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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탈출법

2015.09.30 18:35

관리자 조회 수:7676

  여러 번 강조하지만, 비문은 욕심 때문에 생긴다. 한 문장에 여러 가지 내용을 쑤셔 넣으려다 보니 주술 관계가 흐트러지고 문법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느긋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 해결책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한 문장에 한 가지 정보만 넣는 것이다. 방법은, 문장을 짧게 끊어 주는 것. 이것 외에 글을 잘 쓰는 방법은 거의 없다, 고 할 수 있다. 좋은 문장, 아름다운 문장, 남의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쓰려면, 가장 먼저 비문이 아니어야 하니, 결국, 짧게 쓰는 것이 진리인 셈. 실제로 보자.
 
'화장은 할 때보다 지울 때가 중요하다는 광고처럼 대출도 마찬가지다. 대출도 받을 때보다 갚아 나갈 때가 중요하다.'
 
이러면 첫 문장은 '화장처럼, 대출도 할 때보다 지울 때가 중요하다'가 돼 버린다. 척 봐도 두 가지 이야기를 하려는 욕심 때문에 글이 꼬인 것을 알 수 있다. 문장을 잘라 보자. 너무나 간단하게 비문도 해소되고 뜻도 잘 전달된다.(→화장은 할 때보다 지울 때가 중요하다는 광고가 있다. 대출도 마찬가지다. 대출도 받을 때보다….)
 
'2013년 8월 적광 스님이 조계사 앞에서 조계종 내부 비리를 폭로하려는 기자회견을 하려다 호법부 승려와 직원들이 총무원 지하실로 끌고 가서 집단폭행했다.'
 
역시 두 가지 정보를 한 문장에 담으려는 통에 나온 비문이다. 마찬가지로, 잘라 보자.(→2013년 8월 적광 스님이 조계사 앞에서 조계종 내부 비리를 폭로하려는 기자회견을 하려 했다. 그러자 호법부 승려와….)
 
물론 '하려다'를 '하려고 하자'로 고쳐 한 문장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이 길어서 좋을 건 별로 없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주술 관계가 얽히고 꼬여서 읽는 사람을 힘들게 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 하나, 자신이 없으면 절대로 짧게 쓸 수 없다. 즉, 문장이 길어진다는 건 자신이 없다는 말이기도 한 것. 그러니 왜, 일부러 그렇게 보이는 글을 쓰겠는가.

'경찰서장이 새로 부임하면, 관사와 집무실의 도배와 장판을 아예 새로 한단다. 서장은 대략 1년에 한 번 바뀌니, 도배와 장판이 연례행사인 셈이다.' 

'새로 하다'에 걸리는 목적어가 '도배'와 '장판'인데, 둘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어서 문제가 된다. 장판은 그냥 장판일 뿐이지만, 도배는 '종이로 벽이나 반자, 장지 따위를 바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물건을 가리키고, 하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 이러니, 한 가지 서술어를 쓰면 어색해진다. '도배-장판'을 '벽지-장판'으로 바꾸면 급한 대로 말이 통하겠지만, 더 정확하게는 이렇게 고치는 것이 좋겠다.(→경찰서장이 새로 부임하면, 관사와 집무실의 도배를 하고 장판을 새로 깐단다. 서장은 대략 1년에 한 번 바뀌니, 도배와 장판 갈기가 연례행사인 셈이다.) 

이 정도면, '느긋해지기'와 '욕심 버리기'가 해결책임을 쉽게 알 수 있을 터. 글을 잘 쓰는 일이나 잘 살아가는 일이나 원리는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부산일보 이진원 교열팀장/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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