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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음식을) 먹고 난 뒤의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은 ‘설·거·지’라고 써야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꼭 기억에 두세요. 설거지는 ‘설거지’입니다. 절대 ‘설겆이’가 아닙니다! 

이렇게 강조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설거지를 설겆이라고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글 쓰는 게 직업인 기자 중에도 차고 넘칩니다. 

동아닷컴 검색창에 ‘설겆이’를 치면 나오는 결과물

도대체 왜?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그건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네, 제대로 읽으신 게 맞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설거지를 설거지라고 마음 편히 못 쓰는 겁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받아쓰기를 잘해야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공부깨나 했다는 분 가운데서도 맞춤법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언어학적으로는 아예 학력이 높을수록 자주 틀리는 낱말이 따로 있습니다.

설거지가 대표적으로 이런 낱말입니다. 설거지를 설거지라고 쓰면 ‘굳이’를 ‘구지’라고 쓰는 것처럼 낱말을 소리 나는 그대로 쓰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받아쓰기 시험 때 이런 건 보통 오답이게 마련. 그래서 우리 머릿속에 들어 있는 언어 체계가 ‘세련되게’ 설겆이라고 쓰라고 잘못 지시하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넓은 의미에서 ‘과도(過度) 교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고치지 않아도 될 걸 과도하게 교정했다는 뜻입니다. 


이 과도교정 역시 비교적 흔한 언어 현상입니다. 과도 교정이 없었다면 ‘김치’도 세상에 없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요? 


원래 김치는 위에 나온 것처럼 썼습니다. 저 글자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 [딤채]가 됩니다. (김치냉장고 이름이 왜 그런지 아시겠죠?) 여기서 한국어에 구개음화 현상이 있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굳이’를 [구지]로, ‘해돋이’를 [해도지]라고 발음하는 게 맞는 이유가 바로 구개음화 때문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딤채는 [짐채]가 됩니다. 그러다가 아래 아(ㆍ) 소리가 한국어에서 사라지면서 [짐치]가 됐습니다.

여기서부터 과도교정 현상이 일어납니다. [짐치]라는 소리만 듣고 이를 ‘김치’라고 적기 시작한 겁니다. 현대 한국어에는 ‘ㄷ구개음화’ 현상만 있지만 16세기에는 ‘ㄱ구개음화’ 현상도 있었거든요. 지금도 어떤 분들은 ‘길’을 [질], 엿기름을 [엿지름]이라고 발음하는 걸 들을 수 있는 건 이 때문입니다. 

이를 거꾸로 적용해서, 짐치를 짐치라고 쓰면 어쩐지 틀린 거 같으니까, 짐치를 김치라고 쓰게 된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소리도 [김치]로 바뀌었습니다. ‘질들이다’가 ‘길들이다’가 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사진설명)과도교정이 없었다면 어린 왕자와 여우는 서로를 ‘질들였을’ 겁니다. 파라마운트 홈페이지. 


아, 40대 이상 어르신 중에는 ‘학교에서 분명 설겆이라고 배웠는데 무슨 소리냐?’고 주장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1989년 맞춤법을 크게 흔들기 전까지는 설겆이가 표준어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습니다’로 써야 할 걸 ‘~읍니다’로 쓰는 분은 거의 안 계시잖아요?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뀔 때 설겆이도 설거지가 됐습니다. 그러니 이제 설거지도 설거지라고 쓰십시다. 다시 한번 설거지는 설거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겆이’라고 쓰셨던 분이 오늘 설거지 당번을 맡아보시면 어떨까요?
설거지하러 가시기 전에 아래 추천 버튼 누르시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출처:동아일보/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918/86387639/1#csidx4d7824cabc80cd9bfe4c2cecc0c88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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