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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122615265998432&outlink=1&ref=http%3A%2F%2Fbs1.eyesurfer.com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99 – 조선어학회 : 민족혼 담아 사전을 펴내다


또 하나의 독립운동! 조선어학회, 말을 모으다


“조선말은 우리의 무수한 조상들이 잇고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 준 거룩한 보배다. 우리는 이 말을 떠나서는 하루 한때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

1947년 천신만고 끝에 출판된 ‘조선말큰사전’ 1권의 머리말이다. 이 사전은 일제강점기에 또 하나의 독립운동으로서 피땀 흘리며 일궈낸 한글운동의 귀중한 결실이었다. 

오늘날 독립운동 하면 흔히 3.1운동과 임시정부, 그리고 항일무장투쟁을 연상한다. 이는 국권회복을 위한 한민족의 거사요, 분투였다. 그런데 일제강점이 수십 년 이어지면서 주권을 되찾는 일 못지않게 민족문화 수호가 독립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특히 고유의 말과 글은 민족문화의 알맹이이자, 정체성의 바탕이기에 반드시 지켜야 했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대륙침략에 나섰다.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그들은 1941년 진주만 공습과 함께 전선을 태평양 전역으로 확대시킨다. 

이 미친 전쟁에 한국인을 총알받이로 동원하고자 일제는 ‘황국신민(皇國臣民)’, ‘내선일체(內鮮一體)’ 따위를 강요했다.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정체성을 바꾸려 한 것이다. 대표적인 조치가 바로 조선어 금지였다. 민족 고유의 말글을 학교나 공식석상에서 못쓰게 했다. 

영화 ‘말모이’는 그 엄혹한 시대에 조선어학회가 펼친 거국적인 사전 편찬 사업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말모이’란 사전에 담을 말을 모은다는 뜻이다. 말과 함께 겨레의 마음이 모여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사전이 아니었다. 일제의 광기에 맞서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만들려는 눈물겨운 독립운동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글운동의 뿌리는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말글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한 주시경은 이 일이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고 외쳤다.

“자기 나라의 말과 글을 도외시하면 나라의 바탕은 날로 쇠퇴할 것이요, 나라의 바탕이 날로 쇠퇴하면 나라 형세를 회복할 가망이 없을 것이다.”
나라를 잃게 생겼는데 언어까지 잃으면 민족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영원히 독립을 쟁취할 수 없다고, 주시경은 경고했다.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최현배 등 그의 제자들이 1921년 ‘조선어연구회’를 결성했다. 1926년에는 ‘가갸날’을 만들어 훈민정음 창제를 기념했는데, 1928년부터 ‘한글날’로 바꿔 불렀다.

조선어연구회는 이극로 등이 새로 합류하면서 1931년 ‘조선어학회’로 거듭났다. 본격적인 첫 사업은 한글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우리 말글은 지역과 계층에 따라 낱말, 표기, 띄어쓰기 등이 제각각이었다. 겨레의 언어가 되려면 통일된 기준이 절실했다. 

조선어학회는 먼저 맞춤법 통일에 나섰다. 3년에 걸쳐 125차례 회의를 열었다. 통일안이 발표된 것은 1933년 한글날. 띄어쓰기 등이 자세히 규정되었다. 다음은 표준말이었다. 1934년 사정위원회를 설치해 표준철자를 검토하고 학교, 언론사, 문필가 등의 의견을 취합했다. 노력 끝에 1936년 표준말 사정안이 나왔고, 4년 후에는 외래어 표기안도 확정되었다. 

기준이 잡히자 조선어학회는 사전 편찬을 서둘렀다. 1937년부터 전국 방방곡곡 어휘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말모이’에 들어간 것이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관계자, 신간회 회원, 피압박민족대회 참가자 등 뜻있는 독립지사들도 조선어학회에 참여하거나 힘닿는 대로 후원했다. 한글을 바로 세워야 민족정신이 살아나고 독립의지가 솟는다고 본 것이다. 

수집한 어휘들은 편찬위원들의 논의와 학자들의 감수를 거쳐 정확하게 풀이되고 차곡차곡 쌓였다. 1942년 마침내 <조선말큰사전> 원고가 출판사에 넘어갔다. 16만 개의 어휘, 3천 장의 삽화로 이루어진 역작이었다. 하지만 그해 10월에 터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사전 편찬은 중단되고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일이었다. 7월에 함흥 영생여학교 학생이 기차에서 조선말을 쓰다가 경찰에 적발되었다. 공공장소에서 조선어 사용을 금지한 일제는 어린 여학생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형사들은 불온사상을 점검한다며 여학생의 일기까지 들춰봤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사건을 키울 속셈이었다.

결국 이 학교 교사였던 정태진이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조선말큰사전’ 편찬에 관여하고 있었다. 일본 경찰은 정태진을 혹독하게 심문해 조선어학회가 독립을 도모한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알고 보면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진행된 기획수사였다.

1942년 10월 이윤재, 한징, 최현배, 이극로 등 조선어학회 회원 11명이 경찰에 체포되어 함흥으로 끌려갔다. 검거 열풍은 이듬해 4월까지 몰아쳤다. 도합 33명이 붙잡혀 갔고, 48명이 조사를 받았다. 회원이고 후원자고 가리지 않았다. 출판사에 넘어갔던 ‘조선말큰사전’ 원고도 당국에 압수되었다.

죄목은 치안유지법 위반! 일제는 조선어학회에 내란 혐의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취조와 심문에 능한 악질 형사들이 투입되었다. 매일같이 처절한 고문이 이어졌다. 

“두 팔을 묶어 천정 대들보에 매달았다. 형사 여럿이서 죽검으로 매타작을 했다. 동지끼리 맞세워 놓고 때리라고 강박하기도 했다. 콧구멍에 주전자를 대고 물을 붓는 등 야만적인 고문이 그칠 줄을 몰랐다. 선생들은 한참씩 까무러쳤다가 깨어나곤 했다.”(매일신보 1945년 10월 10일자)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16명이었다. 그 가운데 이윤재와 한징은 고문 후유증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옥중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11명은 예심과 공판을 거쳐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판결문에 한글운동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운동은 민족 어문의 정리, 통일, 보급을 추구하는 민족 문화운동인 동시에 가장 깊이 도모하고 멀리 내다보는(深謀遠慮) 민족 독립운동의 점진 형태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수감된 이극로, 최현배, 정인승, 이희승은 1945년 8월 17일에야 함흥형무소를 나와 광명을 되찾았다. 흩어졌던 회원들은 다시 모여 조선어학회를 재건했다. 그리고 10월, 빼앗겼던 ‘조선말큰사전’ 원고가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조선어학회는 1949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1957년까지 사전 여섯 권을 완간했다. 

일제강점기 한글운동은 고유의 말글을 계승하면서도 시대변화에 따라 창조적으로 발전시켰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 조선어 표준말 사정안,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등은 해방 후 한국의 미래를 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렇게 한글은, 조선말은 국어가 되었다. 

역사가 박은식은 나라의 구성요소를 정신적인 ‘혼(魂)’과 물질적인 ‘백(魄)’으로 나누고, ‘혼’이 멸하지 않으면 ‘백’도 망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말, 아니 혼을 모아낸 ‘조선말큰사전’은 가장 깊이 도모하고 멀리 내다본 독립운동의 표상으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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