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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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용의자(A와 B)가 편의점을 털다가 현장에서 검거 되었다. 경찰은 이들이 1년 전 다른 편의점도 털었으며 범행 와중에 살인을 저질렀음도 알고 있다. 다만,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A와 B가 현장에서 붙잡힌 범행만 인정할 경우, 단순 강도로 형량은 대략 5년 정도가 예상된다. 그런데, 살인을 했던 범행까지 인정하면 대략 20년 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에게 증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A와 B 입장에서 최선의 전략은 현장에서 검거된 범행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살인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것이다.

살인죄로 기소를 해도 증거가 없으니 이들은 가벼운 강도 혐의만 인정되어 5년 형만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답답해진 검찰이 형량 협상(물론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이다)을 한다. A와B를 서로 다른 취조실로 분리해두고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만든 후 A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이봐 살인한 사실을 빨리 자백하는 게 어때? B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니가 자백하면 B는 단독 범행으로 30년 형을 받고 넌 1년 형만 받도록 해주지. 만약 니가 묵비권을 계속 행사하는 상태에서 B가 자백을 하면 반대로 B가 1년 형을 넌 30년 형을 받게 될 거야.” 물론, B에게도 같은 제안을 한다.

이때 A와 B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A와 B가 서로를 믿고 계속 살인에 대해 부인하면 살인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으므로 강도로 5년을 받게 된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배신을 한다면 자신의 단독 범행이 되어 30년을 받게 되고 상대는 1년 형을 받게 된다. 그래서 보통은 서로 자백을 하게 되고 각각 20년 형을 받게 된다.

앞의 이야기는 게임이론의 하나로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이다. 앞 상황에서 과연 자백을 한 A와 B가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아니다’이다. 실제 죄수의 딜레마에서 A와 B 각자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은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하던 자신은 자백하는 것이다. 아래 그림을 보자. 예를 들어 A입장에서 B가 부인할 경우, 자신이 자백하면 1년이고 부인하면 5년이므로 자백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대로, B가 자백할 경우, 자신이 자백하면 20년이고 자신이 부인하면 30년이므로 역시 자백하는 것이 유리하다.

죄수의 딜레마는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때, 공동체 전체로는 최선의 선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예이다. 이러한 사례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공공재산의 사용도 그 한 예이다. 공공재산을 남용할 것인지 사용을 줄일 것인지를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따져 보면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은 남용 하는 것이다. 공동체 전체로는 서로 협조하여 사용 시간을 줄여야 좀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지만, 각자에게 유리한 남용을 선택함으로써 공공재산의 파손과 소멸 같은 비극적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는 사교육에도 적용이 된다. 자신의 아이를 제외한 다른 집 아이들이 사교육을 줄이든 말든 자신의 아이에게는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교육 경쟁은 결국 서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사교육비 수준과 학원 순례라는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다.

최근, 북과 미국이 핵과 미사일을 두고 어느 때보다도 사이가 불편하고 격앙되어 있다. 전쟁이 발생하면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는데 왜 북과 미국이 당장이라도 전쟁을 할 듯이 행동하고 있을까? 국가 간의 관계가 어려 정세가 얽혀 있어 단순히 이렇고 저렇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두 나라가 왜 저러는지를 간단하게 게임이론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앞서 죄수의 딜레마를 북과 미국으로 대입해보면, 상대의 반응(대응)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 선택이 된다. 즉, 북의 입장에서는 핵을 포기하면 조금의 경제적 원조를 받을 수는 있지만 영원히 협상자리에서 끌려 다니게 되고 자칫하면 정권을 잃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핵을 고집하게 되면 경제적 제재와 상황에 따라서는 전쟁 위험이 발생할 수 있지만, 협상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함은 물론이고 정권도 공고해진다. 따라서 북 입장에서는 핵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므로 두 나라가 당장이라도 전쟁을 할 듯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다.

사실 죄수의 딜레마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의 예에서 용의자 A와 B가 여러 번 반복해서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나중에는 둘 다 살인에 대해서 부인을 하게 된다. 또한, A와 B가 서로 대화(의사소통)를 하게 되어도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 대화를 통해 상황을 알고 정보를 공유한다면 서로에게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북미 상황이 그러하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에게만 유리한 선택을 하려고만 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서로 간의 의사소통, 즉 대화이다. 그 역할을 우리나라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화 노력에 평소 색깔론과 안보팔이로 이득을 많이 보던 수구 기득권 세력과 수구 언론들이 일제히 난리다. 지난 정부나, 색깔론과 안보팔이를 하는 세력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대화이니 저들이 난리를 하는 것이 일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북과 미국이 극단으로 치달아 전쟁이 발생하면 우리나라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그 피해도 엄청나게 된다는 것을 과연 저들이 모르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혹시 저들도 전쟁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이 색깔론과 안보팔이를 바탕으로 한 종북몰이나 전쟁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지만, 앞서 죄수 딜레마에서 보듯이 서로에게 최선의 유리한 선택이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은 아니어서 조금 손해를 보게 되는 것처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손해도 일부 감수해야한다. 즉,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평화를 얻는 대신 색깔론과 안보팔이를 통해 얻던 선거에서의 표나 지지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게 싫어서 그 표나 지지 때문에 서로에게 유리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도 자신에게만 득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다섯 살 난 내 조카애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마냐숙모, 만약 내가 불에 타면 뭐가 남는 거예요? 덧신만 남아요?’라고 묻더군. 자, 보라니까, 우리 아이들이 우리한테 무슨 질문을 하는지......”
전쟁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희생을 치르고 손해를 보더라도 막아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