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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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린 왕자”라는 책에 대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얘기한다. 사춘기 언저리에 독후감 숙제를 위해 읽었던 터라 대충의 줄거리만 기억하고 있다. 책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독서 당시 그저 한 어린이의 여행기 정도로 읽었던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바로도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끌만하지 않다. 유명한 세계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 서로 다른 문화 정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반복되면 지루함에 종종 책 읽기를 포기하는 편인데 이 책은 오히려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보니 이해되는 부분들이 많다.

책의 줄거리는 비행기 조종사 출신인 소설가 생텍쥐페리가 엔진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꿈인 듯 생시인 듯 우주여행을 하다 지구로 온 어린 왕자와 만남에서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한 줄, 한 줄 서너 번 반복하여 느리게 읽어보았다. 처음 읽는 듯하다. 저자인 생텍쥐페리가 2차 세계대전 시 정찰비행중 행방불명되었다고 하는데 혹시나 양의 입마개에 가죽끈을 그려주지 않은 것 때문에 어린 왕자의 별을 찾아 5억 개의 별을 여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어린 왕자는 여섯 개의 별에서 만난 자신의 권위만을 원하는 왕, 자신을 찬미하는 말만 듣는 젠체하는 사람,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 술을 마시는 술꾼, 하늘의 별을 소유하려는 사업가, 명령에 충실해 가로등을 쉼 없이 켰다 껐다 하는 아저씨, 한 번도 바다와 산을 본 적이 없는 지리학자 등을 “정말 이상한 어른들”이라고 설명한다. 편견과 쓸데없는 고집, 허황한 것에 매달려 있는 그 이상한 어른들에서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적어도 10대에 읽었을 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어가고 경쟁 사회에서 오는 욕심을 키우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살았다. 삶을 살아가면서 물욕이 삶의 목표가 되어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정작 살아가는 데 중요한 ‘나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위한 보이지 않는 가치는 외면한 채 잊고 산 내 모습을 보는 듯해 뜨끔하다. 늘 시간에 쫓겨 “왜?”라고 묻지 않고 이리저리 바쁘게 습관적으로 움직이면서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고 살았다. 그저 현실에 부닥쳐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타인의 눈에 보이는 모습이나 허영심에 신경 쓰느라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제쳐 두고 산 느낌이다.

이상한 어른들이 사는 여섯 개의 별은 공통으로 1인 별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못 하는 외톨이 별이다. 20억쯤 되는 어른들이 사는 곳으로 설명한 지구에 온 어린 왕자가 외로움에 사람들을 찾을 때 뱀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라고 말한다. 서로에게 특별한 교감이 없는 관계는 메아리만 대답하는 수많은 산봉우리와 5천 송이가 넘는 장미들처럼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책에서 여우는 외로움에 친구를 원하는 어린 왕자에게 관계를 맺는 ‘길들임’이 있어야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설명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귀 기울이며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순간이 비로소 상대방에게 길들어 친구가 되는 것이며 또한 길들인 상대에 대한 예의와 무언의 약속으로 ‘책임’도 져야 한다고 알려준다. 요즘 휴가철 늘어나는 애완동물 유기를 보며 그 길들임의 무책임을 본다.

관계를 맺은 그 여우만이 오직 무의미했던 밀밭을 보며 어린 왕자를 떠올리고 조종사와 어린 왕자는 각각 웃음과 시원한 우물을 추억하며 밤하늘의 별을 보며 5억 개의 별 중 하나에 살고 있을 서로를 생각해 행복해질 수 있게 되었다. 눈으로 꼭 보아야 보이는 것이 아닌 “중요한 건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이 설명된다. 수없이 많은 존재 중 인연의 끈으로 묶인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뜻일 거다.

다시 읽어 본 어린 왕자는 시대를 뛰어넘는 몇몇 명언으로 발췌되는 구절에 마음이 꽂힌다. 시대에 상관없이 인간의 본성은 별로 변하지 않는 가 보다. 이 책에서 가장 거북스러웠던 단어가 “길들인다”라는 표현이다. 교감이라든가 다른 표현이 많을 텐데 왜 굳이 이 단어를 쓰는지 그것이 번역의 오류인지는 확인하지 못해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주종관계가 전제된 것 같아 읽는 내내 불편하다. 또, 책에서 나오는 유명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모자로 보는 어른들을 순수함을 잃은 것으로 몰아붙이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거리에 상자가 하나 있다면 그 상자 안에는 그 상자를 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만큼의 다양한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작가의 상상이나 생각을 강요받는 듯한 억지를
느낀다.

생텍쥐페리의 생애와 성장 과정을 찾아보니 1900년생으로 그 당시 귀족 신분이었고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 친지의 귀족 가문에서 자랐다고 한다. 몰락한 귀족이지만 그 귀족 출신이라는 성장 과정으로 계급성에 충실한 사고방식과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귀족인 그로서는 어쩌면 바뀐 현실적인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 요즘에 빗대면 “은둔형 외톨이”의 성향을 가졌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억인 어린 시절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과 바뀌어 버린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주인공 어린 왕자에 투영된 듯도 하다. 저자의 심리가 많이 반영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 책은 나에게 잠시 멈춰 내 삶과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만족하지 않는단다.” 철도기사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이다. 나는 보통사람으로 참으로 어리석다. 나의 소중한 존재들을 편견과 세상의 잣대에 맞추려고만 애쓰고 그저 항상 곁에 있다는 생각에 그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 소중한 딸에게 추억이 될 이성에 대한 예쁜 감정보다 딸 남자친구의 현실적 조건을 이유로 교제조차 떨떠름한 나를 보며 소유욕에 물들어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는 탐욕을 본다.

머리로만 내 분수에 만족하자고 하면서 번번이 부질없는 과욕에 휘둘리고 만다. 독서를 마무리하며 나의 소중한 존재들의 가치를 잊지 않기 위해, 서로의소통을 위해 매번 생겨나는 덧없는 욕망에 브레이크를 거는 연습을 반복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