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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i-honam.com/article.asp?aid=153673851875026028


성별·세대·빈부·국적 막론 '혐오 신조어' 무한 생성
벌레 충(蟲)만 붙이면 손쉽게 만들어 공격에 이용




'극혐'. 요즘 온라인과 실생활에서 난무하는 말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 누구도 그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극도로 혐오한다'를 줄인 단어로 무언가가 정말 싫을 때 활용하는 신조어라는 걸 설명하는 일 자체가 새삼스럽다. 그만큼 흔히 쓴다. '-충'(蟲)이라는 새로운 접미어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단번에 깎아내리려면 '지방충'이라고 부르면 그만이다. 충은 실제 벌레처럼 어디에나 들러붙을 수 있다. 혐오는 쉽고 간편하다.
우리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편하게 느꼈던 이 말들이 부지불식 간에 어떤 문제의식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 그게 바로 혐오가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혐오 표현은 도처에 자욱하게 깔렸다. 세대·인종·계층·지역 간 반목이 없었던 시대가 언제는 있었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을 갈라쳐 상대를 찍어누르고 증오하며,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마저도 걸림돌로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른 적은 없었다. 혐오 표현은 그 대상을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거나 혹은 아예 제거해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전제한다. 혐오가 세를 불렸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결과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또는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알고 있다.
해충처럼 창궐해만 가는 '혐오의 일상화'를 경계하고, 최소한 혐오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우리 공동체의 심각한 문제라는 걸 환기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혐오의 드러난 각종 양태와 해악을 두루 살펴보면서, 그 속에 감춰진 원인을 짚어보고 해법도 모색하는 시리즈 기사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지난 수년간 혐오 표현은 성별·세대·빈부·국적 등 분야를 막론하고 갈수록 새로운 토양을 개척하며 번식해갔다. 온라인에서 탄생해 점차 유행하다 오프라인까지 옮겨가 차별적 의미를 담은 신조어들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온라인 상의 차별·비하 관련 시정 요구 건수가 2011년 4건에서 2016년 7월 기준 1352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용현 국회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차별·비하 표현에 대한 지적 건수가 가장 많은 사이트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였다. 디시인사이드와 메갈리아도 당시 상위를 차지했다.
혐오 신조어는 어렵지 않게 만들어진다.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단어에 일단 '벌레 충'(蟲)을 붙이기만 하면 상대를 비하할 수 있다. 이 말은 극우에 여성혐오 성향을 띈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의 회원을 지칭하는 '일베충'에서 시작됐다. 이후 '맘충' '급식충' '틀딱충' 등으로 확장했다. '맘충'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급식충'은 학교 급식을 먹는 중고등학생들을, '틀딱충'은 틀니를 착용한 노인을 모욕적으로 깎아 내린다.
차별받는 집단만이 아니라 행위·특성 등을 겨냥한 단어들도 이용되고 있다. 어떤 사안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진지충'이라고 하는 식이다. '설명충', '맞춤법충', '문법충' 등 성격적인 면에서 상대를 비꼴 때 쓰이게 된다.
익명을 무기로 혐오 표현이 기승을 부리는 온라인 전장(戰場)에서 네티즌들은 다양한 혐오 표현을 쏟아내며 서로를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돼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혐오·비난은 성적 대상화, 폭력 등 성차별적 문구 중 다수를 차지할 정도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 6월 1~7일 온라인 커뮤니티 8곳에서 발견한 성차별적 문구 161건 중 혐오·비난이 135건(83.9%)으로 압도적 다수를 이뤘다. 성차별적 문구 중 폭력·성적대상화 유형은 16.1%에 그쳤다.
온라인에서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른바 '남초 사이트'와 여성 위주의 '여초 사이트'는 상대를 비하하기 위해 각기 다른 '신조어 무기'를 그야말로 총동원한다. '한남충(한국 남성에 벌레 충을 붙인 단어)'과 '웜충(여성주의 커뮤니티 워마드 유저를 깎아내리는 말)'은 가장 기본 어휘다. 아예 남녀의 성기를 뜻하는 비속어로 상대를 일반화해 부르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김치녀', '김여사'와 같은 표현이 남성들을 중심으로 쓰여왔다. 이에 여성 인터넷 유저들은 대항 표현으로 '한남충', '○○남'이란 단어를 적용하고 있다. 이들은 남성들도 혐오 표현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러한 단어들의 폭력성을 깨달으라는 의미에서 해당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른바 '미러링'이다.
남성 중 약자도 그 표적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남자 아이를 비하하는 용어인 '한남유충', 남성 동성애자들을 혐오적으로 표현하는 '똥꼬충'과 같은 단어들이 일부 여성 커뮤니티나 기사 댓글 등에 흘러 넘친다. 트랜스젠더는 '젠신병자'(트랜스젠더+정신병자)라고 부른다.
심지어 같은 여성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매도되기 일쑤다. 남성주의적 사고방식에 동조한다고 딱지를 붙이는 용도로 쓰는 '흉자'(흉내 자지), '명자'(명예 자지)가 가장 흔하다.
세대 갈등에 따라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단어들도 끊임없이 생성된다. '급식충', '틀딱충', '개저씨' 등이 그 예다. '급식충'에는 중고등학생은 버릇이 없고 세상 물정 모른다는 의미가, '틀딱충'은 구닥다리 노인들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 '개저씨'에는 중년 남성들은 대개 끔찍한 꼰대라는 규정이 담겼다.
최근에는 제주도로 예멘 난민 500여명이 들어와 논란이 되자 어김없이 혐오 표현이 새로 등장했다. '난민충', '예멘난민충', '똥남아'(동남아 지역 비하 표현) 등 출신 지역을 토대로 조롱하거나 '개슬람'이라며 특정 종교를 비하하는 각종 단어들이 온라인상에 판을 친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더욱 쉽게 혐오 표현에 노출되는 소수자들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난해 발간한 '혐오표현 실태와 규제방안 실태조사'에 따르면 혐오 표현을 접한 이후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하였다'라는 질문에 장애인(58. 8%), 이주민(56.0%) 성소수자(49.3%) 등 절반 정도의 응답자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과연 소수자들만 이런 어려움을 겪을까. 만인의 만인을 향한 혐오 사회에서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도 될 수 있다. 다음 회에는 일상에서의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겠다.

 [혐오를 혐오한다⑤]불안한 개인들이 만든 공공의 적…"다 너희 탓"

혐오의 가장 큰 특징 '배제'…대화, 논쟁의 여지 없어
"그냥 한국서 꺼졌으면 좋겠다" "다 없어져버렸으면"
이면엔 빈부격차, 불평등 심화 등 구조적 불안 깔려
소속 집단서 안정감·정체성 획득…외부엔 '적' 만들어
각종 문제 책임 전가 '저들 때문에 내가 피해 입는다'
"다양한 집단들 한 데 묶어주는 사회 공통가치 부재"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혐오 표현도 거침없어"
'분노 동맹' 확장…한국 사회 혐오 현상 더 심화 전망

"솔직히 난민들은 그냥 한국에서 꺼졌으면 좋겠어요." 대학생 김모(23)씨는 난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김씨는 "마주치기가 싫다. 안 보이면 괜히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회사원 박모(26)씨는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태극기 부대' 집회를 몇 번 목격한 후 노인 혐오자가 됐다. 그는 "심한 말인 줄은 알지만 '틀딱'(노인을 낮춰 부르는 인터넷 용어)들이 다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며 "설득도 불가능해 보이고 말이 안 통하지 않느냐. 마주치면 괜한 피해만 커진다"고 짜증스런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특정 대상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마음이 바로 혐오의 정체라고 말한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저서 '혐오와 수치심'에서 혐오를 "자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한 거부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꺼림칙한 상대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거부해버림으로써 대화 혹은 논쟁의 여지를 없애는 감정이 곧 혐오다.
혐오에는 구조화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둔화한 경제 성장, 악화하는 경제 지표, 높아진 청년실업률,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격차, 길어진 수명과는 반대로 짧아지기만 하는 경제활동기간 등 갖가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을 점점 불안 상태로 몰아가고, 이 스트레스를 견디고 안정감을 되찾기 위해 내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각종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혐오가 시작된다. '저들만 없었으면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마음이 싹트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쉽게 말해 살림살이가 힘들어지면 개인은 불안해지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정체성은 대부분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형성된다"며 "다른 집단과 구별 짓는 집단 내의 동일성을 계속해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집단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규정 짓는 방법은 내부 단결"이라며 "이를 위해 외부에 '적'을 만든다"고 했다.
일단 적을 설정하면 혐오는 증폭된다. 논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혐오해야 하는 논리는 만들면 그만이다. 이 교수는 "혐오는 구조를 살펴보지 않는다. 대신 특정 개인과 특정 계층, 특정 세대를 저격해 문제의 원인을 그들의 탓으로 돌린다. '난민 때문에' '동성애자 때문에' '장애인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혐오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공격 대상 또한 노무현·전라도·여성 등으로 특정돼 있다.
물론 삶이 불안하다고 해서 항상 '내가 아닌 그들'을 혐오하는 건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게 하는 사회 공통가치가 있으면 다양한 집단이 얼마든지 조화롭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 개인이 느끼는 불안감을 긍정적으로 해소해줄 만한 공유 가치들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고 본다.
윤상철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경제·문화 등 계층적으로 다른 집단들을 한 데 묶어주기 위해서는 공통가치가 필요하다. 평등주의, 공동체주의, 자유주의 등이 그러한 가치가 될 수 있다"며 "그 가치가 없으면 계층적으로 우위에 있는 집단이 차이와 차별을 정당화한다. 능력이 있으니까, 예쁘니까, 부지런하니까,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지금 누리는 지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사회가 선순환하기 위해서는 '밑바탕'이 되는 가치들이 필요하다. 앞서 말한 자유주의, 평등주의, 공화주의, 공동체주의가 그런 가치들이다. 그 가치들이 잘 자리 잡았을 때 서로를 존중하면서 비로소 민주주의에 따라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러한 가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자기 주장만 한다. 혐오표현도 '내 주장'이라고 말한다. 이런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오히려 혐오를 더 부추기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국 사회 혐오 현상은 당분간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난민 반대 집회에 참석해 난민을 받으면 공산화된다는 구호까지 외치고, 워마드를 비롯한 일부 페미니스트들도 난민 유입이 여성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주장을 적극 펼치고 있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단체가 '안보' '안전'이라는 기치 하에 '분노 동맹'을 맺은 듯한 형국은 상징적이다. 혐오의 확장이자 이합집산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택광 교수는 "혐오를 조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시간이 갈수록 세련돼지고 공고해질 것"이라며 "현재 과도기적인 상태에 있는 한국 사회가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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