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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감각(글/김창석)

2017.10.24 10:53

관리자 조회 수:62

수 십 년 동안 친하게 지내온 두 친구지간인데, 어쩌다 술기운에 토닥대다 한 친구가 넘어지면서 발목 골절상을 입고 쌍지팡이에 의지해서 나온 친구에게
“이 사람아, 용서하게. 요전에는 실례가 많았었네. 역시사지로 자네가 나였으면 내가 여기 걸어서 나올 수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네.”
“그건 또 무순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야.”
“자네에게 폭행한 것은 결코 최순호 내가 한 짓은 아니었네.
그것은 나의 광증 이였네. 술 한잔하면 나오는 광증이지, 자네 깐죽거리는 것을 못 참는 “
“··········”
“이 사람아 그러지 말고, 경찰에 고소하는 것은 이따 하고 우선 대포부터 한잔하세”
“········”
“나를 철찰에 꼭 집어넣어야 자네의 마음이 풀린다면 그 건 내가 받아 들려야지 친구로서.”
유들유들한 것 같았습니다. 유머도 누가 어디서 하느냐에 달여 그 전달 효과가 달아 보입니다.
고귀한, 또는 권력을 쥔 이들의 유머는 張三李四의 것보다 진하게 먹히는 것 같다. 범접키 어려워 보이는 그들의 인간적 풍모는 웃음이 가미될 때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도 에둘러 웃음과 함께 전달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처칠의 유머
한번은 처칠을 끔찍이 실어하던 영국의 여성 국회의원 레이디 에스터가 화가 나서 처칠에게
“ 당신이 내 남편이었다면 당신 커피에 독을 탔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처칠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내가 당신 남편이었다면 서슴지 않고 그 커피를 마셨을 것이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정치 유머는 언제 봐도 절묘하다. 처칠이 처음 하원의원에 도전했을 때 그는 지독한 인신공격을 당했다.
“처칠은 늦잠꾸러기라고 합니다. 저런 게으름뱅이를 의회에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처칠의 촌철살인 대응은 인신공격을 한꺼번에 잠재웠다.
“여러분도 나처럼 예쁜 마누라와 산다면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총리가 된 뒤에 그는 이 유머를 한 번 더 써먹는다. 국회에 늦게 도착한 것을 사과할 때였는데, 이번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버전으로 응수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국회에 출석하기 전날에는 아내와 각 방을 쓸 생각입니다.”

그런데 처칠의 유머 감각은 그냥 생긴 게 아니었다. 그 자신 수준의 정치라면 아무리 심하게 정쟁을 벌여도 국민이 짜증을 내는 일은 없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했지만, 처칠은 유쾌한 정치를 위해 끊임없이 독서하고 연구했다. 여의도 정치인들과 비교하게 된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해 형님과 달 누님>을 보면, 프란치스코가 동료들과 수도회 인준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간다. 붉고 화려한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추기경과 주교들에게 둘러싸인 채 높은 보좌에 앉아있던 이노센트 3세 교황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계단을 걸어 내려와 갈색 자루를 걸친 보잘것없는 프란치스코에게 다가와 묻는다.
“프란치스코 형제, 내게 바라는 게 무엇인고?”
이때 프란치스코는
“성하, 다름이 아니라, 그저 저희가 복음의 방식에 따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교황은 무릎을 꿇고 가난한 수행자의 발에 입을 맞추면서 말한다.
“프란치스코, 자네처럼 젊은 사제였을 적엔 나도 복음에 따라 살고 싶었다네.
하지만 그 뒤 직책과 위엄 속에 들어서고 나선 딱딱하게 굳어 버렸지.
그러나 자넨 형제들과 함께 거룩한 복음의 방식에 따라 걸으며 살고 있군.”

김수환 추기경의 유며,
*2008년 1월 초, 김수환 추기경은 호흡기 곤란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의료진의 신속한 조치덕분에 의식을 회복했다.
당시 의식이 되돌아온 김 추기경은 비서 수녀에게
“수녀 나 살아났어.”
라고 말하며 큰소리로 웃었다고 한다. 경각(頃刻)을 다투는 와중에도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는 김 추기경의 면모를 확인 할 수 있다.

마이클 잭슨을 만난 자리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이 물었다.
“특히 아이들이 잭슨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오?”
“저는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제 음악과 춤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 예술적 감각은 하늘이 내려준 영감에서 비롯됐다고 믿습니다.”
마이클잭슨이 이렇게 대답하자 김 추기경이 되물었다.
“공연하면서 순간순간 영감을 느끼나요.”
“그렇습니다. 노래하거나 춤을 출 때 저는 몸과 마음으로 영감을 느낍니다. 영감은 신에게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지요. 추기경님도 하늘의 축복을 느끼시지요.”
이 질문에 추기경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연 하지요. 그게 바로 제 직업이니까요.”

김 추기경님의 유머에 대해 내가 경험한 것은
A f I [ 천주교 사도직 여성 공동체]
이 공동체를 한국에 처음 가져온 분이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안젤라 선생님[외대교수, 이태리 태생]님이신데 ‘선택 프로그림’을 처음부터 같이하면서 30여 년간 지내다보니 全眞常 AFI 공동체에서 하는 행사에 초청 받은 적이 많았지요.
한국 온지 30주년 되는 해에 명동全眞常회관에서 미사가 있었는데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조촐하게 회원들만 모였는데 특별히 우리부부를 초청해주셨습니다.
방안에 모인 사람이 열대여섯 명으로 한 방에 둘러앉았는데 추기경님 앞에 우리부부가 앉게 되었습니다. 모두 AFI회원 인데 상상외로 끼어있는 우리 부부를 보시고 아무 말씀을 안 하시고 의아하게 보시는 것을 눈차채신 안절라 선생님이 추기경님에게
“우리 애인 부부입니다.” 라고 말씀 드리니까.
“그래요! 언제부터 인지 몰아도 내가 늦었나!······”
그러고 나서 마시를 시작하시면서 AfI 공동체의 이름이 빨리 생각이 안 나시는 것을 눈치 챈 어느 분이 살그머니 추기경님가까이에서 ‘아피 AfI ’ 하고 알려드리니까.
그분을 정겹게 바라보시고 미소 지으시며
“아핀가? 뒨가? 했지” [전(前)인가? 후(後)인가?]
하고 웃으시니까 그 유머 한마디가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근엄하고 경직 됐던 분위기를 온화하고 밝은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교회의 높은 자리에게신분들 중 많은 분들의 이미지는 어쩐지 엄숙하고 경직되고, 웃어봤자 근엄하게 품위를 지닌 입술 근육의 움직임처럼 보일 뿐, 무언가 기쁨에서 우러나오는 밝고 환한 표정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추기경님은 늘 우리와 차별 없는 친밀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