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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을 찾아서(글/홍석우)

2017.10.17 16:52

관리자 조회 수:76

유년, 청년, 장년기를 무엇하나 이룩해 논 것 없이 부끄럽게 살아온 ‘나의 자존심’이 마지막 남은 노년기 만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자랑스런 문화유산(자전적 수필집)을 남기고 가리라 결단하고, 세속적 삶과 인연을 끊고 살며 이상향을 찾아 전국을 누비며 다닌지 2년여 만에 편백나무 수림이 우거져 있고, 문명에 오염되지 않아 청정한 공기, 땅을 파면 어디서나 맑은 물이 솟아나는 고장, 전남 장흥 부산면의 산속에 내가 꿈꿔와던 새집을 짓고, 30여년간 살았던 서울 강남 논현동을 떠나 2017. 7. 19일 이주를 결행하였다.

100평의 대지위에 20평 남짓한, 샛빨간 지붕의 단순하고 간결한 동화속에서나 나옴직한 작은 집한채 그러나 정원 많큼은 수만평이 넘는다. 빈센트 반고흐가 만취 상태에서 전봇대가 젓가락처럼 휘어져 있고, 긴 의자와 마루 바닥이 술에 취해 구불어져 보이는 ‘나이트 카페’를 그린 프로방스의 지방의 전경을 연상하게 하고도 남는다.

문앞을 나서면 온갖 약초와 들꼴들이 피어있고, 산새들의 보금 자리인 대숲이 있어 아침이면 산새들이 무리지어 날고 밤이면 서쪽새가 한송이 첫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해 자정까지 울어댄다.

새벽 1시, 달 밝은밤 정적이 흐르는 깊은 산속, 서재겸 침실인 나의 안방 책상앞에 홀로 앉아 열린 창문으로 바라보는 산의 전경은 내생에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무릉도원’이 그곳에 있었다.

세상 욕망 다 버리고 진리를 찾아 떠나온 나그네의 영혼을 포근히 감싸준다.

“아들아! 염려하지 마라”
“잘왔다”
“내가 너와함께 하리라” 주남의 음성이 들려온다.

신. 죽음. 영혼... 그리고 고뇌, 분노, 격정이 연민과 사랑의 감정으로 승화되는 순간을 맛보았다. 인간의 마지막 숙원인 죽음 앞에서 미소 지을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는 그래서 내 영혼이 평강하고 구원 받았다는 확신과 환희 속에 형이상학적 수수께끼가 한꺼번에 간단한게 풀리는 순간이다.

좀더 상세히 내 집을 소개하고 싶다.
산속 나의 집에서 2Km를 내려가면 면사무소가 있어 모든 행정을 쉽게 볼 수 있다. 면사무소 주변 300m 이내에 우체국, 파출소, 보건소, 소방서, 초등학교, 농협 은행겸 농협마트가 있고, 경로당과 체육 복지관이 있다. 그 외 식당2, 구멍가게1, 콜택시1, 꽃가개1, 교회당까지 있다. 다방이나, 유흥업소, 숙박업소는 단 한곳도 없는 청정지역이다. 면사무소에서 장흥읍 까지는 5Km, 고속버스 정류장이 있다. 80이 다된 나이에 차도없이 산속에서 사는 자연인에겐 주위에 편의 시설과 의료시설 고석버스 정류장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매일아침 새벽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우리 부부에겐 교회는 필수 조건이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이 선정해주신 선물임이 틀림없다.

천국과 지옥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밀턴은 “인간은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느끼고, 천국에 살면서도 지옥을 느끼는 고등 동물”이라고 실낙원에서 읊고 있다.
신약성경 27편중 14편을 쓴 사도 바울은 네로황제 당시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양 발이 쇠사슬에 묶인채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천국에 살다가 순교자이다.

“나를 번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리라”
“너희도 나와 같이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라고 옥중 서신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써보냈다.

또스토 에프스키의 지옥은 도저희 사랑할 수 없는 이웃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곳. 그래서 자신의 성품이 황폐해 지는 곳을 지옥으로 정의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싸르트르는 지옥이 있다면 타인이다.

“타인과 함께 있으면 어딜가나 지옥이고, 연인과 함께 있으면 어디나 천국”이라고 술회 하였다.

네로황제의 스승이 였던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술을 못마시는 사람은 인생의 재미에 전부를 모른다”고 적고 있다. 술에 취한 상태를 천국에 비유하고 있다. 제자였던 폭군 네로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괴로 웠으면 술에 취해 살다 자살로 생을 마쳤을까?

단테의 신곡에 표현된 지옥은 우리에게 가장 큰 공포감을 준다. 무쇠가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 속에서 죽지도 않고 영원히 견뎌야 하는 형벌이었으니 말이다.

뭉크의 ‘절규’는 자신의 지옥의 자화상일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천국에 살고 싶으면 네 이웃을 사랑하여 화목하게 지내면 되고, 지옥에 살고 싶으면 네 이웃과 불화화면 된다”는 간결한 진리도 있다.

아빠는 주안에서 꿈과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보람있고, 행복한 노년을 살고자 이곳에 왔다. 나의 자전적 수필집을 통하여 변화한 나를 인정받아 모두에게 용서를 받고 옛날과 같이 화목한 형제의 의를 되찾고 싶은 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소원이다.

주님의은총이 함께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