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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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의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보도,

한국 언론의 세월호 사고 보도와 너무 달랐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어거스에서 2017101일 오후 10시쯤(현지 시간) 스티븐 패덕(64)이 총기를 난사해 59(범인 포함)이 목숨을 잃고 527명이 다쳤다. 이 대참사를 보도하는 미국의 언론, 사건 수습에 나선 경찰과 관리들, 정치인들, 그리고 대통령의 태도가 우리의 세월호 사고 때와 너무나 달랐다. 특히 미국 언론과 우리 언론의 보도에 차이가 있었다. 미국의 언론은 경찰, 음악회 주최 측, 범인이 투숙하였던 호텔 등에 대하여 전혀 비판을 하지 않았다.

 

범인 스티븐 패덕은 928일부터 범행 장소인 만델레인베이 호텔 32층에 묵으면서 출입문에 방해하지 말라(Do Not Disturb)’는 표시를 내걸었다. 객실 청소부는 이런 표시를 한 객실에는 호텔 보안 요원을 동행하고 청소를 하게 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호텔 측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의 언론이었다면 그런 규정을 위반한 호텔 측을 매우 비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은 비난 대신에 방해하지 말라는 표시를 한 객실에 대해 호텔 보안 요원의 동행 하에 청도할 수 있게 돼 있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한 호텔 측의 설명만 그대로 보도했다.

범인이 투숙한 방에서 23정의 총기들이 발견됐다. 그 중에는 반자동화기를 개조하거나 완전 자동 기관총급 화력을 내는 것 등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언론이었다면 범인이 나흘 동안이나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는데도 경찰은 왜 몰랐느냐고 비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은, 객실에서 최소 10개의 여행 가방이 발견됐으며 범인은 이 가방을 이용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23정에 달하는 총기를 반입한 것으로 보인다. 패덕이 아무런 의심을 낳지 않고 한 번에 몇 개씩 가방을 옮기기 쉬웠을 것이라고 보도 했다.

 

미국 경찰이 첫 총격이 발생한 사격 위치를 파악까지는 약 17분이 걸렸고, 경찰특공대(SWAT)가 용의자의 방을 덮친 시간은 사건이 발생한 지 72분쯤이 지났을 때였다. 이때 용의자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다고 한다. 경찰은 왜 조기에 범인을 제압하지 못했나,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뭣을 했느냐 등등, 우리 한국 언론이면 즉각적, 자동적으로 캐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은 그런 보도를 하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 메트로폴리탄 경찰은 처음에 최소 20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고 했다. 추가 발표에서 네바다주 경찰은 사망자 수는 50여 명, 부상자 수는 200여 명이라고 했다가 최종적으로 사망자 수를 59명에서 58(범인 포함 59), 부상자 527으로 수정했다. 미국의 언론은 경찰 당국에서 발표한 내용을 비판 없이 보도했다.

세월호 사고 때 한국 언론은 사고 초기에 구조 인원에 대해 오보를 냈다. 구조 작업이 진행되면서 당국이 승선 인원, 구조 인원에 대해 수정 발표를 하자 승선 인원수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이런 해경이 무슨 구조를 하겠느냐고 질타를 가했다. 당시 일곱 번이나 인원 발표를 번복한 것은 해경이 아니라 안전행정부 산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였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은 해경이 잘못했다고 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경찰의 초기 대응이 빨랐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 때 박근혜 대통령은 최선의 초동 대응을 한 해경을 질책하고 조직해체를 선언한 것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참고로 세월호 사고 때 해경은 신고를 접수한 30분 전후로 헬기 3대와 경비정(총톤수 121) 1척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때 세월호는 50도 이상 기울어 있었고 이 각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선실 안에 있는 사람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선실 밖으로 탈출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세월호에서는 구내방송으로 승객들에게 안전한 선실에서 대기하라고 해 승객들을 선실에 머물도록 했다. 총톤수 6,825톤인 세월호에는 476명이 승선해 있었으며, 해경의 인원은 17(그 중 3명은 의경)에 불과했다. 구조 장비도 총톤수 121톤인 경비정에는 최대 승선 인원이 50명에 불과했고, 헬기는 본래 소수 인원 구조용 장비이다. 해경은 외부 소형선박들의 도움을 받아 172명을 구조했다.

 

미국의 언론은 총기 난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죽임을 당한 자들의 애틋한 이야기를 주로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사건 현장에서 30명의 목숨을 구한 조너선 스미스(30)의 사연도 소개했다. 처음 총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불꽃놀이 소리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총격은 계속됐고, 공연이 중단되고 불이 꺼지자 비로소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챘다. 스미스는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향해 도망치라고 소리치고는 사람들 손을 붙잡아 주차장 쪽으로 이끌었다. 완전히 몸을 숨기지 못한 어린 소녀들을 데리고 오는 등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이후 목 부근에 총알을 맞기 전까지 그는 30명의 시민을 구했다. 그는 자신이 경찰관 덕분에 살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처를 입은 스미스를 발견한 경찰관은 응급처치하고 지나가는 차에 그를 태워 병원으로 옮겼다. 다행히 생명을 구한 스미스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다아마도 내 남은 삶을 이 총알과 함께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미국에서는 정치인들도 자제하고 있다. 세월호 때는 야당이 그 비극을 정부 공격의 소재로 활용하고 정부는 책임을 전가하기 위하여 무리한 수사를 했다. 언론은 마녀 사냥식 과장 왜곡 선동 보도로 국민들에게 증오심과 불신을 부추겨 가까스로 구조된 172명도 해경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자기 발로 걸어 나왔다고 했다. 한바다에서 전복되는 거대한 선박에서 자기 발로 걸어 나온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에서는 언론과 정치권이 자제하니 피해 가족들이 집단적으로 항의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IS는 총기 난사범은 자기들의 조직원이라고 발표했고, AP 통신은 이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미국의 언론들은 이를 보도한 AP를 비판했다. IS가 최근에 세가 위축되자 자신들과 관련 없는 사건까지 선전에 이용하는데 이를 감안하지 않았으며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 보도에서 한국의 언론은 상호 비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오보와 왜곡의 공범 상태가 되어 다른 언론을 비판할 자격을 상실했던 것이다.

 

사람이나 조직은 큰 사고나 사건을 만났을 실력과 본성이 드러난다. 세월호 사고 때 바다와 선박의 특성에 대해 무지한 한국 언론은 선동기관으로 전락, 국민들은 물론 검찰, 판사들의 판단과 행동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실례로 해경의 김경일 경비정장의 제1심 판결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 판결문에서 바다와 선박에 무지한 법관들이 잘못 판단한 내용이 여러 곳에서 보이지만 한 가지만 들어본다. 법원의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09:44경에는 피고인이 지휘하던 123정이 대기하고 있었고 09:50경 이후 어선들이 도착하여 승객들이 탈출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사고 당시 수면이 잔잔하고 수온도 차지 않았기 때문에 위 선실의 승객들이 탈출하였을 경우 짧은 시간 안에 구조될 수 있었다.”

 

해양사고의 대해 잘 모르는 판사들은 해양안전심판원 특별조사부에서 이미 공표(2014. 12. 29.)한 조사보고서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사고 발생(0850분경)부터 여객 대피에 대하여……대피나 퇴선 지시도 없이……사고 당시 바다가 잔잔하였고 수온이 약 12도로써 생존에 급박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았고 주변에 구조 세력이 많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사고 발생 후 선장 등이 일반적인 선원의 상무에 따라 여객을 적절하게 대피시켰다면 인명 손실은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극소수에 그쳤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법원의 판결문에 적시한 09:44쯤에 세월호는 약 56.7, 09:50쯤에는 약 62.6도로 기울었고, 10:17쯤에는 약 108.1도까지 기울었다. 영국의 조선 전문가 이안 윙클배가 30도 이상 기울었을 때는 사람들이 못 움직이기 때문에 20도 정도 기울었을 때에 승객들을 탈출시키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선박이 50도까지 기울면 선실에 있는 사람이 외부의 도움 없이는 탈출하기가 어렵고, 108도 이상 기울면 외부에서조차 구조하기가 어렵다.

해경 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0934분쯤이었다. 이때 세월호는 52.2도쯤 기울어 있었고, 선실 안에는 300여 명이, 선실 밖에는 170여 명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경의 구조장비는 헬기 3, 경비정(121) 1척에 인원은 17(그 중 3명은 군복무를 대신하는 의경)에 불과했다. 구조 작업이 종료된 10:31쯤까지 추가로 도착한 함정은 없었다. 그만큼 세월호는 빠른 속도로 전복됐다.

 

판사들은 김경일 정장에게 징역4년형을 선고했다(2심에선 징역3, 대법원에서 확정). 그 이유는, 피고가 선실에 있는 승객들에게 탈출하라고 방송을 했더라면 승객들이 탈출할 수 있었고, 이들이 탈출했더라면 경비정(123)과 많은 어선들이 있었으므로 짧은 시간 안에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외부에서 방송을 했더라도 빠른 속도로 전복되면서 아수라장으로 변한 선실에서 그 방송을 들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설사 들었다고 하더라도 56.7도 이상 기운 선실에서 외부로 탈출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판사들이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언론 보도의 영향을 받아 선입관으로 사건을 판단한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양안전심판원의 보고서에는, 사고 당시(세월호 기울기 약 30)부터 승객들을 바다로 퇴선 시켰더라면 수온이 약 12(이 온도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성인은 6시간 이상 버틸 수 있다)이고, 다른 급박한 위험도 없었으며, 주변에 구조 세력(모여든 선박들을 말함)이 많이 있었던 점으로 고려하면 인명 손실이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극소수에 그쳤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여객을 대피시키는 것이 선원의 상무(常務)인데 그 임무를 다하지 않아 인명 손실이 많이 발생했다는 취지이다.

 

라스베이거스 사건에 대해 미국 언론은 차분한 사실 보도로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다. 힐러리 클린턴 여사도 트럼프 비판을 하지 않았다. 다만 트위터를 통하여 이런 와중에 의회가 미국총기협회(NRA)의 로비를 받아 소음기 판매를 돕는 법안을 통과시킬까 우려하였다고 한다. 미국 언론의 라스베이거스 난사 사건 보도와 한국 언론의 세월호 사고 보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국 언론처럼 경찰을 속죄양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