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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news.joins.com/article/23271370


아흔 한살에 한글 연구저서를 집필한 김승곤 건국대 명예교수. 손국희 기자

아흔 한살에 한글 연구저서를 집필한 김승곤 건국대 명예교수. 손국희 기자

올해 아흔 둘을 맞은 노(老)학자의 서재는 단출하면서도 가득 차 있었다. 5평 남짓한 서재는 3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였다. 한글 서적은 물론 러시아, 일본 등 외국 서적 1500여 권으로 빼곡했다. 빛바랜 장판 바닥도 쌓아 놓은 책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미 5000여권의 책은 공간이 부족해 고향(경남 부림면) 자택에 보내놨다고 했다.
 
노학자의 학구열은 서재에 가득한 책으로만은 채워지지 않는 듯했다. 그는 아흔한 살이던 지난해에 직접 책도 썼다. 기존에 썼던 저서 13권에 새로이 2권을 더해 총 15권의 『한길 문집』을 펴냈다. 의존명사, 부사, 형용사, 감탄사 등 우리가 평소 사용하면서도 쓰임이나 기원에 대해 알지 못하는 한글 표현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나의 한글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김승곤(92) 건국대 명예교수(전 한글학회장)를 4일 서울 공릉동 자택에서 만났다.
 
퇴임 전 8권, 퇴임 후 16권 책 써내  
김 명예교수는 고등학교 졸업 뒤 줄곧 ‘한글 외길’을 걸었다. 원래 중ㆍ고등학교의 국어 교사로 일하다가 박사학위를 취득해 1970년부터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22년간 재직했다. 문과대학장과 대학 부총장을 지내고 1992년 65세 정년으로 퇴임했다. 퇴임식 때 제자들은 “그동안 연구에 매진하시느라 고생하셨다”며 김 명예교수를 배웅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끝난 게 아니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서울 공릉동 자택에서 자신의 저서를 설명하고 있는 김승곤 건국대 명예교수. 손국희 기자

서울 공릉동 자택에서 자신의 저서를 설명하고 있는 김승곤 건국대 명예교수. 손국희 기자

그는 퇴임 다음날에도 고향에 지어둔 집에서 책을 펼쳤다. 정년퇴임 전 그가 써낸 저서는 총 8권이었지만 퇴임 후 쓴 책은 16권으로 2배나 더 많다. 김 교수는 “젊은 시절 밤낮을 씨름하며 연구해도 한글은 늘 새로운 세계였다”며 “퇴임 후 허송세월하면 잡념만 생길 것 같아서 홀로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교수 시절 연구한 분량보다 그 이후 공부하고 연구한 게 더 많을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김 명예교수는 한글에 대한 우리 사회나 학계의 인식이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고 했다. “영어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쓰임새나 어휘의 기원, 문법 등을 배우는데 한글은 오히려 익숙하다고 생각해 소홀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들이나 정부 기관 등에서 국민들에게 ‘당부 드린다’는 표현을 쓰는데, ‘당부’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하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며 “우리가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쓰는 한글이 꽤 많다”고 말했다.
 
이번에 낸 『한길문집』에는 한글에 대한 노학자의 열정이 집약돼 있다. 15권 전집을 완성 짓기 위해 지난해에도 펜을 들어 저서 두 권을 집필했다. 15세기 고전서적부터 1930년대 독립신문, 문학 서적 등도 밑줄을 쳐가며 탐독했다. 그는 “나도 젊은 시절 한글의 특정 부부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는데 코끼리의 코만 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말 토씨 하나하나의 의미와 원리 등을 따져보고 연구해야 한글이 더 발전하고 실생활에도 정확하게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노학자가 ‘떡상, 떡락’ 표현 찾아본 까닭은

김 명예교수는 최근 젊은 층들이 쓰는 신조어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최근 젊은 층들이 ‘떡상, 떡락’(가상화폐 가격이 폭등ㆍ폭락하는 것을 의미)’ 같은 말을 쓰는 걸 듣고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했다. 그는 “신조어라고 해도 실생활에서 의미 있게 쓰이고 있다면 사전 등재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며 “다만 저속한 표현이나 본래 한글 단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무분별한 줄임말은 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김 명예교수가 빠른 걸음으로 약 30m 정도 기자를 따라 걸어왔다. 기자가 깜빡하고 자택에 놓고 온 노트북을 건네주기 위해서였다. 아흔을 넘긴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정해보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연구해야 건강도 챙길 수 있다. 100세가 되는 날에도 기념 책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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