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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권 지폐 앞면에 실려 있는 세종대왕 초상




■인간적 약점을 극복하며 초인적 의지로 치적쌓아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태어난 해가 같다. 두 사람은 문자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점에서 닮은꼴을 지닌다. 구텐베르크는 인쇄술로 물질이 아닌 정신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가능케 한 매스커뮤니케이션 역사의 원년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전문기능인에 불과했다. 알프레드 웨버가 ‘유럽 생활기술 혁명의 서막’을 열었다고 평가한 그는 15세기 알프스 북부의 수공업자들, 즉 수익의 증대와 노동의 경감 외엔 다른 어떤 관심도 없었던 수공업자 중의 한 사람일 따름이다.

이에 비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일컬어지던 ‘만능 인간(l’uomo universale)’이었다. 굳이 유럽인에 견준다면 세종대왕은 철학자 칸트가 ‘계몽군주’라 일컫던 프리드리히 대왕과 보편적인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합쳐 놓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한글은 문자의 탄생 기록이 있는 세계 유일의 문자이며, 가장 젊은 문자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레드야드 교수는 한글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의 사치이며,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문자’라고 말했고, 영국의 제프리 샘슨은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 중 하나’, 문자학자 존 맨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평했다.

그런 문자를 만들어낸 세종의 이름은 도, 자는 원정으로 조선 태종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다. 1408년(태종 8년) 충녕군에 봉해지고, 1412년 충녕대군에 진봉(進封)됐다. 당시 왕세자는 형인 양녕대군이었으나, 태종은 충녕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해 1418년 6월 세자로 책봉했고, 같은 해 8월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다. 세종은 청천부원군 심온의 딸인 소헌왕후와 결혼했다.

세종은 태어날 때부터 국가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걸출한 인재는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그는 남들보다 훨씬 못한 인간적인 약점을 인내와 끈기로 극복하고, 32년 간 분초를 아껴가며 치적을 쌓아올린 초인적인 노력가였다.

세종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는 27살 때부터 평생 약을 복용했고, 악화된 건강을 신하들에게 숨기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가장 큰 질환은 30살부터 앓기 시작한 풍기(고혈압)와 당뇨병이었다. 또 관절염, 신장염, 피부염, 천식, 수전증, 신경쇠약, 이질, 위궤양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 병든 몸이 심약한 성격을 조장한 탓인지 그는 친인척 관리에도 실패했다. 그는 즉위 초 아버지 태종과 장인 심온의 갈등을 중재하지 못해 처가가 도륙(屠戮)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또 내전(內殿)이 다스려지지 않아 세자빈이 둘씩이나 음행으로 폐출됐고, 두 사돈댁은 멸문되었으며, 훗날 문종이 되는 세자는 평생토록 정실부인 없이 지냈다.

특히 세종을 괴롭혔던 것은 후계 체제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왕자 시절부터 드세었던 차남 수양대군의 교만은 ‘단종애사’ 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세종은 건강 결함과 왕실의 불행을 딛고 자신의 치세(治世)를 열어간 왕이다. 세종의 정치력은 국가기강의 엄정함으로 나타났다.

세종은 즉위하자마자 태종이 이룩한 왕권강화를 바탕으로 유교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의정부의 권한을 제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태종 때 실시된 6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이어받아 국정을 직접 관장했다. 이후 왕권이 안정되자 1436년 6조직계제를 폐지하고,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를 부활했다.

■집현전 통해 유교이념 확립하고, 의정부의 지나친 권력행사 견제

1420년 설치된 집현전은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육성하는 동시에 왕과 세자에 대한 학문적인 자문·교육과 각종 학술연구 서적편찬을 담당하는 기구였다.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정인지 등 집현전을 통해 배출된 학자들은 유교이념에 입각한 정치와 문화를 확립하는 중심축 역할을 했고, 의정부의 지나친 권력행사를 견제했다. 교과서에는 세종의 따스한 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잠든 신숙주에게 어의(御衣)를 덮어준 일화가 나온다.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를 ‘미담’으로 여기지 않는다. 당시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이 하달하는 살인적인 업무량에 짓눌려 매일 야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종 집권기 때 국경수비와 국가안보는 무조건적 과제로 실천됐다. 세종은 모친상을 치르게 해달라는 김종서의 요청을 묵살하고, 임종 석 달 만에 다시 함길도로 보낼 정도로 냉혈적인 측면도 있었다. 세종은 태조 이후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계승해 이를 정치이념과 정치제도뿐만 아니라 사회윤리에까지 확대했으며, <효행록> <삼강행실도> <주자가례>를 간행·보급하며 유교적인 사회질서 확립을 꾀했다.

1419년 사사노비(寺社奴婢)의 정리를 시작으로 1424년 불교를 조계종과 천태종 등 양종(兩宗)으로 정비해 전국에 각각 18개의 사찰만을 인정했다. 세종은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펴기는 했지만 왕실에서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거나 불교행사를 갖는 것은 허용했다. 또 유신(儒臣)들의 극단적인 ‘불교전폐론(佛敎全廢論)’에는 뜻을 같이 하지 않았다.

세종은 말년에 두 아들과 왕비를 잇달아 잃고, 자신의 건강이 크게 악화되면서 유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불당(內佛堂)을 짓고 불경을 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가 숭유정책의 방향을 바꾼다는 뜻은 아니었다.

세종 시대에는 왕실의 위엄이 그 어느 때보다도 견고했고, 공직사회의 법도는 그야말로 ‘칼날’ 과도 같았다. 폐출된 세자빈의 집안은 일가족이 음독자살하거나 아버지가 딸을 교살하고, 스스로 목을 매야 했다. 황희와 고위공직자의 청빈한 생활은 당시 부정부패에 대해 왕실이 엄정하게 대처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세론(世論)에 겁내지 않고, 국가의 백년대계만을 위해 매진했던 세종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종은 이 같은 엄정한 기강을 바탕으로 백성들에게 보탬이 되는 사업들을 하나씩 추진했다. 세종이 펼친 사업들은 평민에 대한 뜨거운 애정, 힘없고 돈 없는 서민에 대한 측은지정(惻隱之情)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 애정이 물방울처럼 모여 훈민정음이 되고, 유교적 법치주의가 되고, 15세기 당시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했던 과학기술이 된 것이다.

■왕실의 위엄 강조하며 냉혈적인 면모도

세종은 관리의 등용 녹봉 체계를 뜯어 고치고, 언로(言路)를 보장하는 등 관료제도도 정비했다. 법체제도를 개편해 1422년 <속육전(續六典)>을 편찬했고, 여러 차례의 개수(改修) 작업을 거쳐 1435년 완성본을 발간했다. 형벌제도를 개혁해 가혹한 고문으로 피심문자가 죽는 일이 없도록 했으며, 죽을죄에 해당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삼심(三審)을 받게 하는 삼복법(三覆法)을 시행했다. 1444년에는 노비를 노주(奴主)가 마음대로 벌주지 못하도록 하고, 위반한 자는 처벌케 하는 등 백성들의 인권옹호를 중시했다.

경제정책에서도 세종은 농업기술을 발전시키고, 조세제도를 손질하는 데 주력했다. 태종 때 보급된 <농상집요>가 중국 화북지방의 농법을 다룬 것이어서 조선의 삼남지방의 농업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정초에게 <농사직설>을 편찬케 했다. 세종의 조세제도 개혁에서 가장 큰 업적으로는 공법(貢法) 제정이 꼽힌다. 당시 과전법 체제에서는 조세규정이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데다 토지의 비옥(肥沃) 여부를 따지지 않고 세금을 거두는 불합리한 측면이 많았다. 이에 따라 세종은 토지비옥도의 차이에 따라 각각 9등급과 6등급으로 나누어 세액의 차이를 두는 연분9등법(年分九等法), 전분6등법(田分六等法)을 실시해 조세 형평성을 꾀했다.

세종의 대외정책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事大)와 왜·여진 등에 대한 교린(交隣)이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명나라에 처녀를 바치는 처녀진헌(處女進獻)과 금은조공(金銀朝貢)을 폐지하는 등 불합리한 명나라의 요구에 대해서는 쐐기를 박았다.

여진과 왜에 대해서는 정벌을 단행했다. 김종서와 최윤덕에게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의 여진을 몰아내게 하고, 4군 6진을 설치해 이 지역에 남쪽의 백성을 이주시켰다. 송회미 같은 장군은 여진족이 침입했을 때 적극적으로 응전하지 않았다는 직무유기죄가 적용돼 참수되기도 했다.

왜에 대해서는 1419년 이종무에게 대마도를 정벌케 했으나 1423년 삼포(三浦)를 개항하면서 회유책을 병행하는 융통성을 발휘했다.

2009년 10월 9일 한글날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워진 높이 9.5m의 세종대왕 동상.



세종 때에는 유럽의 르네상스에 비견될 정도로 문화와 과학이 크게 융성했다. 특히 훈민정음의 완성과 반포는 이 시기 문화유산의 결정체이다. 1428년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간행사업은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의 역사서, <사서언해> <효행록> <삼강행실> <오례의주> 등 유교경전, <운회언역> <용비어천가> <동국정운> 등 음운 언해 관련 서적, <팔도지리지> <조선전도> 등 지리서,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등 의학서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1443년 완성돼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은 종래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 기형적인 문자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시기에는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등 과학 유산도 양산됐다. 해시계로는 장영실 등이 발명한 앙부일구(仰釜日晷), 현주일구(懸珠日晷), 천평일구(天平日晷), 정남일구(定南日晷) 등이 있었다. 물시계는 흐린 날이나 밤에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표준시계로 쓰였다. 1398년에 이미 경루(更漏)라는 국내 최초의 물시계가 있었지만, 세종 때에는 장영실이 자동적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자격루(自擊漏)와 옥루(玉漏) 등 더욱 발전한 물시계를 만들었다.

1441년 측우기의 발명은 빗물이 땅 속에 스며드는 깊이로 강우량을 측정하던 종래의 불완전한 방법을 개선해 과학적인 강우량 측정을 가능케 했다. 인쇄술도 큰 진전을 이뤄냈다. 태종 때인 1403년 청동활자인 계미자(癸未字)가 만들어졌으나 글자의 모양과 크기가 매끈하거나 고르지 못한 결점이 있었다.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새로운 금속활자에 관심을 기울였던 세종은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 병진자(丙辰字) 등을 주조하는 데 성공했다.

화포의 주조기술과 화약 제조기술도 단순한 중국기술의 모방에서 벗어나 천자화포(天字火砲), 지자화포(地字火砲) 등 새로운 화포가 개발됐다. 조선의 제4대 임금이었던 세종은 평생을 괴롭혀온 당뇨병으로 53세 때인 1450년 눈을 감았다. 세종은 자신이 죽으면 아버지가 잠든 헌인릉 주변에 함께 묻히기를 원해 그곳에 능 자리를 정했다. 그러나 왕비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 뜨자 지관들은 “헌인릉 주변은 능묘 자리로 좋지 않다”며 다른 곳에 능묘를 정해야 한다고 권했다. 그러자 세종은 “다른 곳에 복이 깃든 땅을 얻는 게 아버지 곁에 묻히는 것만 하겠는가”라며, 소헌왕후의 능을 헌인릉으로 정하고 자신도 죽어 왕후 곁에 나란히 묻혔다.

세종이 사망한 뒤 지관들은 세종의 묘 자리가 좋지 않다고 상소를 올렸고, 조정에서는 세종의 능을 옮기려 여러 차례 숙의를 거듭했다. 예종은 세종의 능을 옮길 자리를 알아보라고 지관들을 전국에 내려 보냈다. 묘를 옮길 장소를 알아보던 지관들이 경기 여주의 북성산에 다다르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지관들이 비 피할 곳을 찾다보니 신기하게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재실(무덤이나 사당의 옆에 제사 지내려고 지은 집)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곳은 천하의 명당이었다. 그렇게 해서 세종의 능은 여주 능대리 북산 중턱으로 옮기게 됐다. 세종의 능인 영릉은 봉분이 하나뿐이어서 세종만 잠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왕과 왕비가 함께 묻혀 있는 합장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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