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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102688051


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6)

외래어 남용은 '건강한 글쓰기' 관점에서 병적 요소다.
글의 명료성과 간결성을 떨어뜨린다.
특히 의미 전달 자체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지난여름 어린이 안전사고가 잇따랐다. 통학차량에서 미처 내리지 못한 어린이가 폭염 속에 갇혀 사망하는 일까지 생겼다.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여론이 들끓었다. 서울 성동구에서 안전장치를 한발 앞서 도입했다. 이름이 ‘슬리핑차일드체크 시스템’이었다.


표현은 어색하고 뜻도 잘 드러나지 않아

“서울 성동구청 관계자가 2일 성수동 경일고등학교에서 어린이집 차량 30여 대에 ‘슬리핑차일드체크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날 행사를 대개 이런 식으로 전했다. 장치에 붙인 표지문의 문구도 난감했다. ‘전원 하차 후 태깅해 주시기 바랍니다.’ 좀 더 쉽게 쓰는 방법은 없었을까?

이 ‘어린이 보호장치’는 미국, 캐나다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우리에겐 낯선, 처음 도입되는 장치다. 외래 용어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잘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문화로 소화해 더 좋은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말도 마찬가지다. ‘잠자는 아이 확인장치’나 ‘어린이갇힘 방지장치’ 정도면 어땠을까? 또는 좀 더 넓은 개념으로 본다면 ‘어린이안전 관리장치’로 해도 무난했을 듯하다.



외래어 사용을 가능한 한 줄이자는 것은 단순히 영어투라서 또는 일어투라서 그런 게 아니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주장을 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요즘 우리말에 대한 인식이 꽤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말다운, 자연스러운 글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외래어 남용은 ‘건강한 글쓰기’ 관점에서 병적 요소다. 글의 명료성과 간결성을 떨어뜨린다. 특히 의미 전달 자체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슬리핑차일드체크 시스템’ 같은 게 그렇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가 간 협상이 있을 때면 ‘협상 모델리티’란 말도 자주 등장한다. 협상 세부원칙 또는 기본지침을 뜻하는 말이다. 지난 9월 열린 한 야당의 의원총회에서는 “경기부진과 기준금리 인상은 서로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라는 발언이 나왔다. ‘트레이드 오프 관계’는 모순관계 정도로 쓰면 될 말이다.

공공언어부터 우리말 쓰기 앞장서야

우리 주위엔 이런 ‘낯선’ 용어들이 제법 눈에 띈다. 굿닥, BRT, Kiss & Ride, 자동제세동기…. 알쏭달쏭한 이런 말들은 지난해 우리 국민이 뽑은 ‘시급히 바꿔 써야 할 안전용어’다. 우리말운동 단체인 한글문화연대가 한글날을 맞아 조사했다. 굿닥은 ‘비상약 보관함’, BRT(bus rapid transit)는 ‘급행버스체계’, Kiss & Ride는 ‘마중주차’를 뜻한다. 자동제세동기는 요즘 ‘자동심장충격기’로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소방서의 구호 ‘119의 약속 Safe Korea’도 굳이 영문자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모두 공공언어다.

‘소통의 실패’를 낳는 바탕엔 불필요한 외래어 남발이 깔려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낭비가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공공언어에서의 외래어 남용은 행정 비용을 늘려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정부 정책 실패를 불러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글을 ‘읽기 쉽고 알기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은 그런 점 때문이다.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일까? 간단하다.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히, 효율적으로 전하는 글이다. 글쓴이는 정교한 ‘문장 구성’이 필요하고 읽는이는 올바른 ‘문해력’을 갖춰야 한다. 이때 효과적인 소통을 방해하는 ‘잡음’이 끊임없이 작용한다. 외래어 남발은 글쓴이는 편할지 모르지만 독자에겐 정상적인 해독을 방해한다.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 수용자 관점에서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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