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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녀 님의 '한글 가온길' 답사기

2015.04.21 04:19

관리자 조회 수:4758

          한글 역사와 한글 사랑의 두 별, 헐버트와 주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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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찰구를 빠져 나오며 설레는 마음으로 5번 출구를 찾았다. 2015325일 오후 3시에 경복궁역에서 한글가온길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지상 출구 계단에 사람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고 답사를 이끌 교수님이 오늘 일정을 소개하고 계셨다. 3월 햇살이 봄날처럼 따뜻하고 바람도 없어 답사하기에 좋은 날이라 생각하며 경복궁을 들어섰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의 작업을 하던 곳을 둘러보기 위해 집현전이 있던 수정전으로 가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관광객을 안내하는 중국어와 일본어 소리가 들리고 서양인들의 낯선 언어들도 간간이 들려온다. 나는 내가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인 모국어 한글의 역사와 뒷이야기들을 현장에서 느끼고 싶어 김슬옹 교수님의 답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학교와 책에서 얻을 수 없었던 배움과 한글의 역사성을 눈으로,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기대 이상의 감동을 얻었다.

 

오늘의 여정은 한글이 태어나고 발전해 나간 자취가 배어있는 의미 있는 지역을 따라 서울시가 조성한 한글 답사 길을 천지인 삼재 오행의 한글 가온길이라고도 했다. ‘가온은 가운데, 중심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이라 했다. 그래서 한글 가온길이 오행에서 만물의 근원()을 상징하는 경복궁 수정전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는 한글의 창제로 받아들이고, 하늘인 세종대왕 생가터로 이동한 후 다시 주시경 집터(나무)로 이동하는 것은 한글이 재정비 되는 의미로 생각하고, 도림녹지공원()에서 한글 사랑의 두 인물 헐버트와 주시경을 통해 한글이 세상에 널리 퍼져나간다는 의미로 해석해 보았다. 그리고 한글이라는 씨앗을 키워 낼 땅의 의미인 한글학회와 사람들이 모이는 한글 가온길 머릿돌을 지나 원각사터()와 독립신문사터()를 둘러보고 세종로 공원 한글글자마당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한글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11,172개의 글자가 손글씨로 돌에 새겨져 있었다. 말과 글에는 그 나라 사람의 정신이 담겨있듯, 한글글자마당의 글자 하나하나에는 해외동포, 국내 거주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글쓴이들 사연과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우리는 휴식과 함께 한글의 우수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에서 답사 참여 동료들과 사진촬영을 끝으로 한글 가온길의 여정을 끝냈다.

 

이번 답사는 한글을 나의 모국어로 60여 년 동안 사용해 왔고 30년 이상을 교사로 학생들에게 가르쳐 왔음에도 한글의 역사와 배경에 무지한 것에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국어를 배우는 동안 당연히 알아야 할 이러한 내용들을 쉽게 접하지 못하고 깊이 있게 배우지도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유학에 뿌리를 둔 조선시대 기득권층의 사대부와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의 합작품이며 그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중학교 시절 교과서의 한문이 사라졌다. 고등학교까지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지만 대학은 달랐다. 전공 서적의 한자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법이나 세무관련 관공서에서는 여전히 한자가 장벽이 되었다. 한글은 창제 후 그 오랜 세월 동안 한글은 푸대접을 받았고, 자연적인 변화 외에는 큰 발전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근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공공 언어들의 한글화 작업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고 격찬한 헐버트는 23살에 고종의 초청으로 정부가 세운 최초의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초빙되어 한국에 왔다. 그는 4년 만에 한글을 깨치고 한글 저서인 인문지리 교과서 사민필지1890년에 펴낼 수 있었다. 최초의 한글 전용교과서인 그의 책 서문에는 자신들이 만든 이렇게 좋은 글이 있는데도 어찌하여 한국민들은 한글을 사용하지 않고 지식층에서는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을 업신여기는가?”라며 당시의 현실을 안타까워하였다. 그 후 첫 영문월간지에 ‘Korean Alphabet’이라는 연구논문을 게재하여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학술차원에서 처음으로 세계에 알렸으며 평생을 한국 독립을 위해 일하고 싸웠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80대 고령의 나이에 한국을 방문해 일주일 만에 서거하여 한국 땅에 묻혔다. 그는 평생 한국과 한글을 사랑했으며 한국 땅에 잠들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주시경은 세종 이후 450년 만에 한글과 우리말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한 학자이며 한글운동가였다. 열여덟인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였고 그 때 국어문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에 발탁되어 국문동식회를 조직하여 한글 표기법 연구에 주력하였다. 1905년 국어문법을 비롯해 대한국어문법〉 〈국어문전음학〉 〈〉 〈국문연구〉 〈고등국어문전〉 〈소리갈〉 〈말의 소리등 많은 저서를 통해 우리말과 한글을 체계적으로 이론화 하였다. 또한 국어운동과 국어교육을 민족운동으로 전개하였고 교사로서 무려 15개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주시경 선생은 1914년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하던 중 급체로 3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김두봉과 최현배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그의 한글 사랑과 정신을 이어갔다.

 

말과 글은 홀로 서는 나라됨의 특별한 빛이므로 말글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라는 주시경을 중심으로 1908831일 국어연구학회가 창립되었으며 1921년 주시경의 제자들이 조직한 조선어 연구회가 1931년 조선어학회로 바뀌었다. 그 후 조선어학회는 19499월 지금의 한글학회로 자리매김 하였으며 그 동안의 업적으로는 1926년 가갸날을 1928년에는 한글날로 바꾸어 매년 기념식을 열고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 조직하고 1931한글맞춤법 통일안〉 〈조선어 표준말 모음〉 〈외래어표기법통일안등을 내놓으며 한글의 보급과 연구에 힘썼다.

1942년 일제는 사전편찬 작업을 하던 정태진을 검거하여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33인을 구금하였고 이들 중 이윤재와 한징 두 분이 감옥에서 옥사했다. 1929년 이극로 주도로 시작된 사전편찬 작업은 오래도록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1957109큰사전6권으로 모두 발간되었다. 1988년 공병우 박사가 한글문화원을 열고 이대로 이오덕 과 함께 한글 운동을 폈으며 이찬진, 정래권들에게 사무실을 제공하여 아래아 한글을 개발하게 하였다. 그리고 1988년 국민모금으로 한글전용신문 한겨레 신문이 창간되었다. 그리고 2006년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되었고 다시 2012년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령이 공포되었다. 2014년 한글 박물관이 개장되었다.

 

한글 가온길답사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서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적 특성을 이해하는 과정은 개인적인 발전의 기회였고 배움의 기쁨이었다. 한글은 자연의 소리를 발음하는 원리와 철학을 바탕으로 만든 발음기관과 발음하는 모양을 본떠 만든 5개의 닿소리 기본자에는 과학적인 원리가 적용되었으며, 홀소리 세 글자에는 천지인 즉 하늘()인 양성, ()인 음성, 사람()인 중성을 본 떠 만들어 삼조화 사상, 천지자연의 문자철학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자음 5자에는 획 더하기(ㄱ→ㅋ), 모음 3자에의 경우는 합치기 규칙을 적용해 기본자를 한번씩 합쳐 을 한번씩 합쳐 (ㅗㅏㅜㅓ)를 만들고 두 번씩 합쳐 (ㅛㅑㅠㅕ)로 만들며 아래아가 위쪽과 오른쪽에 붙으면 양성 반대면 음성인 모음이 되다. 그렇게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여 기본 28자가 만들어지고 규칙적으로 확대해 간 문자이기에 간결하고 배우기 쉬우며 쓰기에 편리하다. 그 외에도 한 글자에는 한소리가 나며 소리와 글자가 예사소리, 된소리, 거센소리로 짝을 이루기 (공꽁콩)와 첫소리 글자를 끝소리 글자에 가져다 씀으로 최소의 낱자로 글자 만들기(), 첫소리와 가운데, 끝소리를 모아쓰는 방식은 가로와 세로 어느 쪽으로도 쓸 수 있고 뜻을 드러내기도 좋고 빨리 있을 수 있어 배우기 쉽고 쓰기 편리한 글자로 세계인들이 찬탄할만한 근거가 충분하다. 또한 예술적으로도 아름다운 문자로 광고와 상품의 디자인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많은 예를 볼 수 있다.

한글가온길답사는 나 역시 그 동안 한글을 지식 습득의 도구로만 활용했던 조선시대의 사대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때로는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지도했음을 반성한다. 그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입으로 말하면서도 한글의 역사와 고난을 알지 못했으며 한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글쓰기를 통해 한글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솔선수범하며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본어와 한자 용어를 한글화 하는 작업에 미약하나마 기여하리라 다짐하며 이런 기회를 주신 남영신 교수님과 김슬옹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한글가온길답사글을 마친다.


글/오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