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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우리(글/서옥경)

2017.12.05 10:47

관리자 조회 수:37

이보다 더 가슴 먹먹한 사랑이 또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하면서 행복했어요." 흔히 듣는 연인 사이에 오가는 사랑 대사가 아니다. 칠십을 바라보는 노승이 깍듯이 존댓말로 어린 제자에게 드리는 작별인사다. 여름철 고원지대의 강렬한 햇볕을 받아 까맣게 그을린 주름투성이 늙은 스승의 얼굴에는 늘 한결같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어린 제자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커다란 눈동자는 관객을 온통 사로잡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신예 문창용 감독이 9년 동안 인도 북부 라다크의 오지마을 삭티에서 우연히 발견한 스승과 제자의 특별한 인연을 담은 감동 실화다. 비록 종교적인 배경이지만 감독은 스승과 제자가 동행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과 행복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어린 제자 파드마 앙뚜는 티베트 캄에서 전생에 고승이었다가 생명을 다한 후 인도 라다크에서 다시 환생했다고 여겨지는 린포체다. 티베트 불교에서 린포체 들은 전생에 다 이루지 못한 업을 잇기 위해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이제 막 9살이 된 린포체, 앙뚜가 붉은 승복을 입고 엄숙한 얼굴로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머리를 숙이면 작은 손을 그들의 정수리에 대고 축복을 내려준다. 라다크 사람들은 린포체를 부처와 대등한 존재로 여긴다. 앙뚜의 옆에는 늘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스승 우르갼 릭젠이라는 승려가 있다. 그는 앙뚜가 5살 때 출가하여 암자에 오기 전에는 승려이면서 마을에서 환자를 돌보는 존경받는 의사로 일을 했었다. 그는 앙뚜의 스승이자 집사, 때로는 보모이자 부모가 되어 린포체 앙뚜를 위해 행하는 모든 일이 수행의 일부라고 여기고 정성을 다한다. 어린 앙뚜에게 항상 존댓말을 쓴다.

 

앙뚜는 여섯 살의 나이에 린포체로 공식 인증을 받고 즉위식을 올린다. 여섯 살짜리 동자승에서 하루아침에 린포체로 신분이 바뀐 앙뚜에게 린포체 들이 쓰는 관을 씌워주는 스승의 가슴은 벅찼다. 지금까지 삭티 마을에서 린포체가 태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사람들은 마을 전체에 축복이 내려왔다며 하루에도 수십 명씩 앙뚜를 보러 암자로 몰려와서 저마다 머리를 숙인다. 이제 앙뚜는 우르갼에게 훈련을 받는 제자가 아니라 소중히 모셔야 할 스승이 되었다. 린포체는 전생의 기억과 함께 자신이 환생한 몸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하고 자신의 사원을 소유해야 한다. 앙뚜는 티베트에서 전생의 제자들이 찾아와 자신의 사원으로 데려가기만을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우르갼은 사원으로부터 린포체 앙뚜가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앙뚜의 추방이 결정되고 마지막 법회마저 끝났다. 한때는 앙뚜에게 축복을 받으려고 가득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멀찍이서 바라만 본다.

 

고작 열 살이 된 앙뚜는 린포체이면서 린포체가 아닌 경계 선상에 놓이게 된다. 누군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가르쳐야 비로소 존경받는 린포체가 될 수 있다. 앙뚜를 위해서 지금 그 일을 할 사람은 우르갼뿐이다. 가문 대대로 이어져 온 의사 일도 그만두고 부처님이 정하신 인연으로 받아들이고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우르갼은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에 떠온 물을 데워 앙뚜의 손과 얼굴을 깨끗이 씻기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옷을 린포체답게 정갈하게 입혀서 학교에 보낸다. 빠뜨린 책과 공책이 있다고 연락이 오면 얼른 챙겨서 갖다 준다. 찬바람이 불고 갑자기 눈이 쏟아지면 따뜻한 옷을 들고 학교 밖에서 눈을 맞으며 앙뚜를 기다린다. 온 사방이 눈으로 덮인 추운 겨울에 나이 많은 스승은 헛발질하면서 앙뚜가 좋아하는 축구를 함께한다. 앙뚜가 행복해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밤에는 꾸벅꾸벅 조는 앙뚜를 나무라며 불경 공부도 시킨다. 우르갼은 늘 기도한다. 앙뚜가 어른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기를, 앙뚜가 훌륭히 성장해서 뭇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린포체가 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에 폭발하는 앙뚜의 행동에 스승도 우리처럼 힘든 과정을 겪는다. 변화가필요한 앙뚜를 동자승과 함께 공부하는 사원에 보낸다. 스승의 따뜻한 품이 그리워 사원에서 3개월 만에 하직하고 암자로 돌아온다.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마주 보며 환하게 웃는다. 따뜻한 난로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손을 녹이며 주고받는 대화는 정겹기 그지없다. 투박하고 주름진 스승의 손과 여리고 작은 제자의 손이 가지런히 클로즈업되면서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전생에 사원이 있었던 티베트는 중국의 봉쇄로 갈 수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앙뚜에게 보여주기 위해 두 사람은 긴 여정을 떠난다. 앙뚜는 삭티마을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뵈러 간다. 암자에서 조금만 가면 앙뚜네 가족들이 사는 집이 있다. 출가한 승려인데다 린포체라는 신분 때문에 같이 살 수 없다. 엄마도 아들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쓴다. 엄마의 아들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어엿한 린포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어린 아들이 어머니께 울지 말라고 위로한다. 너무나 어른스러운 모습에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여러 도시를 거쳐 티베트로 향한다. 그들은 한낮에는 자동차가 재빠르게 지나쳐가는 고속도로변을 뚜벅뚜벅 걸었고, 밤이면 지나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서 가로등도 없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앙뚜는 삭티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문명의 이기들에 감탄을 연발하며 눈을 떼지 못한다. 밤에 환하게 비추는 전등불을 보고 스승님, 여기서는 별이 하늘에 떠 있지 않고 산에 붙어 있는 것 같네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니까 부끄럽다고도 한다. 앙뚜는 지나는 자동차에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피곤하면 스승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기도 한다. 투정을 부릴 나이에 참으로 힘든 여정을 묵묵히 감당한다. 입고 있는 승복으로는 도저히 막지 못할 냉기에 제자가 쓸 장갑을 마련하려고 가게에 들어선다. 앙뚜는 진열장에 놓인 사탕에 시선을 빼앗겼다. 군침을 삼키며 스승님 여기 사탕이 ” “그건 안 돼요! 좀 참아요!” 스승님의 단호한 말투에 곧바로 순응하며 고개를 돌리는 앙뚜의 모습이 짠하기만 하다.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하얀 눈이 온 사방의 시야를 가리는 산속을 스승이 앞에 서면 제자가 밀어주고 제자가 앞에 서면 스승이 뒤에서 밀어준다. 눈 속에 빠진 발을 한 발씩 겨우 움직여 가며 걷는다. 악전고투하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산속에 퍼진다. 승복만 입고 장갑도 끼지 않은 스승은 제자의 젖은 양말을 벗기고 두 손으로 작은 두 발을 감싸 쥔다. 입김을 호호 불어 넣으며 열이 나도록 발을 주물러 준다. 우르갼이 앙뚜 양말에서 고린내가 난다고 놀리니 나쁜 마음으로 하지 마세요.”라고 응수한다. 세차게 부는 눈바람을 맞으며 지칠 대로 지친 두 사람이 유머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들의 여유가 어디에서 나올까. 스승은 빨갛게 얼어버린 제자의 두 볼을 다정하게 감싼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맑게 웃는 제자 앙뚜도 스승의 사랑에 감동한다. “스승님과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거예요."


"린포체 님을 돕는 것이 저의 삶이랍니다." 인도와 티베트 경계선 근방까지 힘들게 왔지만 쏟아지는 눈과 짙은 안개로 티베트를 볼 수 없다. 흐느끼는 제자를 위해 스승은 준비해온 자그마한 소리 나팔을 꺼내준다. 전생의 사원에 있는 제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앙뚜는 티베트를 향해 불고 또 분다. 나팔 소리가 저 멀리 메아리치며 은은히 퍼져나간다.

 

앙뚜가 본격적인 린포체 교육을 받기 위해 두 사람은 7년간의 피붙이 같았던 인연의 끈을 놓아야 하는 때가 왔다. "스승님 조금만 더 있다가 가시면 안 돼요?" 우르갼은 앙뚜의 슬픔을 누그러뜨리려 눈싸움을 제안한다. 라다크에 겨울이 찾아오면 두 사람은 눈싸움하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때로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눈이 없는 사원 앞마당에서 눈싸움 흉내를 내며 서로 슬픔을 애써 감추려 한다. 스승님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스승님은 울고 있다. 어깨조차 들먹이지 않고 엎드려 웅크린 채 안으로 울음을 삭인다. 이젠 작별이다. "린포체 님은 나중에 커서 그 누구보다 훌륭한 승려가 될 거예요." 두 사람은 함께 어깨를 맞대고 흐느낀다. 앙뚜는 15년 뒤에 스승님과 재회를 상상하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서 가라는 스승님의 손짓에 제자가 마침내 돌아섰다. 우르갼은 사원으로 돌아가는 제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앙뚜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제자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린포체 님!” 앙뚜는 자신의 삶에서 스승님이 얼마나 크게 자리 잡은 존재인지를 알기에, 어른이 되어 누구보다 훌륭한 린포체가 될 때까지 제발 살아계시기만을 빈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를 보면서 진정한 사랑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사랑을 묘사하기에는 언어가 부족한 듯하다. 조금은 밋밋하고 지루할 정도로 느껴지는 단순한 그들의 삶이지만 늙은 스승과 어린 제자의 모든 몸짓과 표정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과연 그들처럼 함께 할 행복한 사람을 가졌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본다.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고 사랑은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