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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문학을 영어로? ‘무늬만 영강’ 판치는 대학가

[무늬만 영어강의] (하)

수정: 2014.09.25 10:40
등록: 2014.09.25 04:40
  

대학평가 잘 받으려 무조건 확대, 영어강의 비중 25~30%대로

절대평가방식 학점 퍼주기도 문제 "국제화 무기는 어학보단 심층 학습"

중앙대 영어 강의

중앙대학교 박창순 교수가 23일 오후 응용통계학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제공

영어강의향상도

영어이해도

수 년째 대학가에 ‘무늬만 영어강의’가 판치고 있지만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교수가 많지 않은데도 대학평가를 잘 받으려고 대학들이 강의 수만 늘리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진단했다.

현재 주요 대학들의 영어강의 비중은 2006년 3~4% 수준에서 최근 25~30%까지 급증했다. 대학평가를 통한 학교 순위 공개에 목을 매는 대학들이 주요 평가 기준의 하나인 영어강의 수를 묻지마 식으로 늘리고 있는 것이다. 모 언론사 대학평가의 경우 국제화 부문은 총 30점 중 영어강의 비중에 10점을 부여하는데 만점을 받으려면 전체 전공강의에서 영어강의가 25%를 넘어야 한다. 반면 영어강의의 질에 대한 평가항목은 없다.

유원준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고전문학이 전공인 국문과 박사에게 영어로 수업해보라고 시키는 코미디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대학평가 점수를 잘 받으려고 현실도 고려하지 않은 채 영어강의를 무분별하게 개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영어강의는 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대학의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로 원활히 수업할 수 있는 교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교수가 영어를 잘 못해도 학교에서 수업을 억지로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영어강의가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별로 없을 뿐 아니라 ‘학점 인플레이션’(학점을 후하게 주는 현상)까지 초래한다는 점이다. 이광현 부산교대 교수 등이 2012년 국내 일반대학 재학생 1,728명을 조사한 결과 영어강의를 통해 영어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답한 이들은 25%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대다수의 영어강의는 학점 퍼주기 강의로 전락하고 있다. 강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며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어로 진행되지도 않으면서 학생들이 학점만 잘 받는 왜곡된 구조가 자리잡게 됐다.

무늬만 영어

A대학의 경우 절대평가 방식을 적용하면 학점을 주는 것은 전적으로 교수의 재량이다. 상대평가 방식이 적용되는 일반 수업의 경우 전체 수강생의 30%는 C학점 이하를 받아야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A대학에선 그래서 ‘무늬만 영어강의’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는‘꿀강의’로 통하고 있다. 서울 K대에 다니는 박모(24)씨는 “올 1학기 마케팅 영어강의 시험을 망쳐 C학점도 못 받을 줄 알았는데 A학점을 받았다”며 “적당히 해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게 영어강의”라고 말했다.

영어강의의 부작용이 날로 커지자 영어강의 개설을 자제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광근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국제화가 진행될수록 울타리 없는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 기반이 되는 건 심층 공부”라며 “영어강의 확대를 자제하고 모국어 수업 위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대학에 입학하는 외국인 학생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영어강의가 어느 정도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왕 영어강의를 개설할 것이라면 제대로 행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성하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교수는 “영어강의를 위한 노하우를 전수하는 특강을 자주 열고, 강의 개발을 위한 재정적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이상경인턴기자(경희대 사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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