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 home
  • 게시판
  • 오늘의 국어 이야기

교장선생님 추억(글/김창석)

2017.11.28 14:15

관리자 조회 수:50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는 까닭은 그 과거의 시간 속에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삶의 지혜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주름 안에 갈무리된 삶에는 숱한 인간들의 기억이 담겨 있다. 글을 쓰면서 얻어지는 기쁨은, 시간의 주름을 펴서 꺼내는 기억들. 시간의 날개를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여정이다. 나는 이 여정이 즐겁다. 나는 이 여정에서 맞나 보고 싶은 그 때 그 들을 차자가는 즐거움이 크다.

 

1948년 통천고급중학교 다니던 때 이야기. 이 학교로 전학 하던 날.

元山 역에서 東海岸行 기차를 타고 갈마, 배화, 안변 역을 지나 동해안을 따라 달리다 송전을 지나 고저역[庫 底 驛] 에서 내렸다. 학교는 고저 시가지를 지나 총석정 叢石亭으로 가는 길섶의 논밭머리에 있다. 언덕을 넘어서면 동해 바다가 발밑에 있는 낮은 동산을 등지고 있다.

교문을 덮은 등나무 아래에는 연보라색 등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등나무가 얽혀서 멋진 그늘을 드리웠다. 그 아래서서 등꽃향기를 한껏 드려마셨다. 가슴이 부풀도록. 가슴이 시원해졌다. 붉은 벽돌로 세워진 두 기둥의 오른쪽기둥에 잘 다듬어진 두툼한 송판에 판각한 글씨가 눈에 띄었다. 글씨체에 대한 안목은 없으나 좋게만 보였다. ‘通川高級中學校’‘ 그 앞에 한참 서서 뛰는 가슴을 달래었다.

너 하고 친구하고 싶어서. 받아줘 원산 元山 에서 왔어

굵고 깊게 조각된 검은 글씨를 어루만졌다. 붉은 벽돌 기둥에 매달려있는 것을 가슴에 껴안았다.

학교 건물은 단층으로 그리 크지 않았지만, 운동장은 넓은 편이었다. 운동장 주변은 논밭으로 둘려 싸였다. 넓은 들판이었다. 전망이 시원했다.

운동시설이래야 축구골대, 철봉이 있었고, 수평봉은 반듯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신발을 벗고 복도에 올라서기 전에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변소에 가서 나오지 않는 소변을 짜냈다.

드디어 교무실 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안에서 들어와도 좋다는 인기척이 들렸다. 그 때가 마침 수업 중이라서 다른 선생님은 안 계셨다. 나는 한 분 선생님 앞에 가서 인사를 드렸다.

어디서 왔느냐?”

원산에서 왔습니다.”

어느 학교를 다니다 왔느냐?”

수산전문학교를 다녔습니다.”

왜 우리 학교를 전학하고자 하느냐?

선생님은 왜 원산이 여기 보다 더 좋은데 우리 학교에 오려고 하느냐 꼬치꼬치 따지며 물었다. 조금 떨어진 응접세트 자리에 앉아 선생님과 나의 대화를 다 들으신 교장 선생님께서

학생 이름이 뭐랬지?”

. 金德在라고 합니다.”

. 그래 德在가 아마 우리 학교에 오고 싶은가 본데, 날아가던 새도 앉고 싶은 나무에 둥지를 튼다지 않습니까? 새가 나무를 선택하지, 나무가 새를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나무는 새들의 거친 날개를 순하게 잠재워서 제 품에 안아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비록 그 새가 내일 다시 날아간다 할지라도 자기 둥우리를 짓게 하고 꿈을 품게 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통천고급중학교에 둥지를 틀고 꿈을 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복도에서 만난 훈육주임 홍사식 선생님 께서,

김덕재 자네 민청[民主靑年同盟]채육부장이지, 이따 점심시간에 교무실에 좀 오게.”

무슨 일로 부르실까? 불려가서 지청구 들을 만한 일은 근래 한 적이 없으나 훈육주임 선생님이시라 걱정스런 마음으로 교무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선생님의 책상 앞에 가 섰더니 기다렸다고 하시면서 교장 선생님 방으로 갔다.

교장 선생님 방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요약하면, 지리과목 담당이셨던 훈육 선생님께서 체육 선생님의 공석까지 임시로 담당하고 계셨는데, 우리 반이 地理 시간이고, 한 학년 아래 여 학생반이 체육 시간일 때 시간이 겹치므로 나더러 체육시간을 담당해 달라는 말씀이셨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안 됩니다.”

德在가 우리 학교 오기 전 원산수산전문학교에서 기계체조 학교대표선수로 출전했던 것을 선생님이 알고 있는데…… 훈육주임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출전하면 뭘 합니까, 메달 권에 들지도 못한 걸요.”

시종 미소 지으시고 계시던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德在가 수평봉에 매달려서 재주넘는 것 을 자주 보았네.”

교장선생님 그것은 여학생들이 관심도 없는 종목입니다

기실 덕재의 말대로 자네 실력이 시원치 않다고 치세. 그러나 학교를 온통 뒤져보아도 자네 정도의 실력자도 찾을 길이 없으니 딱하지 않은가? 다음 달에는 체육 선생님이 부임하실 것 같으니 그 때까지 덕재는 잘 할 수 있을꺼야.”

“············”

두 분 선생님의 가상천외 한 발상에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전교 운동회 때 전교생 앞에서 지휘했던 경험도 있는 데 한 학급이 모인 앞에 서는 것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두군 거리는지? 전교생 앞에 서는 것과 한 학급 앞에 서는 것. 개인적으로 마주 치면 가슴이 뛰는 여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전교생 앞에 서는 것은 내가 할 의무이지만, 이것은 어쭙잖은 일인 것 만 같았다.

허나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얼마 전일인데, 훈육주임 선생님이 나에게 海軍 軍官 學校로 가겠느냐? 추천한다고 하셨는데, 응하지 안 었더니 어느 큰 모임에서, 김덕재가 해군군관학교 입교를 추천 했는데 불응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내가 찍히는 것이구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조직의 명령에 불복한자.

나는 교장실을 나서면서

학교를 온통 뒤져보아도 자네 정도의 실력도 찾을 길이 없으니 딱하지 않은가 덕재는 잘 할 수 있을꺼야.” 하시던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내 가슴 한 복판에서 들려왔다. 용기를 내기로 했다.

믿어주는 친찬은 곧 자신감이다. 선생님이 학생을 믿어주는 것보다 더 큰 용기는 없다.

 

학생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은 학생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다.

 

 

다음날 주말이라 학교를 파하고 막차로 원산 수산전문학교 체육선생님을 찾아갔다. 여러 가지 도움 되는 말씀도 해주시면서, 우선 복장을 갖춰야 한다고 하시면서 선생님께서 쓰시던 체육복, 모자, 운동화, 줄이 달린 호루라기. 지휘봉등을 준비해주시면서 용기를 주셨다. “덕재는 잘 해낼 거야

큰형님 같이 챙겨주시고 가슴으로 품어주셨다. 용기를 얻고 돌아왔다.

 

 

학교 선생님들이 사시는 기숙사 있는데 그 때 나도 기숙사에서 자취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 저녁 체육복을 입고 모사를 쓰고 신발을 신어보고 호루라기를 목에 결어보고 했는데 훈육주임 선생님 사모님께서 잘 어울리는데 바지가 길다하시면서 줄여 주셨다.

겁내지 말고 의젓한 모습을 가지라고 용기를 주셨다. 이렇게 사랑을 받으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다음 날 체육시간이 있는 날이다. 그러나 한 학년 아랫반 여학생을 대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반짝거리는 수십 개의 빛나는 눈동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데 심장은 떨리고 흥분되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수줍어 얼굴이 붉어질까 두려워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그들을 향해 목청만 컸다. 큰소리는 쳐도 자신감은 땅을 파고 기어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부끄러워할까? 여학생들은 엄한 선생님 앞에서 보다 훨씬 밝고 명랑하고 자유로워했다. 그것을 보는 나도 기분이 좋고 활기를 느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말에 집중하지 않는 것을 볼 때 벌 것도 안 인 것을 가지고 느긋하지 못하고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괜스레 운동장을 뛰게 할 때도 있었다. 내 딴 에는 그렇게 해서 내 부족한 점이 노출되더라도 감히 얕보지 못하게 미리 제압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는 날엔 수업 시간이 끝나고 나서 너무 심했다고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목소리는 컸지만 송방맹이 이었다. 그것은 사실이고 그럴 때 나는 얼굴을 붉히고 아무 말도 못하고 멋쩍게 웃음으로 대꾸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어줍은 실력으로 내가 나설 자리가 안인데 타의에 의해 세워진 허수아비 같은 느낌이 들어 속상했다. 논밭에 세워진. 맞지도 않는 헐렁한 큰 옷을 걸치고, 겁도 안내는 참새들 속에 엉거주춤 서서 거북해 하는 허수아비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온전히 시작한 것이 안이고 인자하신 교장 선생님의 권유를 거슬리지 않으려고 떠밀리듯이 시작한 것이 기에 억지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줍어서 빨개지는 홍안을 감추기 위해, 용기를 불러내 앞세우면서도 힘들어하는 모습은 자랑스러웠습니다. 자기 공부시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라고. 기숙사에 놀어 와서 사모님 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격려의 말을 해주던 그녀의 커다랗고 천진한 눈망울. 그녀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德在가 부담스러운 건 잘 아네, 학교를 온통 뒤져 찾아보아도 자네만 한 실력자도 찾을 길이 없으니 딱하지 않은가? 덕재는 잘 해 낼 수 있을 거야.” 하시던 교장선생님의 그 말씀이.

내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행복했다. 자신감은 사랑받고 신뢰 받는 다는 확신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교장선생님 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인자한 모습. 허리 꾸부정한 상늙은이 제자가 된 지금, 젊었을 때 존경했던 교장선생님을 가슴에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