 1면을 장식하면서 동료들을 경악하게 만든다. 놀란 동료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어떤 동료들은 그의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한다.


뒤티유윌은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도 들락날락하며 교도소장과 교도관들을 놀라게 한다. 그는 자기 감방 벽에 교도소장의 금시계를 걸어두고 교도소장의 책꽂이에서 가지고 온 책도 놓아둔다. 교도소장에게 감옥 탈주계획과 시간도 미리 통보한다.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예고한 정확한 시간에 유유히 교도소를 빠져나간다. 그는 또다시 도둑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절정에 다다르게 하고 태연자약하게 몽마르트르 거리를 돌아다닌다. 다시 체포와 탈출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명성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턱수염도 깎고 안경도 바꾸고 새로운 옷매무새로 완벽한 변신을 한다. 새롭게 도전해볼 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는 이집트에 있는 어느 육중한 피라미드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보기를 꿈꾼다.


그의 변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어느 날 그는 동네 화가에게 들킨 것을 눈치채고 불안해졌다. 그는 이집트로 떠나는 것을 서두르기로 했다. 바로 그날 오후에 거리를 걷다가 어떤 금발의 미인을 우연히 두 차례 만나고 나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가 계획한 여행도 잊어버린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방탕하고 난폭한 남편 때문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편이 없는 틈을 타 갇혀있는 여인의 방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눈다. 그 이튿날 그는 격심한 두통에 시달린다. 우연히 서랍 속에 흩어진 알약들을 발견하고 아스피린으로 생각하고 두 알을 먹었다. 저녁이 되자 두통은 견딜 만했고 사랑하는 여인과 이튿날 새벽까지 사랑을 나눈다. 그녀 곁을 떠날 때 집 칸막이와 벽돌을 통과하면서 힘을 쓸 때마다 점점 더 딱딱해졌다. 마침내 그는 꼼짝달싹 못 하고 담벼락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저자 마르셀 에메는 뒤티유윌이 매우 선량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말단 월급쟁이로 현대를 살아가는 소박한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상관을 마음껏 골탕 먹이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작가의 통찰력과 상상력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기 능력을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 없었고 자기의 목적을 신문을 읽으면서 찾고자 했다.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길들여져 우리의 능력도 욕망도 세상의 잣대에 맞추고자 한다. 뒤티유윌은 이 기이한 능력은 그가 품고 있는 어떤 열망을 실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게 했다.”(15) 나에게 이제까지 몰랐던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소설의 주인공처럼 우선 당황하고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힐 것 같다. 평온한 삶에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뒤티유윌은 자신의 특이한 능력을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성을 좇아 허비해버린다.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허망하게 맞이한 그의 종말과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사랑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능력이 있다. 우리의 것이 아닌 개인의 고유한 능력이다. 우리는 남들과 함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행복보다 우리의 행복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개인의 꿈과 욕망을 희생하며 살도록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고 있는 능력을 인지하지 못한 채. 어쩌면 소설의 주인공도 자신보다 남들과 조화롭게 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을 거다. 주어진 익숙한 틀을 벗어나는 것은 실로 엄청난 모험이요 도전이다. 해학이 넘치는 소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잠자고 있는 자아를 일깨우게 한다. 더 늦기 전에.


몽마르트르 언덕 한 모퉁이에 마르셀 에메가 벽을 빠져나오고 있는듯한 형상을 한 동상이 있다고 한다. 단편소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를 쓴 마르셀 에메가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몽마르트르가 새삼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