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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글/안무길)

2017.12.31 21:24

관리자 조회 수:608

새벽 잠결에 파스를 붙여 둔 왼쪽 무릎에 손이 갔다. “! 없네.” 무릎 맨살만 만져지길래 잠든 사이에 파스가 떨어졌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파스는 오른쪽 무릎에 붙어 있었다. 내게 10년 전부터 찾아온 건망증의 신종(?)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기분이 별로 좋을 리가 없었다. 분명히 왼쪽 무릎이 시큰거려서 파스를 붙였는데 그 파스가 왜 오른쪽 무릎에 가 붙어있냐고! 짐작하건 데는 파스 부칠 때 골똘하게 무슨 다른 생각을 하면서 붙인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통증이 있는 무릎을 놔주고 오른쪽에다 붙였지! 그러고 나서 새벽에 통증이 있는 무릎을 만지고 붙인 파스가 없으니까 밤새 밀려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다니! 중증 건망증임이 틀림없다.

 

십수 년 전에 건망증으로 의심되는 증세가 처음 나타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람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 또 하나는 해야 할 일을 머리에 떠올리고 그것을 컴퓨터의 일정표에 입력하려고 자판에 손을 얹는 순간, 뭘 입력하려고 했는지 생각이 안 나는 증세가 반복되는 거였다. 그 후로 이 두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증세는 지금도 대인관계에서 불편을 넘어 장애까지 되고 있다.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는 사람 이름이 들어갈 때가 많다. 대화 중에 들어가야 할 이름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 대화가 많이 불편해지면서 장애로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일정표에 무엇을 입력하려는 순간 기억이 나지 않는 증세는 그 후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 노트를 한 권 준비해 뒀다가 메모할 것이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 바로 노트에 적고 있다.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보다 노트에 즉시 적는 것이 더 빨라서 다소 보완책이 되는 것 같다.

 

이런 것 외에도 남들에게 건망증 증세로 나타나는 것은 다 망라하여 경험해 본 것 같다.

외투나 머플러나 장갑을 식당 등에 두고 나온 적은 부지기수이고, 택시에 핸드폰을 두고 내린 적도 다섯 번 이상은 족히 되는 것 같다. 택시에 두고 내린 핸드폰은 나의 건망증 증세에 따른 후유증 예방 차원에서 택시 요금 영수증을 꼭 받아둔다. 그러면 내리고 난 뒤 핸드폰이 없는 것을 발견하면, 영수증에 있는 번호로 전화해서 보통 3만 원 정도의 사례비를 다시 돌아와 돌려준 사례비로 기사에게 주고 핸드폰을 돌려받곤 했다.

 

이것 외에도 건망증 증세는 무수히 많다. 지하철을 잘못 타거나 내릴 역을 한참 지나 인식하고 되돌아온 사례도 부지기수다. 내가 제일 어이없는 건망증 증세는 처방받아온 약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 약을 먹을 때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어떨 때는 찢긴 1회분 약 포장지를 보고 확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쓰레기통을 바로 비우지 않아 여러 장이 있을 때는 여전히 긴가민가 고민하게 된다. 꼭 가야 할 지인의 자녀 결혼식을 깜박하여 백배사죄하고 축의금을 사후에 송금한 예도 많았다. 안경을 끼고도 안경을 찾는 등의 건망증 전형 증세는 나도 당연히 경험했고, 지금도 유사한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교회에서 잘 아는 한 권사님을 어느 장로님 부인으로 착각하고, “어제 장로 부부동반 송년회에 못 오셨더군요.”하고 아는 체했다가 그 권사님으로부터 제가 거기를 왜 가요?”하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여자로 착각하고 말한 것을 눈치챘을 테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조금 전에 착각에 의한 실수였음을 문자로 솔직하게 사과드렸다.

 

글을 쓰는 오늘만 해도 건망증에 의한 실수가 한 건 더 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병원 장례식장에 차로 문상을 다녀와서 주차를 하고 집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려는데 목에 감겨있어야 할 머플러를 없는 것을 발견했다. 문상을 위해 조문실을 들어가면서 접수부에 머플러를 잠시 맡겨둔 것이 실수였다. 내 몸에서 떨어진 순간 어떤 물건이든 내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여러 번 경험했으면서..... 장례식장으로 다시 돌아가 찾아오는 것이 멀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시간도 없고, 가기도 싫고, 착불 퀵 서비스로 집에서 받으려면 2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데 그건 너무 아깝고! 건망증이 주는 자주 경험하는 낭패이다. 

 

처음엔 실소를 짓는 것으로 넘어갔던 건망증이 점차 내가 경험한 병 중에서 가장 심한 장애를 수반하는 병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못 증세가 심각해서 위로를 기대하고 친구에게 말할라치면 자기는 더한 경우도 있었다는 식으로 나의 이 심각한 장애를 병 축에도 끼워주지 않는다. 요즘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어디를 나서면 마음속 체크리스트로 점검하고 나서지만 꼭 한두 가지는 누락이 되어 불편을 겪게 된다.

 

요즘은 거의 포기하고 내 건망증이 치매나 알츠하이머병으로 확대되지만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내 건망증이 좋은 역할을 할 때도 있다는 것을 몇 가지 경험했다.

 

하나는 내 친구 중에 어렵게 성공하여 지금은 몇 개 사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한 친구가 전화를 해서 자회사 격인 한 사업체의 사장을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내가 일하는 로펌에 고문 계약을 해주어 도와주려나 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그 자회사 사장을 만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사장은 나를 적지 않은 연봉으로 그 회사 고문으로 채용하는 고문계약서를 내밀었다. 돌아오면서 친구에게 전화했다. “나는 우리 회사와 고문 계약 정도로 생각하고 갔는데, 자네가 완전히 나를 도와주려고 작정을 하고 불렀더구나.” 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네가 내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많이 도와준 것을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우리도 필요해서 그렇게 한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주게.”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가 이렇게 갚을 만큼 도와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래되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을 그 친구가 사업 초기에 부탁한 것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었다. 아무튼 나는 친구를 도운 기억이 없고, 친구는 내게 고마웠던 것을 갚고 싶다고 말하니 이것이 나의 건망증이 준 선물이라 해야 할까 아직도 판단을 잘 못 하고 있다.

 

또 하나는 사촌 동생이 지난번 화재 후에 전화위복으로 회사 사옥을 다시 잘 짓게 되어, 좋은 일이니 축하 자리를 만들자고 내가 제안하여 고향에서 사촌 형제들이 다 모였다. 그날 큰집 사촌 형제들이 나에 대한 덕담을 많이 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돌아가신 큰어머님과 어려운 형편의 큰집 큰 누님에게 내가 고맙게 했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나에 대한 칭찬이라 기분은 좋았지만 나는 그런 일이 있었나?” 생각될 정도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감동한 것은 모임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그다음 날이었다. 그 모임의 주인공이었던 사촌 동생이 우리 사촌들의 카톡방에 편지 하나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그 편지는 내가 그 동생에게 35년 전에 보낸 손편지였다. 내용은 주로 한 살 아래인 사촌 동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내용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편지를 보낸 기억조차 없는 편지를 여러 차례의 이사통에도 버리지 않고 35년을 보관하고 있었다니! 동생의 마음에 대한 감동을 더 해 준 건 옛날 일도 잘 잊어버리는 내 건망증이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마지막은 바로 아래 내 남동생이 보낸 카톡 편지였다. 안티 크리스천으로 갈등이 있었던 동생은 어머니 장례를 모시면서 마음이 많이 열렸고, 동생이 그런 마음을 담아 내게 보낸 카톡 편지의 첫머리에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첫 월급으로 중학생이었던 자기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그때 우리 집 형편으로는 엄두도 못 냈던 스케이트를 선물해 주었다는 것이다. 정말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얘기였다. 동생은 그 편지에서 스케이트를 가진 자기 친구가 쉬는 시간에 잠시 빌려 타곤 했었는데, 내가 사준 스케이트로 금호강을 질주할 때의 그때 기분을 편지에 적고 있었다.

 

내가 장애를 느낄 만큼 불편한 건망증에도 이렇게 쓸만한 것이 있다는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는 지금, 건망증에 대한 위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