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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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2017년)의 8월 7일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 입추(立秋)였고, 8월 11일은 말복이었다. 이 때는 벼의 이삭이 패기 시작하고 벼논에는 물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벼가 패기 15일 전부터 시작하여 팬 다음 10일까지는 논에 물을 3~4cm 깊이로 대 줘야 꽃가루받이가 촉진된다. 또, 벼의 이삭이 익어가는 시기에는 벼 뿌리에 산소 공급을 위해 물을 2~3cm로 얕게 대고 물이 마르면 다시 대어주는 물 걸러 대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삭이 팬 뒤 30~40일이 지나면 물떼기(논에 댔던 물을 빼는 일)를 해야 한다.
벼논의 물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쌀의 품질이 달라진다. 물떼기를 빨리하면 벼 알이 충실하게 여물지 못해 불완전미가 많이 생기고, 늦게 하면 수확이 늦어지며 깨진 쌀이 많이 생긴다. 풍년을 맞으려면 항상 물을 풍부하게 저장해뒀다가 적기에 적절한 물을 벼논에 공급해 줘야 한다.

입추는 무더위가 절정에 달한 뒤 가을 농사를 준비하는 시점이다. 특히 이 때는 수확을 앞둔 벼의 관리가 중요해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간이다. 옛날(고려·조선 시대)에는 입추에 오는 비는 농사의 재앙이라 해서 며칠간 비가 계속 내리면 나라에서 ‘기청제(祈請祭)’라는 제사를 올려 비가 멎어주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한 해 벼농사의 승부처가 되는 기간으로 날씨가 맑아야 벼 알이 잘 여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 이맘때와 날씨가 사뭇 다르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고 한창 햇볕을 받으면서 벼가 자라야할 시기에 다시 장마가 시작된 것처럼 연일비 예보가 이어진다. 날씨는 지역 간 편차도 크다. 중부지방은 며칠 전만해도 펄펄 끓던 날씨가 갑자기 며칠간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부지방의 농민들은 기승을 부리는 폭염 속에서 말라가는 벼논을 쳐다보면서 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일기예보에는 비는 중부지방에 치우쳐 있고 남부지방에는 여전히 해갈에는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가뭄은 봄부터 계속됐다. 지난 6월 기상청에서 발표한 최근 6개월(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전국 강수량은 평년(331ml)의 69% 수준이었다. 지역적 편차를 고려하면 남부 지방의 강수량은 더 적었을 것이다. 6월이 되면 모내기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많은 물이 필요하다. 우리 마을에는 동네 안쪽에 저수지가 하나있고 동네 앞에는 ‘수자원공사’에서 운영하는 또 하나의 큰 저수지가 하나 있다. 가뭄이 계속되기는 했으나 큰 저수지에는 물이 50% 이상 남아 있었다. 그런데 동네 안쪽에 있는 저수지가 문제였다. 근년에 들어 가뭄이 발생하는 빈도가 잦아지자 더 많은 물을 저장하기 위해 시청에서 저수지를 준설(밑바닥에 멘 것을 파내는 일)하기 위해 가득 고여 있던 물을 빼내었다. 준설을 마친 다음 계속된 가뭄으로 저수지는 그대로 바닥을 들어낸 채 고인물이 없었다.

동네 동생 지효는 농사에 필요한 모든 농기구를 갖춰 놓고, 일손이 없어 농사를 못 짓는 다른 사람의 논밭까지 맡아 많은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그의 논 60% 이상은 동네 안쪽 저수지의 물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니 모내기를 할 수가 없었다. 큰 저수지 아래 논에는 모내기가 벌써 끝난 7월 중순까지 지효의 논에는 먼지만 날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양수기 4대를 동원해서 큰 저수지 아래 수로에서 논으로 퍼 올린 물을 다시 위 논으로, 그 물을 두시 위로 네 단계를 거쳐 퍼 올린 물로 가까스로 모내기를 마친 다음 같은 방법으로 계속 논에 물을 대고 있다.

우리 동네 안에 내가 가꾸는 290m2쯤 되는 텃밭이 있다. 이 밭의 제일 안쪽에 세 이랑을 만들어 3월 초에 감자를 심었다. 그 바깥 두 이랑에는 4, 5월에 양배추, 콜라비, 브로콜리, 파프리카 등을 심었다. 경운기로 밭을 갈 때 물기가 전혀 없는 땅이라 먼지가 펄펄 날렸다. 거름을 주고 검은 비닐로 멀칭을 한 다음 구덩이를 파고 물을 듬뿍 주고 모종을 심었다.

밭의 제일 바깥쪽은 고구마를 심기 위해 세 이랑을 만들었다. 땅은 메말라 있는데다가 비 예보는 없었고 때 이른 무더위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심어놓고 몇 차례 물을 준다고 해서 고구마 순이 살아남을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랑 위에 다시 고랑을 파고 물을 부었다. 바싹 마른 땅은 순식간에 물을 삼키고도 마신 흔적조차 없었다. 300m쯤 떨어져 있는 개울에서 손수레에 여러 개의 물통으로 계속 날라 왔지만 몇 통의 물을 한꺼번에 마시고도 땅에는 물기가 배지 않았다. 목마른 땅이 마시고, 땡볕에 증발돼 버리고, 아무리 물을 퍼다 부어도 물 먹은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작전을 바꿔 햇볕이 약해지는 오후 3시부터 물을 줬다. 한 고랑에 두어 시간을 퍼다 부어서야 겨우 땅이 촉촉해 졌다. 물기가 증발되기 전에 얼른 이랑을 재정비하여 검정 비닐로 멀칭을 했다. 한 이랑을 만드는 데 하루씩 사흘이 걸렸다. 길을 지나던 사람이 이렇게 만든 이랑에 고구마 순을 심고 있는 나를 보고 ‘바싹 메마른 땅에 고구마 순을 심으면 그 순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내가 사흘 동안 고생해서 이랑을 만드는 것을 못 봤기 때문이었다.

마을 옆 개울을 건너 지효의 논 위에 내 소유 세 배미의 다랑논이 있다. 면적이 제일 넓은 논의 오른쪽 옆과 아래쪽에 각각 면적이 비슷한 작은 두 배미가 딸려 있다. 십여 년을 묵혀 뒀던 논이라 온갖 잡초와 잡목이 무성해 있었다. 아래쪽 작은 논의 일부는 그러께부터 배수로를 만들고 밭작물을 심었다. 위쪽의 큰 논과 오른쪽 배미에는 작년 여름에 잡초와 나무를 베어내고 들깨를 심었다. 올 봄에는 아래쪽 배미의 일부에 완두콩과 생강을 심었다. 싹이 튼 완두콩은 50%가 채 되지 않았다. 메마른 땅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지 않은 탓인 것 같다. 씨를 심은 뒤 1~2개월쯤 지나야 땅 위로 싹이 솟아나는 생강은 80% 쯤만 싹이 돋아났다.

봄에 아무 것도 심지 않고 두었던 제일 큰 배미의 다랑논에는 풀을 베어내고 7월 중순에 들깨 모종을 심었다. 땅이 메말라 물을 줘야만 모종이 살아남을 것 같았다. 논 뒤에는 저수지에서 들판으로 연결되는 물길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그곳으로 물 한 방울 흐리지 않아 800m쯤 되는 저수지 아래 웅덩이까지 가서 물을 날라 와야 했다. 그 일도 예사 일이 아니어서 마른 땅에 모종을 그냥 심었다. 다른 작물이었다면 한더위에 모두 말라 죽었을 텐데, 들깨 모종은 모질고도 모진 모양이다. 입추와 말복이 지난 지금에 90%는 살아 있다. 다만 생육 상태가 약간 부진하고 고르지 못하게 자랐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매년 6월 중순쯤에 장마가 온다. 웬만한 가뭄은 장마 기간에 해갈이 된다. 올해도 예외 없이 장마가 왔다. 6월 29일 제주도에서 시작된 장마는 7월 29일에 끝났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장마 기간의 강수량은 중부 지방은 평년(1981~2010년 평균)보다 많았으나(120%) 남부 지방(53%)과 제주도(23%)는 평년보다 적었다고 한다. 또 일반적으로 장마는 여름철에 장기간 비가 내렸지만 올해는 짧은 시간 국지성 호우 형태로 내려 장맛비로 인식하기도 어려웠고, 기후 변화로 인해 최근 장마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장마 기간에도 가뭄, 폭염, 열대야의 ‘삼중고’를 겪으면서 이곳 농민들은 언론의 보도를 지켜보면서 다른 지방의 소식을 들었다. “서울 경기 등 중부 지방에 ‘물폭탄’이 쏟아져 가뭄 해갈을 넘어 피해를 안기고 있다”, “주택 OO 채 침수”, “큰 비를 감당하지 못한 비닐하우스, 농경지도 물바다로 변했다”, “흘러내린 토사로 도로가 막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뭄 걱정이 대단했는데 이제 반대의 상황을 걱정하게 됐다” ...... 등등의 다른 지방의 소식을 들으면서

“모든 지역에 비가 골고루 내렸으면 ‘비 피해’도, ‘가뭄 피해’도 없었을 텐데”라며 한숨지었다. 경남 지방에는 장마 기간에도 비가 거의 내리지 않으면서 이 지방에서는 ‘비도 비켜 가는 경남’이란 말까지 나돌았다.
장마 기간에도 비가 내리지 않아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를 저수지와 타들어가는 밭작물을 보고 한숨을 짓고 있는 이 지방의 농민들에게 이번에는 ‘태풍 노루’가 북상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반적으로 태풍은 강한 바람과 함께 폭우를 동반하게 되어 농경지와 농작물이 피해를 많이 입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이 지방 농민들은 그런 태풍이라도 이 지방을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만큼 피해를 입을 걱정보다는 가뭄 해갈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풍 노루’조차 한반도를 비켜 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켜간 ‘태풍 노루’가 야속하다”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평년과는 달리 심한 가뭄과 더위 속에 나도 7, 8월에 수확하는 작물을 거두어들였다. 가뭄에 300m쯤 되는 개울에서 여러 차례 물을 길어 대느라 작년보다 힘은 두세 배의 더 들었던 감자의 수확량은 작년 대비 절반에도 미치는 못했다. 봄에 옮겨 심었을 때에는 잘 자라던 양배추, 콜리비 등 채소들은 무덥게 변한 날씨에 적응을 하지 못한 탓인지 제대로 커지를 못하고 기형으로 변하는 것도 생겼다. 집 마당에 심어 날마다 물을 준 토마토도 작년 대비 절반 정도 밖에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 농작물은 사람이 주는 물보다는 하늘에서 자연적으로 뿌려 주는 빗물을 훨씬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서울로 전근하기 전에 마산에 오래 근무했다. 그때 살던 옆집 아이 이름이 ‘성민’이다. 내 아내보다 나이가 아래인 성민이 엄마는 아내를 보고 언니라고 불렀다. 내가 마산을 떠난 지가 20년이 지났지만 아내와 성민이 엄마는 지금까지 자주 전화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 8월 초였다. 성민이 엄마가 내일 우리 집에 오기로 했다면서 아내가 이것저것을 챙기고 있었다. 아내와 둘이서 감자, 양배추, 가지 등을 똑같은 박스 네 개를 채웠다.
육촌 형님과 동생, 친척 형님 댁에도 나눠 준다면서 아내도 성민이 엄마 승용차를 타고 마산으로 갔다. 밭을 가꾸면서 가장 산바람 날 때가 이렇게 나눠 먹을 때이다. 돈으로 따지면 불과 몇 천 원에 불과할 텐데, 받은 도시 사람들은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러나 올해는 보내 놓고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수확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으니 보내는 양도 절반으로 줄었으니 말이다.

이때까지 날씨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도회지 생활을 할 때에는 여름철 장맛비가 귀찮기까지 했다. 요즈음 농촌 생활을 체험하면서 “농사의 절반은 하늘이 짓는다.”라는 말과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가뭄과 폭염이 계속되면 가장 피해를 입는 지역은 농촌이고 피해를 입는 것은 농작물이다. 가뭄과 폭염이 계속되면 농산물 생육이 부진하여 상품성이 떨어지면서 공급 물량이 감소한다. 그러면 농촌 지역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농산물의 가격은 오르게 된다. 농산물의 최종 소비자는 국민 전체이기 때문에 이는 국가 경제 전반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날씨나 기후가 나쁘면 대한민국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된다.

올해에는 비가 내려야 할 시기에는 가뭄이 계속되다가 ‘기청제’라도 올려야 할 기간에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이상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벌써부터 가을 걷이가 걱정된다. 올해에는 ‘금배추’, ‘금무’, ‘농산물 값 작년 대비 몇 % 상승’ 등의 말은 나오지 않도록 하늘이 도와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