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 home
  • 게시판
  • 오늘의 국어 이야기

“신고부평전”(글/안무길)

2017.10.20 08:44

관리자 조회 수:59

삶 가운데서 내가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가장 큰 관심사이고,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단어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뜻하는 ‘고부지간’이란 말이고, 고부지간의 갈등을 말하는 ‘고부갈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비단 나만의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그가 여자라면 ‘고와 부‘는 필연적으로 한번은 담당할 역할이고, 남자라 하더라도 그 ’고와 부‘가 자신의 어머니거나 아내가 될 것이므로 누구도 관심 밖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제도가 유지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고부갈등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옛날 라디오 연속극에서도 요즘의 TV 드라마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소재로 여전히 ‘고부갈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인생사에서 결코 얕잡아 볼 주제는 아닌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고부갈등이 결혼제도와 동시에 생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역사를 좀 거슬러 올라가 시어머니가 가정에서 권력자이고 며느리는 하인 취급을 받던 시대는 권력의 극심한 비대칭 때문에 오히려 갈등이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고부갈등의 태동은 여성의 경제활동이 인정되고 장자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며느리들은 그 무렵에 와서야 비로소 시어머니와 갈등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가게 된 것으로 짐작이 된다.

생각해보면 고부갈등은 인간사에서 필연적인 측면이 있다. 서로 너무나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자란 두 여성이 각각 아들과 남편인 한 남자를 매개로 가정이라는 같은 울타리에 들어가면서 만들어지는 갈등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피를 나눈 가족 간에도 생각의 차이로 갈등을 빚는데, 하물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여자의 갈등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든지,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낸다.”는 우리의 속담에서도 고부갈등의 심각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시어머니는 ‘법적 어머니’(mother in law)가 아니라 ‘법적 괴물’(monster in law)이다.”라는 속담과 “내가 시어머니를 보느니 생니를 뽑으러 치과에 가겠다.”는 속담이 있다니, 고부지간은 외국이라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핵가족화가 상당히 진행된 현대사회에서 고부갈등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가 궁금해서 어느 통계를 보았더니, 20년 전에는 부부 상담의 20~30%가 고부갈등과 관련된 것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30~40%로 증가했다고 하니, 고부갈등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활발한 현재진행형의 문제인 것이다. 다만, 예전에는 아들에 대한 편애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잔소리 등이 주요 갈등 요소였는데, 요즘은 경제권, 자녀 양육, 가사노동 문제 등이 주요 갈등 요인으로 나타나는 변화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들이 둘이 있다. 이들이 결혼하기 전부터 내게는 엷은 불안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들어올 두 명의 며느리에 의해 우리 가정은 과연 어떤 고부지간이 만들어질까?”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갈등이 없으면 좋겠지만, 우리 가정이 그런 특별하고 예외적인 가정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내지 못했다. 앞으로 우리 가정에 올 두 며느리가 어떤 인물일지는 모르지만, 35년여를 같이 산 아내는 내가 알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가 아무 고부갈등도 만들지 않을 만큼 한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지닌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가 30년 이상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잘 모셔준 것은 고맙지만, 아내가 긴 맏며느리 역할을 했던 것과 앞으로 좋은 시어머니가 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두 아들이 2년 간격을 두고 결혼했다. 아들들의 결혼 이후 우리 가정에 깜짝 놀라고 내 눈을 의심할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정말 내게는 기적을 보는 것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우리 가정에 나타난 것이다. 두 아들의 결혼으로 우리 가정에 온 두 며느리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는 내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다. 주변에서 드물게 다정한 고부지간으로 사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한 아내가 며느리에게 그렇게 자상한 배려로 대하리라는 것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내는 눈에 보이는 태도만 그렇게 보인 것이 아니었다. 아들이 결혼하고 며느리가 오면서 생각까지도 완전히 바꾼 것을 점차 알게 되었다. 아들의 결혼 후 얼마 동안은 “처음이니까 그러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의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된 태도는 2년 후 둘째 아들이 결혼하고 2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한결같다.

아내는 고부지간에 있을 수 있는 아무 갈등 요소도 아예 만들지 않았다. 정말 두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고 며느리 편에서 생각하고, 실제로 언제나 며느리 편이었다. 아내의 그런 변화에 대해서 남편인 내가 증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언은 아내가 남편인 내게 둘만 있는 시간에도 지금까지 한 번도 며느리들의 흉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아는 아내는 남과 같은 욕심도 있는 사람이고, 아들에 대한 자부심도 있는 사람이다. 특히 아들에 대해서는 끔찍한 사랑과 ‘아들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온 아내였다. 그런 아내의 눈으로 보면 우리 며느리들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못마땅한 점이 보일 수 있을 것이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며느리들에게 어려운 점이 있어 보이면 각각 따로 만나 며느리와 외식을 하고 대화를 나누며 위로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나중에 아내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내가 먼저 따로따로 만난 며느리들에게 아내가 얼마나 며느리들을 사랑하는지와 며느리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며느리가 힘들어하는 문제에 대해 며느리 편을 들어 얘기해 준다고 한다. 그러면 마음이 열린 며느리들이 눈물을 흘리며 어려움이나 마음고생을 하는 문제에 대해 얘기한다고 한다.

나는 아내의 변신에 지금도 내심 놀라고 있다. 아들들의 결혼 전에 “나는 딸이 없으니 며느리들을 딸처럼 생각하며 편하고 좋은 시아버지가 돼야지.”하며 자신했다. 결혼 전 아들 부부가 사귀는 기간부터 그런 노력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와 두 며느리가 나와 며느리들 사이보다 더 친해 보인다. 행복한 역전(逆轉)이다. 내가 이전에 듣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우리 가정의 고부지간을 목격하면서 감사한 생각과 함께 나보다 더 인기 있는 시어머니가 된 아내에 대해 가벼운 질투(?)가 느껴지는 건, 얄팍한 내 인격의 진면목이라 생각되어 씁쓸하다. (2017.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