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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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글/황민재)

2017.12.28 08:43

관리자 조회 수:830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개나리 다음으로 피는 진달래 그리고 갖가지 색으로 피는 철죽꽃, 살구꽃, 벚꽃 그 뒤로 피는 하얀 목련도 참으로 좋다. 늦은 봄부터 피기 시작하는 장미는 하얀색 약간 노란색 붉은색 검은색이 도는 흑장미까지 여러 가지 다 그 뒤로 늦은 여름에 피는 보라색의 나팔꽃은 나에게는 묘하게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는 것 같다.


중학교 때 광주역 근처 극락강역 역장관사에서 하숙하고 있을 때 역장 동생인 친구와 오월의 훈풍이 좋아서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관사 둘레에 심어져 있는 라일락 꽃잎이 날리며 그 향기가 방안 가득히 들어왔다. 그러나 이 모든 꽃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그 짙은 향기가 매혹적인 야생의 국화다. 가을이면 극락강 언덕에 친구와 놀러 나가면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하늘거리며 우리를 반겨 손짓하는 것 같았으며 그 옆 언덕기슭에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하얀, 노랑, 보라 등의 야생 국화도 그 진한 향기를 내뿜으려 우리를 반기는 것 같아 그 옆에 앉아 들국화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그 다음해에 육이오 전쟁이 나고 나는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형님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 소위 빨치산이 되었다. 나는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저 사람들에 섞여 군인과 경찰들에게 쫒겨 이산 저산을 헤맸다. 그렇게 쫒기며 지내던 어느 여름날 일행을 따라 산길을 가다가 쉬어가게 되었다. 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저만큼 피어있어 그 옆에 앉아 손으로 어루만지며 감상하고 있었다. 그 때 뒤따라오던 일행 중에 준수하게 생긴 어느 중년이 내 옆에 앉으며 동무도 꽃을 좋아하는 모양이지하고 말하여 내 옆에 앉아 한참이나 꽃을 어루만지다 일어나 가면서 꽃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옆 사람들이 수근 거렸다. 저 동무는 아직도 부르조아 근성이 남아 있어서 저런 것이라며 잘사는 집 아들이며 어느 학교 선생이었는데 육이오 후 인민군이 내려와서 인민위원회 간부로 지내다가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산에 올라 왔다고 하였다. 그 다음해에 우연히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옆에 가서 들었더니 그 꽃을 좋아하던 사람이 탈출하려다 붙잡혀서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내색할 수는 없었으나 그 꽃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앞서가던 그 선한 얼굴이 떠올라 당황스럽고 슬펐다.


그 다음해 1952년 국군의 동계 대공세로 빨치산들은 완전히 지리멸렬하였고 나도 포로가 되어 광주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19537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어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에 의해 미성년자는 무죄 석방되어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작은 섬의 큰아버지 집으로 갔다. 그러나 농사일이 서투른 나는 그 섬의 끝에 있는 염전으로 가서 염부가 되었다.


점심 때면 얼른 점심을 먹고 갖가지 야생화가 피는 저 쪽 언덕으로 가서 꽃 옆에 앉아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겨 앉아 있으면 몇 해 전에 내 옆에 앉아 야생화를 감사하던 그 선한 얼굴의 아저씨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줄 알면서도 한 번 더 보고 싶은 것은 옆에 야생화가 있어서일까?


그리고 몇 해 전 가을에 들국화가 그 진한 향기를 내뿜으려 아름답게 피던 극락강 언덕에서 들국화 노래를 같이 부르던 친구도 보고 싶었다. 1956년 서울에 올라와 몇 십 년 만에 그 친구를 만나 자주 술도 먹고 가깝게 지냈으나 이즈음은 몸이 나빠져서 두문불출하여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서울에 와서 몇 십 년째 좋아하던 들국화도 보지 못하고 그 향기도 맡지 못했다. 어쩌다 장례식장에 가면 영정을 온통 흰 국화로 장식해 놓았지만 향기는 전혀 없어 실망스러웠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나는 이미 사후 시신 기증을 했으니 관도 수의도 필요 없음으로 조금 값이 들더라도 향기 나는 국화를 구하여 내 영정에 장식하여 달라고 자식들에게 유언해야겠다. 이 세상 마지막 하직하는 날에 그 진한 국화 향기에 쌓여간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