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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회 한글 새소식 기고문(2013)

2014.07.17 17:13

관리자 조회 수:10132

다시 한글날을 맞으며

-세종 임금께 배울 것 두 가지-

 

남영신

 

해마다 한글날을 맞는다는 것은 참 유쾌한 일이다우리에게 말과 글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이 날을 공휴일인 국경일로 맞을 수 있게 되었으니 유쾌함으로 가슴이 터질 지경이다그동안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신 선열과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고 공휴일로 만들기 위해서 애쓰신 선배동지후배들에게 두루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물론 한글을 만드신 세종 임금께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다.

나는 여기서 새삼스럽게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기지 않겠다어떤 학자가 말했듯이 한글은 이미 우리말을 적는 글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잘 아는 바와 같이 일제 강점기 엄혹한 시기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들고 한글로 우리말 사전을 엮으려고 노력하던 일이 당시로서는 민족 해방 운동이었고민족 광복 운동이었기에한글은 그 자체로 민족의 주자 독립을 상징하는 민족의 글자가 된 것이다그러니 한글이 쓰기 어렵건 쉽건글자의 꼴이 복잡하건 단순하건 상관없이한글은 이미 우리와 동일체가 된 상태이다요즘 한자 쓰기를 주장하는 무리들은 한글이 지켜온 민족의 얼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다국어기본법에 따라서 한글은 우리말을 적는 나라의 글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립 투쟁의 역사를 함께하면서 한국인을 상징하고 한국인의 얼을 담는 글자로서 자리매김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글에 대한 이런 정도의 인식을 공유하면서나는 한글날에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의 의미를 음미해 보려 한다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을 현대어로 바꾸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우리말이 중국말과 달라서 한자와 통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한자로 자기 생각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내가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새로 28개 글자를 만들었으니사람마다 이를 쉽게 익혀 일상생활에 편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

 

정체성을 세운 세종

여기서 우리는 2가지 중요한 개념을 찾을 수 있다정체성과 보편성이 그것이다먼저 정체성에 대해서 설명하겠다정체성은 나는 남과 다르다는 자기 확인에서 시작한다무엇이 어떻게 다른가나는 어떤 특성이 있나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나 등등이처럼 나의 존재를 확인하여 특징을 짓는 특성이 정체성이다과거 우리 조상들은 이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서 중국을 중화자신을 소중화로 여기고 중국을 추종했다그래서 중국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선진 문물이 되어 우리나라에 이식되었고결국 우리의 것을 바꾸고 말았다그러다 보니 우리는 더욱 정체성을 갖출 수 없었고마침내 정체성을 부담스러운 또는 반동의 개념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세종 임금은 과감하게 중국말과 우리말이 달라서 한자로는 우리말을 표현하기 어렵다그래서 우리말에 맞는 글자를 새로 만들었다.”라고 선언하였다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선언이었다당시 지식인들이 중국말과 우리말이 다른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오로지 한자를 열심히 배워서 중국 문헌을 읽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고기왕 배운 한문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그런데 세종 임금은 이를 과감하게 청산하려 했다중국말과 다른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생각이었고비로소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사건이었다다름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 다름으로 인해서 겪는 고충을 해결하여 정체성을 확립하려 한 업적을 무슨 말로 찬양해야 할지 알 수 없다그러나 이 정체성 문제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완전하게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오늘날 미국을 과거 중국처럼 떠받들며 영어를 모국어보다 중요한 언어로 받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566년 전에 세종 임금이 밝힌 정체성을 갖추지 못하고 21세기를 산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보편성이 몸에 밴 세종

다음으로보편성은 사람마다 이를 쉽게 익혀서 일상생활에 편하게 사용하기 바란다.”에서 찾을 수 있다세종 임금은 한글을 모든 사람이 사용할 글자로 만든 것이다특수한 계급이나 특수한 신분을 생각하지 않고또 어떤 특별한 경우에 한정하지 않고누구나 일상생활에서 두루 사용할 수 있는 글자로 만들었다조정을 대상으로 상소를 올리고공무를 보고사사로이 글을 쓰는 경우 등 모든 쓰임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한글을 만든 것이다이에 비해서 한자는 상당한 능력을 갖춘 사람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귀족 글자이다지금 중국이 사용하는 간체 한자는 귀족의 등급을 조금 내린 정도의 보편성을 확보한 글자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한글은 보편주의 정신 속에서 태어나 보편주의를 완전하게 실현시킨 글자이다.

세종 임금의 보편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그의 세금 정책에서 잘 드러난다그는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불평 없이 적용할 세금 정책을 세우기 위해서 오랫동안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시행하여 가장 부작용이 적은 방법을 찾아냈다요즘 정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정책이 있으면 국민이 반대해도 사회적 갈등도 마다하지 않고 마구 밀어붙여 추진하지만세종 임금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이는 그가 단순히 애민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보편주의 정신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그가 노비에게까지 출산 휴가를 주고그 남편에게도 같은 휴가를 주었다는 기록을 보면 그가 보편복지에 대해서 상당히 진전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 임금은 전제군주이면서도 민주주의 시대의 지도자보다 더 자주적이고 보편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세종이 한글 창제에서 보여 준 이 정체성과 보편성은 우리가 공유해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