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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지역화 시대의 한글 [김윤상 칼럼]

‘현용 24 자모’ 외에 추가 자모도 필요하지 않을까?

10월이 오면 자연히 위대한 한글을 생각하게 된다. 뛰어난 재능과 끝없는 열정으로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든 세종대왕에게 감사한다. 필자는 국어학이나 언어학과 무관한 사람이지만 혹시라도 한글 발전에 도움이 될까 하여 나름의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다.

한글도 한류처럼 세계로

세계에는 약 6,500여 개의 크고 작은 언어 집단이 있으나 문자는 수백 개 정도에 불과하다. 고유 문자의 수는 더욱 적으며 대부분 로마자, 한자, 키릴문자, 아라비아문자, 인도문자 등에 바탕을 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모든 문자 중에서 한글이 독창적인 문자일 뿐 아니라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사실은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 언어학계가 다 인정한다.

이토록 뛰어난 한글로 자기 언어를 표기하는 부족이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인도네시아 동남 지역 술라웨시주 부톤섬의 바우바우시에 모여 사는 찌아찌아족 7만여 명은 훈민정음학회의 도움으로 2009년부터 한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라올리오 마을의 초등학교에서는 한글 수업도 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영화 기생충, 방탄소년단, K-방역 등 한류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이 시기에 한글이 더 전파되어 인류의 문자 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글로 다른 언어를 표기하다 보면 당연히 덜 맞는 점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영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할 때 생기는 불편함을 생각해보면 된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현용 24 자모’ 원칙을 완화해야

<외래어 표기법>(문화체육관광부고시 제2017-14호) 제1항은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 자모만으로 적는다.”고 되어 있다. “현용 24 자모”만을 사용하는 한글 엄격주의(?)는 한글의 세계화에 지장을 주지 않을지 걱정된다. 국제음성기호 중 한글로 표기하기 어려운 기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중 정도가 심한 예로 f와 v를 들어보자. 서구어에는 대개 두 자음이 있다. 중국어에도 f 발음이 있다. 예를 들면 发(發)과 法은 fa로, 富와 福은 fu로 발음된다. 그런데 ‘현용 24 자모’만 사용하면 f와 p는 ㅍ으로, v와 b는 ㅂ으로 적는다.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한글 자모를 추가하면 어떨까? 그 외에 지금은 모두 ㄹ로 표기하는 r도 l도 구분하고, 영어 thank의 th[θ]음과 z음도 별도로 표기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필자가 24 자모를 약간 변형하여 영어 발음을 표기해 본 예시가 아래 그림에 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어렵고 어색한 사이시옷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맞춤법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틀린 자막이 더러 보일 정도로 맞춤법은 쉽지 않다. 특히 사이시옷은 제대로 표기하기도 어렵고 또 옳게 표기했다고 하더라도 어색한 경우가 많다. 사이시옷 표기에 관한 ○×표 문제를 한 번 풀어보자.

= 전셋방, 인삿말, 머릿말, 고뭇줄, 유릿잔, 우윳병
= 전셋집, 혼잣말, 존댓말, 빨랫줄, 노랫말, 우윳값.

첫줄 여섯 개는 틀리고 뒷줄 여섯 개는 맞다.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토박이 한국 사람도 점수를 잘 따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맞춤법의 가장 큰 원칙은 ‘표준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것이다. ‘꽃’은 뒤에 오는 음절에 따라 [꼬ㄷ], [꼬ㅊ], [꼰]의 세 가지로 소리 나지만 ‘어법에 맞도록’ 하기 위해 ‘꽃’ 한 가지로 적는다. 그렇다면 ‘전셋집’과 ‘우윳값’도 각각 ‘전세집’과 ‘우유값’으로 적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필요한 경우에는 발음을 부기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횟수(回數)가 회수(回收)와 혼동될 염려가 있다면, 쓰는 사람이 알아서 ‘회수[횟수]’라고 표기한다는 것이다.

사투리 표기를 위한 자모도 살리자

오늘날은 세계화 시대일 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문화를 존중하는 지역화 시대이기도 하다. 표준어 이외의 우리말을 잘 표기하기 위해서도 ‘현용 24 자모’ 원칙을 좀 완화하면 좋겠다. 경상도 사투리에 남아있는 초성 이응을 예로 들어보자. 사전에는 ‘강생이’가 강아지의 방언(경상, 전라, 제주)이라고 되어있다. 다른 지역은 잘 모르지만 필자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경상도 발음은 [강생이]가 아니라 [강새이]이며 여기서 ‘이’의 초성은 자음 ‘ㆁ’이다. 훈민정음에는 있었으나 ‘현용 24 자모’에서 빠진 꼭지이응이다.

또 장기 둘 때의 ‘장이야, 멍이야’는 [자이야, 머이야]로 발음하는데 음절 ‘이’의 초성 역시 꼭지이응이다. 표준어와 달리 경상도 사투리에서는 앞 음절의 종성 이응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다음 음절로 연음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은 표준어와 방송의 영향으로 전통 발음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꼭지이응을 되살리면 사투리만이 아니라 비음이 있는 외래어 표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표준어 규정>(문화체육관광부고시 제2017-13호) 제1항에는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언어 영역에서도 이처럼 서울중심주의가 심하다. 사투리도 소중한 우리 문화 자산인데 ‘표준어’에 밀려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현용 24 자모’ 원칙도 사투리에 대한 배려 없이 표준어만을 염두에 두고 정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지역화 시대에, ‘현용 24 자모’ 원칙을 완화하여 한글이 더 우수한 표기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윤상 칼럼 96]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