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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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하고 도발적인 책 제목이 흥미를 끈다. "한국인은 미쳤다."를 쓴 저자 에리크 쉬르데주는 모 한국 대기업 프랑스 법인 본사에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근무했다. 그가 한국 대기업에서 보고 겪은 기상천외한(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경험을 낱낱이 털어놓는다. 저자가 겪었던 낯선 분위기가 회사 내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일반적인 생활 방식과 근무방식에 속한다고 소개한다. 서로 다른 문화 차이에서 오는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상당 부분 공감이 간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는 서열, 권위, 경쟁, 남성 중심 위주의 오랜 관행을 되새겨 볼 수 있다.


 
에리크는 한국기업에 입사 하기 전 당대 최고의 전자기업인 필립스, 소니, 도시바에서 25년간 근무했다. 일본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힘들다고 소문난 한국기업으로 자리를 옮긴다. 자신의 패기를 시험하고 미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오리라 생각한다. 그는 한국 기업에서 근무하는 동안 능력을 인정받아 외국인 최초로 임원직까지 승진한다. 그의 성공담과 함께 들려주는 뒷이야기는 입사 첫날부터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 맞는지 귀를 의심케 한다. 출근 첫날 옆 사무실에서 고성과 비명이 들리고 물건을 던지는 공포 분위기에 그대로 얼어붙었단다. 적잖이 놀라는 그에게 비서가 하는 말 "아무것도 아니예요. 대표님이 서류나 사전을 벽 쪽으로 집어 던졌을 거예요. 자주 있는 일이니까 놀라지 마세요. 서로 욕도 하고 서류도 던지고 문도 쾅쾅 닫고 하니까요, 처음에는 좀 충격적일 수 있지만, 곧 익숙해져요." (9쪽) 과거 10여 년 전 한국 기업 내 풍경이라고 일축하고 싶지만, 지금도 고압적이고 전투적인 업무 환경으로 고통받는 근로자의 목소리가 여전히 들리고 있다.   



이미 인지해온 우리 기업문화의 취약점을 서양인의 눈을 통해서 다시 살펴본다. 엄격하게 서열화된 군대식 규율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에 한국인은 모든 힘을 쏟아붓는다. 달성할 목표와 쌓이는 실적만을 선택하고 인간이나 정서는 파고들 틈이 없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문화는 자연히 "빨리빨리" 문화가 되었다. 주저함도 질문도 없다. 그어져 있는 길, 혹은 단계만 있을 뿐이다.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전진한다. 근로자의 삶은 기업에 바쳐져 있으며 회사 밖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자아실현도 상상할 수 없다. 부인도, 자식도, 휴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나긴 근무 시간 중 유일한 휴식시간은 식사 시간이다. 1년에 일주일 밖에 휴가를 못 가고 회사 생활을 무한 반복해서 살고 있으며 그것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근무하는 회사의 규모나 수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우리 직장인들의 자화상 같아 씁쓸하다.



특히 저자가 놀라는 것은 대부분 고학력자인 부인들이 군소리 없이 순종하며 남편의 빈자리를 잘도 참아낸다는 사실이다. 그녀들에게는 남편을 곁에 두는 만족감보다 남편 직장이 더 중요하다. 회사의 연수 프로그램에 부인들도 교육한다. 남편을 공경하고 가정을 잘 돌봐서 남편이 힘든 회사 일을 편안한 마음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내조를 잘 해야 한다고 주입한다. 남편의 직장생활에 대해서는 질문을 삼가야 한다. 가정보다 회사가 우선이다. 회사가 잘 돌아가야 가정이 원만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구조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회사 중심, 남편 중심,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서양인에게 그것은 과거의 세계이자 충격적인 세계다.



한국인은 아마 죽음의 문턱에서도 업무의 바퀴에 짓눌릴 것이라고 저자는 쓴소리한다. 과도한 업무로 인해 피로와 스트레스 누적으로 쓰러진 뒤 긴급히 입원하게 된 한국인 간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닷새 연속 회사를 떠나지 않고 화장실에서 씻고 사무실에서 자며 일했다. 병세가 심각했고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데 석 달이 걸렸다. 수술하는 날 한국인 직원들이 와서 수술 결과를 기다렸다. 수술은 새벽 2시에 끝났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의사의 답변을 듣고 안심한 그들은 의사에게 묻는다. "언제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요?" 안 봐도 비디오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내뱉는 냉혹한 질문에 저자가 충격받는 것은 당연지사. 일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할 수밖에. 그래도, 같은 한국인으로서 좋게 해석하고 싶다.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이 회복된 상태를 의미한다. 아마도 직원들이 쾌유를 비는 표현을 별생각 없이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한국 기업의 특이한 경영 방식도 빼놓지 않는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적용받는 평가 시스템이 늘 작동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점수와 등수가 지배하는 교육시스템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회사에 들어가도 같은 압박의 연장선에서 잘 견딘다. 특정한 능력보다는 이력을 위주로 사람을 뽑고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을 뽑을 때는 전공보다 성적을 중시한다. 서양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선별, 탈락, 등급, 성과와 같은 개념이 한국에서는 지배적이다. 가족부터 나라의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라", "쉬지 말라", "늘 더 잘 하려고 노력하라", "스스로를 이겨내라"라고 말한다. (45쪽). 목표를 95% 달성해도 칭찬은 듣지 못하고 5%의 실패만 지적한다. 전체적으로 좋은 실적을 내도 잘 못 한 것만 중요시한다. 인간은 질책보다 칭찬을 받을 때 더 좋은 성적을 낸다고 귀띔을 한다.



완벽을 과도하게 추구하고 일이 되어가는 과정과 인간적인 배려가 결여된 황당한 체험도 한다. 한국에서 텔레비전 사업본부장의 갑작스러운 프랑스 방문 소식이 전해진다. 회사 내부에서 사이코 드라마를 연출한다. 매장에 경쟁사 상품을 모두 치우고 본부장 방문 기간 자사 상품으로 교체하기로 한다. 본부장이 매장을 떠나면 모든 것을 원상복귀 시킨다는 조건이다. 에리크가 협력업체에 부탁하고 비용은 프랑스 법인이 지급한다는 약속을 받는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결과는 대만족이다. 그런데, 매장 책임자들에게 약속한 비용 지급을 회사가 모른척한다. 협력업체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난 후 가차 없이 짓밟아 버리는, 우리 사회에서 근래 논란이 되는 전형적인 갑질이다. 오로지 팩트와 결과만이 중요하다. 정이 많고 인간관계를 중요시한다는 동방예의지국 한국이라는 호칭이 무색하다.



상대방 이름 대신 직위를 먼저 부르고 임원이 자기 가방을 직접 들지 않는 모습을 저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고위 책임자와 회의를 할 때 의전은 불변의 법칙이다. 회의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가장 하위 직급의 사원이고, 가장 늦게 나타나는 사람은 보통 서열이 가장 위인 간부이다. 서열 1위가 도착하면 몇 시이든 상관없이 곧장 회의가 시작되는 바람에 저자가 쓴맛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다. 상급자나 어른을 존경하는 풍습으로 지나칠 수 있지만 1:1의 수평적 관계가 아닌 상하 수직 관계가 어느 분야에서도 남용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만 봐도 서열과 권력의 위세가 어느 정도 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청와대 행정관이 자기 셔츠에 핸드폰을 닦아서 최순실에게 건네주고, 수해지역에서 홍준표에게 장화를 신겨주는 웃고픈 블랙코미디가 연출되는 상황을 우리 자신도 도무지 설명할 재간이 없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알려진 한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싸우는 데 익숙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서 싸웠고, 그다음에는 경제발전을 위해서 싸웠으며, 이제는 패권을 위해서 싸운다고 한다. 놀라운 속도로 경제 대국에 올라선 한국의 성공 요인도 짚는다. 기업의 업무방식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매우 소모적이고 힘이 들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가 없다. 한국의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명확한 목표 의식과 강력한 추진력이 바탕에 자리하고 있다. 놀라운 효율성, 전략 이행 시 모든 세부사항을 일일이 통제하는 세심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와 의지를 무한정 끌어내는 능력은 한국 기업이 단연 세계 최고라고 추켜세운다. 교육과 연구에 대한 투자가 한국을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라고도 한다.



모범적인 한국인이 밤낮으로 온몸과 마음을 바쳐 회사에 충성하지만, 서양기업과 달리 고용 불안정이 근무연수가 늘어날수록 증가한다는 지적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제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한 한국 기업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하며 현지인과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우리의 아킬레스 끈을 찌를 수도 있고 문화충돌로 인한 시각차라고 간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로지 성공과 자본을 향해 달려가느라 놓쳐버린 개인의 권리와 삶의 가치를 저자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반추할 여유를 가져봄도 좋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