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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 할머니(글/박다인)

2017.11.08 11:06

관리자 조회 수:35

겨울바람에 코끝이 얼얼한 저녁시간이다. 어둠이 일찍 내려앉은 아파트 입구에 얼핏 움직이는 형체가 보였다. 바로 유모차 할머니다. 할미꽃처럼 잔뜩 굽은 할머니 모습은 유모차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추위 탓인지 그날은 여느 때보다 더 작게 느껴졌다.


오늘도 어제처럼 자신의 신발 크기보다 더 작은 발걸음으로 파지를 주우러 다녔을 것이다. 할머니와 유모차는 한평생 고단한 삶을 서로 의지해온 늙은 부부가 손을 잡고 가는 듯했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모자를 목에 단단히 묶었다. 천이 얇은 흰색 모자다. 계절과 상관없이 낡은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고 그 위에 노란 앞치마를 둘렀다. 꼭 성냥팔이 소녀처럼 보였다.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은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초점 없는 눈을 껌뻑이며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에 유모차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을 뿐.

할머니와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외출해서 동네에 들어서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할머니가 궁금해서다. 어느 날엔 할머니가 유모차를 힘겹게 밀고 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그럴 때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이상한 것은 할머니가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혼자였고 낡은 유모차에 종이상자와 신문지 뭉치가 실려 있을 뿐이다.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던 날, 도로 건너편에서 비를 맞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중학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할머니를 도와 유모차를 밀었다. 그날은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동안 할머니를 애써 멀리했던 것은 돌아가신 친정엄마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이었나 보다.

 

어느 날부터 엄마 집 현관 안에 파란색 유모차가 놓여 있었다. 폐기 직전의 그것은 엄마로 인해 구제받았다고나 해야 할까. 아기를 태우기엔 힘이 부칠 정도로 몹시 삐걱거렸다. 그렇다고 그 할머니처럼 파지를 실을 것도 아니었다. 그 안에는 커다란 돌멩이가 얌전히 놓여있다.


몇 년 전부터 퇴행성 고관절염으로 걸음이 불편한 엄마는 유모차를 곁에 두었다. 바쁘다고 핑계를 대는 자식들을 대신해 동행해주는 착한 수행원이라고나 할까. 바깥세상이 궁금해질 때나, 물리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면 그것에 의지해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지팡이도 있고 다른 보조기구도 있었지만 기운 없는 몸을 의지하기에 유모차가 그래도 제격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때 힘이 부친 엄마에게 그것은 애물단지가 되기도 했다. 한 번은 내리막길에서 돌멩이를 엄마 발등에 떨어뜨려 놓고 저 혼자 달아나는 바람에 엄마는 한참동안 땅에 엎드린 채 꼼짝할 수 없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다. 유모차는 현관 밖으로 내쫓겨 비를 흠뻑 맞고 있었다. 고관절 수술을 한 후로 그것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더 큰 병마와 싸우던 엄마는 유모차를 대신해 나를 찾는 횟수가 늘어만 갔다. 자식인 나는 귀찮다며 때로는 짜증내고, 핑계 대며 눈과 마음을 닫아 버리기도 했다.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만 하면서 살아온 내 엄마의 마지막 삶은, 쓸모없어진 유모차와 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길거리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노인을 볼 때면 엄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걸음이 멈춰진다.


이제는 자식들로부터 공들여 키운 정성에 대한 보답을 편히 받으실 연세인데 무엇이 할머니를 찬바람 부는 거리로 내몰았을까. 어쩌면 지루하고 쓸쓸한 일상을 집에서 소일하느니 당신 몸을 움직여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아닐까. 억지 같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내 불편한 심기를 위로해본다. 어찌되었든 나와 아무 연관도 없는 할머니가 마치 한 편의 슬픈 영화처럼 내 마음속을 흔들어 놓곤 했다. 그래서일까, 다른 때보다 더 춥고 지루한 겨울이었다.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날이다. 그 날도 할머니는 흰 모자에 겹겹이 걸쳐 입은 옷에 노란색 앞치마를 둘렀다. 얼마 되지 않는 파지를 싣고 유모차를 힘겹게 밀고 있다. 그러다가 그만 앞바퀴가 하수구 틈에 걸려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애를 쓰는 모습이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주위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유모차를 앞으로 끌어 하수구 틈새에서 벗어나게 했다.

아휴, 고마워유.”

힘들지 않으세요?”

, 이거 팔아도 삼백 원어치도 안 돼. 작년에 교통사고 나서 잘 걷지를 못해.”

그러더니 파지가 쌓인 더미 속에서 뭔가를 꺼내 내민다. 밥알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강정이다.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를 통해 할머니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아들부부는 어떤 연고로 이 세상에 없단다. 그래서 손자부부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손자네는 아이들의 교육 때문이기도 했지만 매일 매일 쌓아 놓는 파지와 재활용 물건에 집안이 온통 쓰레기장으로 되어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었다. 가족들은 할머니의 파지 줍는 일을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손자는 현재 명문대 교수로 재직 중이고 사는 형편도 꽤 괜찮은 편이란다. 할머니는 무슨 이유로 파지와 폐품 줍는 것에 집착을 하는 걸까.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에 짐을 싣고 유모차를 끄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꽃잎 분분한 봄밤이다. 아파트 입구에 할머니가 깊은 숨을 몰아쉬며 쉬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유모차와 함께다. 운이 없던지 유모차 안엔 파지 대신에 할머니의 옹색한 짐만 한 가득이다. 귤 몇 개를 할머니 손에 쥐어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 입가가 나팔꽃처럼 활짝 펴진다. 주름진 얼굴엔 검버섯 피고, 힘없는 눈에는 눈곱이 끼고, 어금니 몇 개만 남아있는 모습이지만, 오늘따라 할머니의 환한 웃음이 꽃보다 아름답다.

이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의 시작이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던 어머니와 함께 유모차를 밀며 꽃비를 흠뻑 맞고 싶다. 이젠 내게도 봄이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