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국어 이야기

  • home
  • 게시판
  • 오늘의 국어 이야기

제목: 사진, 어떻게 볼 것인가?
                                                                      *오직 노력에 의해서만 카메라는 거짓을 말 한다  -에드워드 웨스턴-


 요즘엔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사진을 찍는다. 휴대폰카메라 덕분이다. 움식을 앞에 두고,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심지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가방, 동물, 자기 스스로의 모습까지 찍는다. 왜 그런 것일까? 나, 그것을 먹어봤어. 그곳에 가봤어, 이런 것 가지고 있어. ‘무언가 했음’을 몸이나 마음이 기억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사실을 증명(인증샷)해줘야한다. 누구에게?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했다‘ 라는 사실을 그 당사자의 말이나 행위로 인정하거나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서 한다. 이제 카메라는 단순히 찍는 도구가 아니라 모든 것을 인식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삶이 스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사진이 찍는 것은 장면이 아니라 시간이에요.” 어느 사진작가는 말한다. 돌사진, 입학한 날, 졸업식, 결혼식, 장례식, 수학여행... 그 시간(그 시절, 여덟 살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시간이다)이 있었다고, 함께 했다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순간은 현재이지만 사진을 보는 것은 이미 과거 어느 시간으로 생각을 가져가기 때문이라고. 1시간 뒤 혹은 10년 36년 뒤...
 나는 매일 한 장 이상의 사진을 휴대폰으로 받는다. 멀리 남녘에 사는 친구는 문자 없이 오로지 사진만 보낸다. 며칠 전, 초록이 제법 짙어진 산을 찍은 사진이 왔다. 나는 어느새 사진을 읽기 시작한다. 산 중턱에 구름이 걸린걸 보니 지금 그곳 날씨가 화창한 봄날은 아니고, 산을 오르다 바라보이는 다른 산을 찍었나? 어! 그렇게 찍으니 그곳이 마치 원시림 같아! 거기에 저런 멋진 산이 있었네! 그런데 오늘은 평일 오전 11시30분, 이 시간에 등산? 행사가 있었나? 사진을 찍어야 하는, 친구의 직업상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사실은, 친구는 사진을 찍었고 나는 보았다는 것뿐이었다. 사진의 내용, 즉 진실은? 산중턱에 걸린 ‘구름’은 ‘송홧가루’였다. 친구는 산에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 마당에 있었다, 문을 꽁꽁 닫아도 어느새 들어와 있는 송홧가루 등쌀에 집 청소를 하다, 때마침 멀리 바라보이는 산에 구름처럼 모여 날리는 ‘송홧가루’ 모습을 찍어 보낸 것이었다. ‘사진 한 장이 결정적이었지’ 범죄의 유·무죄를 입증했을 때 단골로 나오는 이 말은, 사진의 사실에 대한 신뢰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송홧가루’사진처럼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나와 내 친구는 매일 사진을 주고받는다. 물리적 거리는 300㎞이지만 심리적 거리는 친구의 카메라가 내 눈이다.
 때론 말보다 말없는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말을 한다. 사진가로서 필화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던 정범태는 “사진자체는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으나 사진을 설득력이 있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으로는 사진으로 이데올로기도 창출해 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반대로 뒤집을 수도 있어야 해요 그래야만 사진이 제구실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에요. 또 사진은 만인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 말한다.
 “인터넷에 올라 온 그 사진 봤어. 어떻게 생각해?” 그 사진을 이해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나라, 광장에 모여 외쳤다. ‘OCCUPY!! 분노하라,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다!!, 네팔을 돕자.’ 사진은 언어, 국경, 인종, 빈부... 모든 것을 초월한, 만국어가 된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는 자는 또 다른 우는 자의 눈물로만 위로받는 어깨시린 세상, 모자를 벗고 말없이, 오열하는 어머니에게 렌즈를 맞춘 카파처럼 우리가 카메라를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1. 보여주고 싶어? 감추고 싶어?
 얼마 전  한 장의 사진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모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 ‘세월호시행령폐지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집회가 끝난 후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려 하자 이를 막아선 경찰들을 발로 차는 등 폭력행위를 하는 모습을 찍은‘ 것이라며 뉴스에 내보낸 사진이었다. 나중에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 사진은 ’FTA반대집회‘를 찍었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을 찍은 것이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진은 사실이다. 카메라는 있는 것-대상-을 찍는다. 머릿속의 생각, 즉 보이지 않는 것을 찍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진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이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하여 찍은 사진은 그 순간의 모습은 사실이지만 전체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전 손택은 ‘사진이 아무리 현실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해도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신이 택한 대상을 자신이 정한 프레임 안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각도로 담으려하기에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카메라는 무생물이다. 그런 이유로 눈앞의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사진을 잘 읽기를 권한다.  “우리는 사진의 피사체보다 먼저 보이지 않는 시선, 카메라의 뒤에 선 이들의 시선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때에 비로소 진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모든 사진에게 사실과 진실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진이 ‘논란’이 되는 순서는 이렇다. 그것은 어떤 사진이 사건이 되었을 때 발생한다. 사건이 된다는 것은 어떤 사진이 이름을 가질 때 ‘그 사진’이 되며, 비로소 그 사건에 기여한 사진의 실체를 읽기 시작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그의 저서<결정적 순간>에서 "내가 소유하고 있는 라이카 카메라는 내 눈의 연장이다”이라고 했다. ‘시각’은 단순히 ‘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고 생각하고 기억한다. 즉 사고의 근간이 되는 어떤 것, 정보가 시각을 통해 들어오면 그것을 보는 순간, 행복함, 슬픔, 두려움, 공포, 미소, 안전감 등의 감정을 갖게 된다. 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이성적 판단도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사진을 ‘찍는다(본다)는 자체’가 이미 ‘사건’인 것이다. 그 ‘시각’을 어떤 권력은 통제하고 싶어 했다. 리얼 다큐멘타리 사진작가 최민식은 40년 일관된 작업을 하면서 혹시 어려운 점이나 정신적 갈등은 없었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군사독재 체제하에서는 굉장히 시달렸어요.(...) 사진 자체를 못하게 하더군요.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으니까 정보원들이 계속 미행을 하고 (...). 사진 발표도 못하게 하고 외국에 사진을 보내지도 못하게 하고 외국의 전시회에서 초청이 와도 여권을 못 만들게 해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나, 그것 봤어.’하는 말은 ‘나도 무슨 일인지 알고 있다’는 말이다.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지금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도 알고’다른사람들도 ‘알게 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니 독재자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자신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일이며 반드시 통제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사진(사실)’을 보는 순간 뭔가를 느끼고, 또한 보여 진 것(사진)과 함께 드러나지 않은, ‘어떤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소수가 사용했을 땐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카메라들이 있는 지금은 ‘보여 지는 것’들을 더 이상 통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때로는 드러난 사진의 사실로 현재의 모습을 왜곡하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실을 감추려고 하기도 한다. 모 종편뉴스의  ‘그 사진’은 어떤 의미로 내보낸 것일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아니면 ‘어떤 것을 감추고 싶었을까?’ 사진의 ‘사실’은 이렇게 이중적이다. 사진은 보이는 대상을 투명하게 보여주지만 사진의 사실이 진실을 가리기도 한다. 그것을 사진작가 노순택은 “사진은 무언가를 드러내지만 그 드러냄은 또 다른 무언가를 은폐하면서 드러낸다.” 고 말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사진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 ‘발과 신발’, ‘기억’을 기억하라
 2013년 3월29일, 이따금 대한문 앞을 찾았다. 쌍용차해고노동자 22명의 죽음이 있은 후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언제부터 있었지? 눈 앞의 장면을 본 순간, 어떤 생각도 없었다. 정지된 시간을 만난다는 것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눈에 들어 온 것이 신발이었다. 예쁘게 핀 꽃이 아니라 낡은 신발이 보였다. 찍었다. ‘신발로 만들어진 화단(내가 찍고 붙인 이름이다) 각도도 없었고 ‘좀 더 잘 찍어야지’ 도 없이, 딱 이 한 장 뿐.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니 애써 프레임을 조정할 이유가 없었다. 찍으면서 보여주고자, 기록으로 남긴다는 생각도 미처하지 못했으니 기둥에 뭐라 씌여 있는지 살피지도 못하고 보이는 신발을 찍었다. 찍고 생각했다. ‘누구의 신발일까?’ 저 신발을 신고 무엇을 했을까? 작업화였을까? 산을 올랐을까? 자전거를 탔을까, 여섯 살 아들을 태우고?. 둘이여야 비로소 누구의 작업화가 되고, 등산화가 되고, 아들의 운동회에 가서 뛸 수도 있는 신발이 한 짝으로도 ‘무엇’을 하고 있었다. 꽃을 꽃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신발은 ‘존재’를 의미한다. 예전엔 해산청에 들어가며 산모가 ‘내가 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했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에 대한 사진을 찍었던 다큐멘타리 사진작가 고 최민식의 갤러리에는 그의 카메라와 함께 낡은 신발도 전시되어 있다. 한때는 누구의 발을 담고, 용접을 하고, 아이와 놀러가고, 동료들과 운동장에서 족구를 했던, 신발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세상을 지탱하게 해준 하루하루, 일상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이제 그 신발의 주인이 없다. 신발은 한 짝만으로 또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분홍 꽃들의 세상. 그들은 주인을 잃었지만 세상을 잃지는 않은 것일까? 불법 건축물이라며 철거를 외치는 구청과 경찰당국에 겨우 버티고 있던 분향소가 화재로 타버렸다. 그 후 다시 세워진 분향소 앞에 만들어진, ‘신발로 만든 화단’. 그런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어느 새벽, 대한문 앞에 모든 것이 치워져버렸다. 분향소도 ‘신발로 만든 화단’도. 중구청은 거기에 커다란 화분을 몽땅 가져다 놓았다. 이제 ‘거긴’ 사진으로만 남았다. 난 한 장만 찍었는데, 남은 사진은 다행히 한 장이 아니다. 한 일간지에 이 신발화단사진이 실린 적이 있었다. 그 기자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기사제목이 ‘누구의 작업화였을까?’이었다. 이제 죽음은 스물둘이 아니라 스물여덟이다.
  1943년 초가을 10월2일, 로버트 카파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걷고 있었다. 치운지고개를 힘들게 넘어 나폴리로 들어온 지금, 그는 이제 사진 찍을 일이 없어 슬프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며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승리한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신랑신부가 10분 전에 예식을 마치고 떠나버린 예배당 사진을 찍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호텔로 이어지는 좁다란 길의 한 초등학교 앞, 사람들의 행렬이 길을 막고 있었다. 학교 안에서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관이 너무 작아서 죽은 자의 발이 그대로 보이는, 시체를 다담지도 못하고, 꽃 마져 적어 관을 덮어주지도 못한 장례식. 울부짖는 사람들. 누가 죽었을까? 너무 큰 사람이었을까, 발을 담지 못할 정도로 관이 작은걸 보면? 죽은 자들은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미군-자신을 포함한-이 치운지고개에 갇혀 헤매고 있는 동안 자신들의 도시, 나폴리를 지키려고 했다. 총과 탄환을 훔쳐 2주간을 독일과 맞서 싸우다 모두 사망했다. 아직은 더 살아야 할, 소년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신발을 신고 있었을까? 더 자라서 운동화를 신고 아주리를 입고,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를 위해 뛰는 축구선수가 되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나폴리 해변의 모래 위를 맨발로 걸었을까? 성공해서 멋진 명품구두 ‘페레가모’를 뽐내고, 탭댄스 슈즈를 신고 ‘타닥 타닥’ 소리 내며 춤을 추고 싶었을까? 그는 모자를 벗고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카파는 이 사진을 수많은 전쟁장면의 어떤 사진보다도 더 ‘진정한 승리’를 담은 사진이라고 그의 전기에 적었다.
 사람의 기억은 생각보다 쉽게 부서지고 사라진다. 사진은 찍는 순간 기록이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 순간을 잊지 말라고. 그러나 세상엔 여전히 전쟁이 있고 일으키며, 해고노동자는 굴뚝에 오르고 투신한다. 이미 자본가의 눈이 되어버린 국가는 ‘그만하라’고 물대포를 쏘아대고, 자본가의 입이 되어버린 언론은 ‘폭행행위’라며 말대포를 쏘아댄다. 그래서 잊기를, 모르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겐 ‘찍는 것(기록으로 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잊히면 보고 또 잊히면 다시 보기를, ‘저항’하기 위해 기억하고, ‘기억’하기 위해 저항하게 만드니까. “작가는 승자의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된다. 역사가는 승자의 이야기를 쓰지만, 작가는 패자의 이야기를 써야한다.”  ‘양철북’을 써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작가 귄터 그라스가 세상 떠나기 얼마 전 한 이 말은, 마치 카파의 사진을 말하는 것 같다.

(김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