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 home
  • 게시판
  • 오늘의 국어 이야기

꿈 속에 그리는 고향(글/김태규)

2016.05.09 10:11

관리자 조회 수:4521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 가고파라 가고파 ~

 

직장 관계로 해외(유럽)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너무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맴돌던 친숙한 노래다. 음치에 가까운 노래 실력으로 향수에 젖을 때마다 이 가사를 읊조릴 때면 아내는 무슨 자기 고향이 언제부터 남쪽 바다라고 하며 가당치 않다는 표정을 짓곤 했던 기억이 난다. 정서가 메마른 도시생활에서도 봄이 되어 개나리, 진달래가 피어나면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라는 동요와 함께 고향에 대한 향수가 모든 이의 가슴에 피어날 것이다.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아/ 지금은 사라진 친구들 모여/ 옥 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반딧불 좋아서 즐거웠건만/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

까마득히 오래 전 선생님 풍금 반주에 맞춰 불렀던 이 노래가 아직도 귓전에 들려오는 것 같이 애절한 그리움으로 내 마음을 파고든다.

 

우리는 처음 만나면 예외 없이 고향과 학교, 나이를 묻는다. 나는 고향이 어디세요?”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고향이 여러 곳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별 기억이 없어도 태어난 곳이 고향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 고향인지, 또는 조상의 뿌리가 있는 곳이 고향인지 잘 몰라서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을 떠나 서울에 와 산지도 어언 50년째다. 그래도 굳이 고향을 대라고 하면 중 고등학교 시절 지냈던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수년전 모처럼 그곳을 찾아 갈 기회가 있었다. 지방 도시 변두리여서 그나마 야트막한 야산과 냇가 그리고 논밭이 어우러져 있던 곳이었다. 꽃피고 새우는 봄날, 여름이면 풀벌레소리, 달이 뜨면 살며시 피어나는 담장 곁 달맞이 꽃, 뒷집 헛간 지붕에 늘어진 늙은 호박, 눈보라치는 날 화롯가의 추억으로 마음 설레며 그곳을 찾았지만 어찌된 일인가? 옛날의 정경은 오간데 없었다. 보이는 것은 깡그리 바뀌어 있었다. 눈을 감으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손에 잡힐 듯이 마음에 그려지는데 눈을 뜨면 그 모습은 간데없이, 새로운 길이 나있고, 생뚱맞은 집들과 건물만이 꽉 차 서로 얽히어 있지 않는가. 그곳에서 함께 했던 부모님도, 다정했던 이웃도, 사랑하든 친구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고향은 오직 마음속에만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


 

그러면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어디일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 해외로 나가 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의 고향은 과연 어디일까? 분명, 그 사람의 어린 시절 추억과 향수는 태어난 한국이 아니라, 자기가 자라난 외국의 어느 도시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까지도 고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미국에 유학을 가 그곳에서 대부분의 시절을 보낸 이들의 경우에는 한국보다도 자신들이 보낸 미국의 도시가 찾아가고 싶은 그리운 고향일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토마스 울프의 마지막 소설 제목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읽어 보기를 권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향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자기 고향에서 배척받는다.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예수님께서 모든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누구도 고향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 한다. 고향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할 뿐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향은 추억과 그리움의 뿌리가 깊이 묻혀있는 지열(地熱)처럼 따스한 우리의 과거다. 과거로 돌아 갈 수는 없다. 과거는 꿈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편협한 고향 의식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진정한 세계인이 될 수 있다고 시사해 주고 있다.

    

 

영어에서는 가정이나 고향을 구별하지 않고 'home'이라고 한다. 가정이 즉 고향이기 때문에 우리들처럼 본적지를 고향이라고 우기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인적사항에 꼭 현주소와 본적지를 따로따로 써야 하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모든 문서에 대개 현주소 하나 만으로 족하다. 그들은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현주소가 즉 고향이라는 사고방식이 약간은 부러운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찾아갈 고향이 없다. 찾아 뵐 부모님이 계시는 것도 아니고 찾아 뵐 친지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이 가장 소중한 곳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잠간 머물다 곧 떠나가야 할 타향이 아닌가. 아무리 좋은 곳도 영원한 집이 아니다. 우리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여야 하는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깃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바로 내가 왔던 곳, 하늘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성경에서 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길손이고 나그네임을 인정했다. 그들은 외국인으로 이 땅에 살며 더 좋은 곳을 동경했다. 그곳은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해 둔 집, 참된 본향이었다. 누구나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여정에서 언젠가는 종착역에 도착한다. 그때 우리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바로 원래 왔던 곳으로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원래 왔던 곳그곳이 바로 우리의 꿈속에 그리는 고향, 하늘에 있는 고향(본향)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언젠가는 돌아 갈 수 있는 곳 본향이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든든한가!

    

 

시대가 변해 가고 있다. 이제는 나라와 나라, 그리고 문화와 문화 사이의 경계가 소멸돼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도 자기 나라처럼 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유능하고 똑똑한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애향주의나 민족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고향이나 고국도 타향과 타국을 대하듯 냉철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시대가 되었다.

    

 

때마침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의 장소인 고향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되면 같은 고향(○○) 사람끼리 잘해 봅시다라는 파벌적 말이나, 지역 패권주의라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출신 지역이나 고향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연약한 사람이다. 다른 지역이나 나라까지도 넘어서 이웃을 사랑하고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성숙하고 강한 사람이다. 더욱이 자기 고향과 고국까지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사람이다. 자기 고향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와 편애를 극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함께 나누며 꿈속에 그리는 본향(천국)을 향해 갈 수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본향이 노래가 세상 끝날 까지 부를 우리 모두의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