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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segye.com/newsView/20181030003725


575년 전 세종대왕은 온 백성이 글로써 자유롭게 소통하는 세상을 꿈꾸며 한글을 창제했다. 말과 글은 인간의 사고를 표현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우리말을 우리글로 쓸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8000만명을 넘어섰고 한류에 힘입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도 급증하고 있다. 이달 초 방탄소년단의 미국 뉴욕 시티필드 공연장에 운집한 4만명이 “얼쑤”, “지화자 좋다”를 외쳤다. 바야흐로 한글이 새로 태어나고 있는 셈이다.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국립국어원 소강춘(61) 원장을 지난 24일 만났다.


-방탄소년단의 뉴욕 공연으로 한글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다.

“처음부터 방탄소년단이 노래를 영어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글쎄.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자기 모국어로 표현했다. 그들의 생각과 10대·20대가 느끼는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그 노랫말 속에 그들의 문화와 아픔이 녹아 있고 외국인들은 거기에 공감한 것이다. 영어로 만들었다면 아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격이어서 감동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 정부의 한식 세계화의 실패 원인도 같지 않을까.

“한식을 세계화한답시고 외국 음식이나 소스와 섞어 내놓으면 외국인이 진정한 한국의 맛을 알겠는가. 이것은 한식의 세계화도 아니거니와 외국인들의 입맛에 잘 맞지 않을 것이다. 한국어의 세계화도 마찬가지다.”

-우리 젊은이들의 축약어나 외계어 사용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누구나 언어를 편하게, 자신들만 통하도록 쓰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은어가 만들어진다. 학자 입장에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얼짱, 몸짱’이 한창 쓰일 때는 이 단어를 모르면 이상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언어라는 게 그렇다. 정말 심각한 건 약자를 배려해야 할 강자들이 자신들만 통하는 언어를 쓰는 것이다. 고학력층, 권력층, 부유층이 약자를 무시한 채 쓰는 은어나 전문용어가 문제다.”


-정치인들도 혐오성 발언 등으로 우리말 오염에 앞장서고 있다.

“다른 나라라고 정치인들이 싸우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싸우더라도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면서 싸우는 문화가 되어 있다. 우리는 그런 역량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내 말을 상대방이 안 받아주면 나쁘다고 생각하고 나쁜 표현을 쓴다.”

-국립국어원이 공공언어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소통할 수 없는 백성의 답답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 공공분야에서 소통하기 위해 우리글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부정적이다. 정책제안서 등의 공문서를 보면 자신들만 알고 수혜자는 모르는 말들로 꽉 차 있다. 공공기관이 만들었으나 국민이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 이것은 알 권리의 침해이자 인권 침해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이 나서고 있다.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한 안내판을 예로 들어 누가 알겠느냐면서 알기 쉬운 용어로 바꾸라고 지적하지 않았는가.”

소강춘 국립국어원장이 지난 24일 서울 강서구 국립국어원에서 국어 정책의 청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공공기관 언어 소통성 사업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2013년부터 공공용어 번역 표준화 사업을 벌이고 있고 올해 하반기부터 정책명, 사업명 사전 상담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정부 부처 보도자료를 평가해 결과에 따라 총리·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등을 수여하고 있다. 내년에는 정부업무보고 자료나 누리집의 실태도 살펴볼 계획이다. 공공기관에서 쓰는 언어가 무슨 말인지 몰라 불편을 겪는다면 누구든지 국립국어원 누리집 게시판에 제보해달라.”

-지자체에서 슬로건이나 사업 이름을 지으면서 영어를 많이 쓴다.

“부산에 방문했다가 ‘문탠로드’라는 길 이름을 봤다. 무슨 말인지 몰라 알아봤더니 달맞이길이란다. 선탠의 선(sun)을 문(moon)으로 바꾼 것이다. 문탠로드는 결국 숱한 지적을 받고 사라졌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정착되면 나중에 고치기가 쉽지 않다. 소통성이 없는 단어를 계속 두어야 하는 결과가 된다.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시민들과 교류하는 등 명명의 타당성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 문법에 대한 국민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외래어 표기다.

“한글이 우리말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모든 언어의 음을 다 담아낼 수는 없다. 여기서 생기는 괴리다. 국어원이 나름대로 노력 중이다. 올림픽, 월드컵 등 큰 행사가 있으면 참가자 이름이나 단체 등을 외래어표기법에 맞게 선제적으로 만들어 배포한다. 외국 이름을 한글로 적을 때 최대한 실생활에서 쓰는 것을 반영하려고 하고 있다.”

-표준어를 서울말로 한정 짓는 것에 대한 지방의 불만이 높다.

“국어학자로서 각 지역의 언어들이 모인 총결산이 한국어라고 생각한다. 표준어는 서울 사람들이 쓰는 말을 중심으로 소통을 위해 만든 가상의 것이다. 이 표준어를 지키려다 보니 인위적인 언어가 살아남고 실제 우리 언어문화를 반영하는 언어가 급속도로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지역에서 쓰던 어떤 단어가 사라졌다면 수천 년간 그곳에 살면서 DNA에 기록한 전통이 상실되는 것이다. 너무 큰 손해다. 그래서 개방형 사전 ‘우리말샘’을 만들었다. 옛말, 방언, 북한어, 전문용어 등 모든 어휘 자원을 수록해 남기고자 한다. 우리말샘에 있는 단어라도 널리 쓰이면 표준어가 될 수 있다. 그것이 곧 언어 통일이고 통합이다. 널리 쓰이는 좋은 쪽으로 자연스럽게 뭉쳐지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언어의 정보화가 아주 중요한데 준비는.

“1998년부터 10년간 국어 정보화 사업인 ‘21세기 세종계획’을 추진했다. 2억 어절가량의 국어 말뭉치(언어데이터베이스)와 60만 항목의 전자사전을 구축했다. 그럼에도 컴퓨터 프로그래밍화가 잘돼 있지 않아 공학자들이 적절히 활용하지 않았다. 지금은 공학분야에서 바로 자료를 가져다 쓸 수 있게끔 만들어 줄 정도로 이쪽 기술이 발전했다. 내년에 대규모 정보화 사업에 돌입한다. 그때는 결과물을 어떤 분야에서건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역할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우리 언어 자원을 관리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국어가 잘 쓰이도록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국어 말뭉치 자료를 관리해 나갈 것이다. 여러 군데에서 구축한 말뭉치 자료를 통합 관리해 무료로 나눠주면 그 파급 효과가 산업적으로도 굉장히 클 것이다. 그런데 아직은 담당 인원이 부족하다. 국립국어원에 관련 과조차 없는 실정이다. 국립국어원에서 국어생활과 문법 상담을 하는데 지난해 23만896건을 처리했다. 담당 인력은 상근직 9명과 재택근무직 6명이 전부다. 인력과 예산 확충이 절실하다.”

대담=박희준 사회부장, 정리=김청윤 기자

소강춘 원장은…

△1957년 전북 남원 △전북 이리고·전북대 국어국문과 △전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한국어과 교수 △전주대 사범대학장 △전국국어문화원연합회장 △한국언어문학회장 △전주대 한국어문화원장 △11대 국립국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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